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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풍경을 지운다
게시물ID : lovestory_895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
조회수 : 25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3/02 20:28:16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QjCl_7jJZBo





1.jpg

이재훈

 

 

 

눈을 밟는다

눈이 시린 풍경을

꾹꾹 밟는다

그러나 눈은

온전히 밟혀지지 않고

자꾸만 발등 위로

심지어 무릎까지

올라온다

제 존재를

떠올리려 한다

덮어야 할

밟혀야 할 운명을

내 발걸음에 의탁한 채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눈이 떠올라

내 발목을 쥐고

너도 나처럼

떠올라라

떠올라라

머리 위까지

눈이 날린다







2.jpg

윤강로들꽃 이름

 

 

 

들꽃 이름 외우기를 그만 두었다

꽃 이름을 외우니

꽃이 사라졌다

숨은 듯 선명하게 고운 들꽃

소리 없이 배시시 웃는 들꽃

발돋움할 줄 모르는 낮은 키의 목숨

들꽃처럼

이름을 지워도 아름다운

그런 사람 어딨니







3.jpg

박선우꽃의 파일을 해킹하다

 

 

 

몇 페이지의 텍스트를 저장하고 있는가에

벌은 온몸으로 후각을 동원하고

패스워드를 찾느라 온종일 붕붕거린다

아무래도 대갓집 규수 같은 목단이라면

천개의 비밀을 보유하고 있지 않을까

몇 마일을 날아왔을 벌이 꽃과 접속을 끝내고

꽃의 텍스트를 읽느라 정신이 없다

꽃에게도 이렇게 많은 공개할 수 없는

파일이 있다는 것그 파일 속에는

천기를 누설할 수 없는 꽃의 비밀들이

문서화된 텍스트를 읽어내느라

텍스트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안이 궁금해 기다리는 바람

세상이 시끄러울 것 같은 예감으로

제각기 촉각을 세우고 있는 새와 바람

밖이 시끄럽든 말든 벌은

무차별 꽃을 해킹하고 있다







4.jpg

박완호풍경을 지운다

 

 

 

검붉게 타던 플라타너스 잎들이

겨우 며칠을 못 넘겨 땅으로 곤두박칠친다

끝에 남은 몇 개의 흔적을

아이들 서넛이그 고통과 적막을 달래듯

기어올라 가지를 흔든다 우수수

마른 골격이 드러난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한 시대를 버팅겨 온 힘에 대한

배반이다 풍경이 지워지고

빈 손가락구부러진 틈 사이

먼발치로 솟구쳤던 나무와 그 위에 허위로 쌓인

발걸음이 무너진다

 

나무는 이제 꿈꾸지 않는다

몸통에 배어 있던 소리와 향기가 빠져나가고

뿌리에 스며 있던 희망과 절망이 뽑힌다

지금거품의 세월

아이들이 깔깔대며 사라진 뒤삶이 그렇게 얼어붙듯

나무들이 서 있다







5.jpg

박명숙초저녁

 

 

 

풋잠과 풋잠 사이 핀을 뽑듯달이 졌다

치마꼬리 펄럭엄마도 지워졌다

지워져아무 일 없는 천치 같은 초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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