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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따라 할 것이 없다 - 삼성
게시물ID : sisa_786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물뚝심송
추천 : 2
조회수 : 745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0/02/04 10:36:49

삼성은 매우 중요한 그룹입니다. 국내 최대의 그룹이며, 따라서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가장 큰 기업입니다. 고용인 숫자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삼성이 그 동안 국내 산업 발전에 공헌한 바는 무척 큽니다. 반면에 삼성이 저지른 각종 비리와 불법의 해악도 일등기업 답게 광범위합니다. 즉, 공헌과 해악, 양면 모두 가장 큰 영향을 준 기업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이 글에서 삼성을 비난하거나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삼성이라는 거대한 기업이 당면하고 있는 아주 심각한 문제 한가지를 제기하고, 그 문제에 대해 여러분의 의견은 어떤지 물어 보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삼성은 여러종류의 기업들이 모인 그룹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막강한 기업인 삼성전자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삼성전자는 이병철회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건희 회장이 강력하게 주장하여 대규모로 벌어졌던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의 결과로 세계 정상에 오른 회사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삼성이 디램시장에 처음 진출하여 64K 디램(메가나 기가가 아니라)을 처음 개발하고 양산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나라 모든 뉴스들은 온통 그 얘기만으로 넘쳐났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삼성에게는 후지쓰라는 넘기 힘든 벽이 있었고, 삼성보다 한발 앞서 한칸 더 높은 용량의 디램을 만들어내는 후지쓰는 지속적으로 삼성의 추격을 막아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가장 앞선 용량의 디램을 만들어 출시하고 수익성을 확보한 후, 후발주자가 따라오면 해당 용량의 램을 덤핑해 버리는 식으로 후발주자의 개발투자부담을 높이는 전략입니다. 

이 전략에 걸려 삼성은 엄청난 개발비를 들여 디램을 만들어 놓고도 수익은 못 올리는 악순환을 몇년 동안이나 반복해야 했습니다. 매우 힘든 추격의 과정이었죠. 하지만, 삼성은 추격자의 역할은 매우 훌륭하게 해 냈습니다. 앞에 도망가는 선행자가 있고, 그 선행자를 추격하기 위해서는 선행자가 해 냈던 일을 더 빠르고 더 값싸고 더 품질 좋게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거든요. 

결국 삼성은 세계 최고의 추격자임을 스스로 입증해냈습니다. 꽤 많은 분야에서 분야별 선두를 추격해내고 일위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세계 최고의 전자회사로 자리매김을 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만년 추격자가 선두의 자리에 앉게 되자, 이제 누구를 따라가야 하는 지를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더 이상 따라 할 것이 없어진 상황이 바로 일등의 자리라는 겁니다. 

최근에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삼성전자에 들어왔었습니다. 삼성은 아직 시장에서 입증되지 않은 안드로이드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구글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결국 구글은 대만기업과 함께 안드로이드폰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드로이드는 아이폰의 유일한 대항마로 시장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킵니다. 삼성은 또 2등으로 안드로이드 폰 개발에 착수해서 출시하게 되었습니다. 

왜 삼성은 구글과 손잡고 안드로이드 시장에 첫발을 딛지 못했을까요? 만년 추격자 역할만 하다보니 남들보다 앞서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몸에 배어 버린 것은 아닐까요? 

이 문제는 삼성그룹의 의사결정구조와 심각한 관계가 있습니다. 삼성은 계열사 사장들의 권한이 매우 미약합니다. 형식적으로는 모두다 독립된 기업의 CEO들이지만 사실상 독자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 권한들은 모두다 소위 말하는 "구조본"에 가 있습니다. 

삼성그룹의 구조본은 삼성그룹 회장의 비서실이 변화한 곳입니다. 모든 계열사의 CEO는 구조본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고, 구조본은 실질적인 그룹의 회장인 이건희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곳입니다. 

삼성의 강점은 회장의 입에서 결정이 떨어지고 구조본의 명령이 떨어지면 세계 누구보다도 더 빨리 그 일을 수행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삼성의 단점은 그 결정을 현업에 대한 전문가가 아닌 그룹의 재정권을 소유하고 있는 회장이 내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건희 회장이 아무리 똑똑해도 아이폰이 이렇게 대박을 칠 것을 예견하지도 못할 뿐더러, 그에 대한 대응으로 안드로이드를 탑재해야 된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힘듭니다. 누군가 선두를 치고 나와 대박을 치면 그에 대해 구조본이 조사한 보고서를 받아 보고, 그에 따라 결정을 내릴 뿐입니다. 

즉, 이렇게 집중된 의사결정 형태는 "창조적인 결정", 즉 업계에서 최초로 수행해야 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불가능해집니다. 결국.. 삼성은 그 규모가 얼마나 커질지는 몰라도, 전세계 기업문화를 선도해 나가는 첨단기업, 업계의 선행자, 일등의 자리는 가지기 힘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 문제가 바로 그룹 전체를 일인 회장이 지휘하는 독점적 권력구조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 역시 애플의 모든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생명보험사를 관리할 일도 없고 건설을 신경쓸 이유도 없습니다. 오직 자신이 미쳐있는 애플사의 컴퓨터와 모바일 장비에 대해 자신의 모든 관심과 능력을 쏟아 붓고 있는 그 분야의 천재라는 것입니다. 

이건희가 아무리 뛰어나도 모든 분야의 천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여기서 삼성의 비리나 불법 사실을 가지고 삼성을 비난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삼성이 국내에 공헌한 바를 칭찬하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삼성은 최선을 다했고, 현재의 위치에 올라왔습니다. 그에 대한 공과는 다른 사람들이 따져볼 수 있겠죠. 

제가 지금 하는 얘기는 현재의 구조로는 삼성이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고, 이제 떨어질 일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아니, 지금처럼 계속 한다면 계속 2등 자리는 지킬 수도 있겠군요. 만년 추격자 노릇만 하면서 말입니다. 

이제는 그 추격자의 자리도 "추격자를 추격하는" 대륙의 기업들에게 언제 빼앗길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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