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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그런 옛날이 내게도 있었지
게시물ID : lovestory_895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25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3/03 13:54:39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YMcbEAclj_4






1.jpg

정영주서해저 독한 상사

 

 

 

모래가 발목을 잡고 놓지 않는다

한 번도 빠져보지 못한 서해

동해에 눈 맞추고

항시 그리로만 몸 기울였는데

서해에 맘 주지 못한 죄

오늘은 기어이 물으려는지

발목으로 무릎으로 기어오르며

나를 낚아채 주저앉힌다

푹푹 꺼지는 허방이

눈을 부라리며 삼키려든다

성깔진 이빨 하나 없는 것이

내 몸에 두지 않는 길 하나 열고자

제 마음 내 안에 두고자

가슴까지 모래를 퍼 나른다

서해가 이윽하다는

그대의 전언이 몸에 닿았으나

내 안에 몸 없는 바다일 뿐바닥일 뿐

겨우 빠져나와 서해를 돌아보니

바짝 타들어 검은 뻘로 누운

저 독한 상사

벌거벗은 슬픔여윈 속살을 보고서야

서해가 절절한 삶이라는 걸 알았다







2.jpg

염창권호두껍질 속의 별

 

 

 

껍질 속은 굴곡이 많은 별빛으로 채워졌다

빡빡한 뇌수처럼 생은 좀체 휴식이 없다

별빛을 헤아려 본다

부유하는 먼지 같은

우주는 딱딱한 두개골처럼 소리가 난다

반짝이는 머리통 속 질량은 충분하다

욕정의 신호나 되듯

은밀한 느낌이다

금기의 강이 있다건너지 못하는

미확인의 진실이지만

그들은 서로 잇닿아 있다

별들도 사랑을 나눈다

눈빛을 보면 안다

호두껍질을 두드려서 잠든 별을 깨운다

기억의 숲 속으로 번개가 지나가듯

어둠이 파동 치며 긁힌다

이젠 추억의 힘이다







3.jpg

이경임바람 한 줄기

 

 

 

바람 속엔 헤아릴 수 없는 냄새와 소리와

얼룩과 소문들이 있다

높은 산맥을 넘은 후 평지에 도달한 바람 속엔

()가 있다

 

이 바람은 무겁다

이 바람은 무겁지 않다

이 바람의 몸속엔 한 방울의 물기도 없다

 

없는 눈물이 가득 차오르면

메마른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는다

없는 사랑이 가득 차오르면 바보처럼 자주 웃는다

 

꽃들은 텅 빈 나무의 엔진이다

겨울이 지나가면 작란(作亂)이 다시 시작된다

 

바람 속엔 다시 엔진이 돌아가는 소리가 그득하고

이 낮은 지상은 신음 소리들로 가득 채워진다







4.jpg

이대흠옛날 우표

 

 

 

혀가 풀이었던 시절이 있었지

먼 데 있는 그대에게 나를 태워 보낼 때

우표를 혀끝으로 붙이면

내 마음도 찰싹 붙어서 그대를 내 쪽으로

끌어당길 수 있었지 혀가 풀이 되어

그대와 나를 이었던 옛날 우표

 

그건 다만 추억 속에서나 있었을 뿐이지

어떤 본드나 풀보다도

서로를 단단히 묶을 수 있었던 시절

그대가 아무리 먼 곳에 있더라도

우리는 떨어질 수 없었지

 

혀가 풀이었던 시절이 있었지

사람의 말이 푸르게 돋아

순이 되고 싹이 되고

이파리가 되어 펄럭이다가

마침내 꽃으로 달아올랐던 시절

 

그대의 손끝에서 만져질 때마다

내 혀는 얼마나 달아올랐을까

그대 혀가 내게로 올 때마다

나는 얼마나 뜨거운 꿈을 꾸었던가

 

그대의 말과 나의 꿈이 초원을 이루고

이따금은 배부른 말 떼가 언덕을 오르곤 하였지

세상에서 가장 맑은 바람이 혀로 들고

세상에서 가장 순한 귀들이 풀로 듣던 시절

 

그런 옛날이 내게도 있었지







5.jpg

이우걸비누

 

 

 

이 비누를 마지막으로 쓰고 김 씨는 오늘 죽었다

헐벗은 노동의 하늘을 보살피던

영혼의 거울과 같은

조그마한 비누 하나

 

도시는 원인모를 후두염에 걸려 있고

김씨가 쫓기며 걷던 자산동 언덕길 위엔

쓰다 둔 그 비누만 한

달이 하나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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