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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이만하면 꽃이다
게시물ID : lovestory_894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
조회수 : 24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2/26 20:21:54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w_EfSftmiaU






1.jpg

김완하어둠에 들다

 

 

 

어둠이 오기 전

숲 앞에서 시간은 잠시 잠깐

움찔한다

쌓인 빛을 털어내려는 듯

풀들마다 허리께를 한번

요동친다

 

어둠은 세상의 길을 풀어버리고

소리 속으로 귀를 묻는다

내가 밟고 가는 걸음에 놀라 화들짝

깨어나는 숲

제 울음을 골똘히 들여다보는 벌레들

 

어둠 속에서 땅은

나에게 순순히 길을 내어준다

어둠에 나를 묻자

길은 훤히 트였다

숲을 빠져나올 즈음

어둠은 겹겹 짜인 시간의 조롱을 흔들었다

 

눈 익어 오리나무 둥치도

어둠 속 희게 빛난다

작은 도랑을 건너

물은 흘러갈 만큼 가서야 소리를 죽인다

어둠도 깊어질 만큼 깊어야 또 빛이 된다







2.jpg

강경호건망증

 

 

바람이 불자 상수리나무가

아나 먹어라

상수리 몇 개를 떨어뜨리자

다람쥐 한 마리

한참 동안 맛있게 식사하고

몇 개를 입에 물고 언덕 위로 올라가더니

나뭇잎 속에 재빨리 숨긴다

눈이 내린 날

먹을 것이 궁한 다람쥐

언덕 위 눈밭을 뒤지다 그만둔다

저토록 앙증맞은 것이

숨겨놓은 식량을 찾지 못하다니

쯧쯧어린것이 벌써 건망증이라니

사람인 나도

나이 들수록 기억력이 없어지는데

책을 읽다가 책장을 넘기면

앞장이 생각나지 않고

아내는 벌써 솥을 몇 번이나 태워먹고

팔순의 어머니는 손에 들고도 찾으신다

사람의 건망증은

사람 구실을 못하게 하는데

다람쥐의 건망증은

언덕을 푸르게 한다







3.jpg

박현령나는 후유증을 앓고 있다

 

 

 

밤마다 내 귀엔

소리가 들린다

 

젊음이 지나가는 소리

공평하게

참으로 한 사람도 빼지 않고

공평하게

세월이 지나가는 소리

젊음을 엎고

세월에 등 떠밀려

서서히

변함없이 지나가는

세월의 소리

나는 그냥 듣지 않고

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그래서인지

밤마다 내 귀엔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4.jpg

박시교더불어 꽃

 

 

 

얼만큼 황홀해야 갇혔다 하겠느냐

이미 나는 네 안에서 봄날 아지랑이처럼

가물가물 피어나는 가쁜 숨결일 뿐인 것을

무엇을 더 바라겠느냐

이만하면 꽃이다







5.jpg

전건호때늦은 후회

 

 

 

지금도 가슴 시린 것은

내일이면 또 만날 것으로 알고

손 한 번 못 흔들고 헤어진 사람

다시 찾을 줄 알고

낙서 한 줄 못 남기고 떠나온 담벼락이다

붉어진 얼굴로 나마

고백이라도 해보았으면

붙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를 사람

세월 지나 낯선 거리

사내 아이 손잡고 지나치는

뒷모습도 황망하지만

지나온 길모퉁이마다

망설이고 또 망설이며 고백하지 못한

까맣게 많은 말들 무서리에 덮이고

눈 내리는 어느 겨울날

처마 밑 제비 되어 찾아와

여름내 흙집 짓고 울다 떠난 인연 아닌 인연을

화들짝 깨닫고 바라보는 빈 제비집

삭풍에 기타줄처럼 떠는 거미줄

그 어수선한 공명에

때늦은 후회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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