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남들이 좋게 봐 주는 것도 어디야?’
세상은 보이는 게, 다는 아니라지만 사람들은 남을 평가할 때는 겉으로 보이는 대로 믿지 않던가? 어차피 이혼할 수 없을 바엔 그냥 남들 앞에서라도 쇼윈도 부부로 행복한 척 연기를 하고 살면 되는 거야.
시간을 두고 남편을 더 사랑으로 대하면 삐뚤어진 사고와 행동들이 고쳐질 거야.
‘사랑의 힘으로 이루지 못할 일이 무에 있겠나?’
미영은 강하게 스스로 다짐하며 미래의 정상적인 부부의 모습을 애써 그리면서, 굳게 마음을 다져 먹다가도 혼자 있을 땐 자신도 모르게 그냥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정말 그런 날이 올까...?’
미영은 확실하지 않은 미래가 문득문득 불안했다. 그렇지만 이미 결혼이라는 기차는 달리기 시작했고 결혼이라는 기차는 한 번 올라타면 중간에 내려 돌아가야 하나? 생각이 들 때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속도로 내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미영은 상상했던 결혼 생활과 너무나도 다른 지옥 같은 결혼 생활에 공포를 느꼈지만, 그렇다고 지극정성인 부모님께 기혁의 실제 모습을 이야기해서 가슴 아프게 할 수는 없었다.
기가 막힌 현실 앞에 미영은 혼자 누구에게도 말을 할 수 없었고 누군가의 도움이 없는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힘에 겨운 문제를 꺼내놓고 위로받고 싶을 때가 많았다.
가슴이 답답한 날은 자신의 상태를 누군가에게 솔직히 말하고 위로를 받고 싶기도 하여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이름을 하나씩 훑어 내려가 보아도 자신의 힘듬을 이야기 할 만한 사람은 딱히 보이지가 않았다.
미영의 아픔을 들어주고 힘들어서 어떻게 하냐며 값싼 위로는 들을 수 있겠으나 자신의 문제가 입밖으로 꺼내어 놓는다고 해결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아무도 미영 자신을 이 답답한 상황에서 건져 줄 사람은 없다라는 결론에 이르자 그냥 휴대폰을 덮었다.
'고민을 털어놓는 순간 내 앞에서는 걱정을 하며 가슴이 아픈 척 하겠지만 돌아서서 나의 아픔이 결국 자신들의 위로만 될 뿐 내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을 뿐!'
미영은 자신이 지금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다고, 조금도 안정되지 않고 행복하지 않다고 입을 벌려 밖으로 꺼내 위로 받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알았다. 아무에게도 진정한 위로를 받을 수 없다는 현실 앞에 더 혼자 많이 아팠다.
‘그래, 나 혼자만 참고 감당하면 모두가 편안할 것을, 아이까지 낳았는데 이제 와 결손가정에서 아이를 자라게 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혼자 되뇌고, 되뇌며 자기 암시를 하였다.
그럼에도 문득 문득 이혼하는 사람들의 결단력과 용기가 조금 부럽기도 했다.
남편은 좀 씻고 오라고 하면 분위기 망친다고 뭐라고 하고, 담배 냄새나니까 관계하기 전에는 담배 좀 피우지 말라고 부탁하면 하여튼 까다롭기는! 하면서 짜증을 내니 미영은 결혼 생활이 숨이 막혀 질식될 것 같은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분위기도 없이 치르는 섹스는 통증으로 아프기만 했다.
하루의 무거웠던 마음을 잠자리에서마저도 육체적 고통으로 마무리를 해야 하는 고통의 나날이었다.
그런 생활 속에서도 유일하게 웃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모르고 방긋 웃는 아이의 미소였다. 아이의 천진스러운 미소를 보면 세상 어떤 일도 이겨낼 수 있었다. 아이의 미소는 어떤 고난과 역경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었다.
남편 앞에서도 웬만하면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해서 들어줄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몇 번의 경험으로 이미 알아챘기 때문이다. 오히려 방귀낀놈이 성낸다고, 못난 사람의 화를 자극하기만 했고 의미 없는 잔소리로 듣기 때문에 대화 자체가 외계인과 하는 것보다 소통이 되지 않았다.
미영은 잘해보려다가도 점점 마음이 자동문처럼 스르르 닫혀가고 있었다.
여자는 마음을 닫아 버리면 몸도 자동으로 닫혀버린다. 닫힌 몸으로 남편을 받아들여야 하니 매일매일이 강간당하는 기분이었지만 거부했다간 쌍욕을 하고 집안 분위기를 험하게 만드니 그냥 체념하고 받아줘야 그나마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사람은 좋을 때만 감사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나쁜 날로 점철된 삶에 어쩌다 하루 나쁘지 않은 날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든 면에서 맞지 않은 남편과 살면서, 생활을 통해 하나씩 터득해 나갔다.
한 살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단골손님 중에 유난히 친근해진 사람이 한 사람 있었다. 그 사람은 혼자 사는지 꼭 물건을 사러 남자 혼자 왔다. 그런데 혼자 사는 사람치고는 장을 많이 본다, 싶긴 했지만 그렇다고 혼자 사세요? 하고 물어보기도 그랬다. 그 사람은 일주일에 서너 번을 한 살림에 들렀다. 미영은 그 사람을 보면 안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친절한 미소를 띠게 되었고 무언가 질문을 하면 상냥한 얼굴로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이런 상냥함이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인지 미영 자신도 놀라웠다.)
그 남자는 처음 가게를 들어올 때부터 어디서 본 듯한 낯설지 않은 느낌이랄까? 아무튼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좋은 느낌으로 가게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 사람의 이름은 진우였다. 한살림은 회원제로 운영하므로 몇 번만 와도 이름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진우라는 이름은 처음 다녀간 날부터 미영의 머릿속에 기억되어 있었다. 처음 다녀간 이후 이틀 후쯤 그 회원이 매장 안으로 다시 들어왔을 때 미영은 깜짝 놀라는 자신을 발견했다.
‘왜 내가 이렇게 놀라지?’
다음 회에서 만나요.
Donde voy (미국 국경을 넘어간 멕시코 인들이 고향에 두고 온 연인이나 부모를 그리면서 자신들의 삶의 애환을 그린 노래를 제가 직접 불러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