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의 친정엄마는 죽은 딸이 다시 살아 돌아왔다며 미영을 새로 태어난 아기처럼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셨다.
“난 네가 애 낳다 죽는 줄 알고 한동안 나까지 정신을 잃었었다. 이렇게 살아났으니 엄마는 너무 행복하다. 이제 시간만 흐르면 상처는 회복될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알았지?”
친정엄마는 미영이 아기 낳다 죽는 줄 알고 아버지랑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었던 것이다. 애를 난 미영의 입술은 사실 부르트지 않았는데 어찌 된 것이 두 분 다 입술이 부르터있었다.
그만큼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나?
집에서 친정엄마가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해주니 젖은 잘 나왔다. 일어나 앉아 있지를 못해 엄마가 베개와 쿠션으로 적당히 비스듬히 편하게 눕게 해주고 젖을 물릴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애써주셨다. 다행히 아이는 건강했다.
미영이 밥도 잘 먹고 얼굴에 생기가 돌며 예뻐지기 시작하자 엄마랑 아버지는 세상을 다 얻으신 듯 기뻐하셨다. 천진한 아이가 웃는 그런 환한 표정으로!
'내가 살아나서도 좋지만 부모님이 저렇게 밝게 웃으시니 더 좋았다.'
한 달 정도 지나니 이제 일어날 수 있었고 미영은 고개를 들고 허리도 펴고 걸을 수가 있게 되었다.
누워만 있던 미영은 걸을 수 있게 되자 베란다로 나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방안에서만 있다가 베란다에만 나가 서 있을 수 있어도 감사했다. 밖의 공기를 직접 마시니 살맛이 났다.
‘아, 난 이제 난 살았구나!’
미영은 의사 선생님의 피가 생길 때까지 조심하라고 주의를 줘 일어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실은 아래가 아파서도 일어나 걸을 수가 없었다. 한 달이나 일어나지 못하고 아플 때는 한편으론 평생 못 걸어 다니는 건 아닐까? 혹시 골반뼈가 으스러졌나? 속으로 혼자 걱정도 했었다.
친정 부모님은 아침 일찍 와서 집안일이며 딸 미영과 사위 기현의 식사를 끼니때마다 새로이 밥을 지어 고슬고슬한 밥으로 차려주었고 저녁엔 식사 후 설거지까지 완벽하게 해주고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음날 새벽이면 다시 미영의 집으로 와서 집안 청소, 빨래, 기저귀 삶는 것까지 모두 다 해주셨다.
베란다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활기차 보여 좋아 보였다.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미영의 눈에 산달이 다 된 배를 불쑥 내밀고 걷는 새댁이 걸어가는 게 보였다. 미영은 순식간 눈물이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렀다.
‘아이고, 지금 아무것도 모르고 저렇게 걸어다니네...’
미영은 그만 곧 아기를 낳을 임산부가 걱정이 되어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남편 기혁은 연애할 때는 정말 유행가 가사처럼 하늘에 별도 달도 따주마, 결혼하면 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줄게, 매일 업어줄게......
그런 말은 그냥 말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그 정도로 최선을 다한다는 말로 해석을 하게 되는 게 여자의 심리 아닌가?
연애할 때는 정말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신혼 초부터 나타났다.
술에 취해서 와이셔츠 앞자락이 바지에서 삐져나온 채 비틀거리며 미영이 제일 싫어하는 뽕짝을 큰 소리로 불러대며 비틀대며 집으로 들어오는 모습에서 미영은 그만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평생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는 미영으로선 너무나 실망스러웠고 그런 남편의 모습을 이웃집에서 봤을까 몹시 걱정되고 속상했다. 그런 결혼 생활은 시작부터 삐걱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기혁은 술버릇이 나빠 술이 깰 때까지 미영을 괴롭혔고 결혼 전에는 전혀 하지 않던 행동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술버릇이 나쁜 데다 연애할 때, 담배를 끊어야 결혼한다고 말했더니 단박에 딱 끊었던 담배를 결혼식 끝나고 신혼여행 다녀오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담배에 찌들어 살았고 거기다 슬슬 도박까지 하면서 생활비도 내놓지 않아 미영은 친정엄마가 주신 지참금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다.
결혼하면 남편이 생활비를 주는 것인 줄 알았는데 어떻게 된 게 월급날이 지나도록 단돈 만 원도 내놓지 않는 것이었다.
생활비를 달라고 말을 해야 할 텐데 남편이 생활비를 내놓지 않자 마음이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생활비 달란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가 않았다.
‘이번 달은 돈이 없나? 다음 달엔 주겠지?’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흘러 일 년이 지나도록 남편은 생활비를 한 푼도 내놓질 않고 있었다.
미영은 친정엄마가 준 지참금이 바닥이 들어나게 생기자 속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생활비를 내 놓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것 같았다. 조금도 미안해하는 표정도 없었다. 사람 자체가 믿음이 가지 않아 미래가 두려웠다.
결혼할 때 집도 친정에서 사줬고(대출은 조금 받았지만) 명의도 남편 명의로 해줬었다.
"자네가 우리 미영이를 이렇게 예뻐해주니 고맙기도 하고 그리고 앞으로 계속 우리 미영일 예뻐해 달라는 의미에서 자네 앞으로 명의를 해줄테니 우리 미영이 계속 예뻐해주고 행복하게만 살아줬으면 좋겠네."
"네, 그야 당연하지요. 감사합니다."
남편 앞으로 명의를 해주는 것에 대해 미영도 단 한 번도 의심을 하지 않았고 불안해 하지도 않았었다. 어차피 부부는 공동 재산인데, 네 거 내 거 따질일이 무에있겠나?
친정부모님은 대기업을 다니는 사위를 얻은 것으로 든든해서 뭐든지 하나라도 더 해주려고 애를 쓰셨다. 남편은 그냥 몸만 들어왔는데도 결혼해서 생활비를 한푼도 내놓지 않으니 더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일년이 지나고 지참금도 거의 떨어져 가자 미영은 할 수 없이 용기 내어 남편에게 말했다.
“생활비 없는데...”
“난 봉급 가지고 혼자 쓰기도 모자라...”
“이틀이 멀다, 하고 도박장으로 가니까 그렇지. 난 도박하는 사람하고는 못살아!”
“못살면 그럼 이혼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계속 이렇게는 못 살지. 가정을 보살피지 않고 혼자 밖에서 즐기는 사람일 줄은 몰랐어.”
“나 혼자 즐기는 게 아니라 그동안 잃은 돈을 한방에 따서 너 호강시키려고 하는 거지, 감히 남자 하는 일에 잔소리야!”
“잔소리? 이게 잔소리야? 난 일 년 동안 참고 참다 속이 타들어 가서 미칠 것 같아 한마디 한 거야!”
“여자는 자고로 결혼하면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이란 말도 못 들었냐?”
“아악, 지금이 조선 시대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미영은 그동안 쌓였던 말을 큰소리로 내질렀다가 죽기 직전까지 맞았다.
다 음회에서 만나요.
소설가 이묘영입니다.
오늘은 제가 취미로 부르는 올드팝 중에 Saddest Thing (melanie safka)을 불러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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