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고에 입학한 날부터 나는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입학한 지 열흘도 지나지 않아 벌써 박봉필이란 넘이 우리 1학년을 주먹으로 완전하게 평정하고 ‘꼴통파‘를 결성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연애편지대필사업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봉필이를 한번 조져야 했다. 내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면 그 자식들과 분명히 부딪칠 것이었다. 훼방을 놓을 수도 있고, 그 자식들이 대필을 의뢰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주먹을 앞세워 공짜로 먹으려 들 것이 분명했다. 거기다 더 만만하게 보이면 갈취까지 당할 수도 있었다. 그랬다간 연애편지를 대필해주는 동시에 연애이야기를 취재하고자 했던 내 계획은 날 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칠 수는 없었다. 내 목적은 주먹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내 사업을 건드리지 못하게 겁만 주자는 것이었으니까.
구실을 만들고자 머리를 굴리는데 마침 나와 같은 기서중학 출신인ㅡ기서중학에서 무포일고에 온 건 나를 포함해 6명이었다ㅡ 석호가 봉필이의 똘마니인 동길이에게 이유도 없이 맞았다는 것이었다. 잘됐다 싶었다.
점심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2반이었던 나는 교실 뒤에 있던 대걸레의 자루를 풀어서 1반인 석호를 데리고 봉필이가 있는 7반으로 갔다. 각 반에서 호기심 많은 몇몇 넘들이 따라왔다. 일부러 대걸레 자루를 소리가 나게 복도 바닥에 질질 끌고 가니 당연한 일이었다. 구경꾼들을 모으려는 내 의도였다. 7반 교실 뒤쪽에서 봉필이와 몇 놈이 어울려서 뭔가를 하고 있는 게 창을 통해 보였다.
교실 뒷문을 와장창, 열고 들어갔다. 봉필이 일당이 뭔일인가 싶어 나를 바라봤다.
“니가 봉필이가, 씨봉넘아?”
대걸레 자루로 자신을 가리키자 봉필이가 일순 당황하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옆에 있던 넘들도 감히 덤비지는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있었다. 나는 혼자였지만ㅡ겁에 질려 내 뒤에 숨어 있는 석호는 있으나 마나였다ㅡ 중요한 건 긴 대걸레 자루를 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진짜 더 중요한 건 그넘들은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내가 검도라도 제대로 배웠다면 덤볐다간 제깐놈들은 초죽음이 될 것이 아닌가.
“시봉넘아, 그거, 놓고 하자!”
그래도 대장이라고 봉필이가 나섰다. 그렇다고 덤빌 폼은 아니었다. 기선 제압은 일단 성공한 셈이었다. 나는 그때 이미 군주론을 독파했고, 마키아벨리를 ‘마기방 싸부님‘으로 부르고 있었다. 전쟁을 하려거든 반드시 먼저 공격하고, 자비하지 말라! 전쟁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기는 것이 미덕이다! 그것이 마기방 싸부님의 가르침이었다.
“시봉넘들 느그뜰이 야 팼다메? 함마 더 그라머 느그는 다 뒤진다아!”
나는 뒤에 있는 석호를 가리켰다. 어차피 그넘들에게 사과를 받고 무릎을 꿇릴 생각은 없었다. ‘겁대가리 상실하고 막 뎀비는 넘’이라 함부로 하다간 어떤 일을 당할지도 모를 놈으로 나를 각인만 시키면 되는 것이었다. 더이상 위협도 하지 않았다. 적들의 퇴로를 막지 말라. 이것도 손자병법이었다.
곧 수업시작 벨이 울렸다. 그것도 이미 다 계산하고 일부러 점심을 먹고 실컷 있다가 간 것이었다. 시간이 많으면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누구도 다쳐서는 안될 일이었다.
애들이 웅성거렸다.
“선샘 온다아!”
누군가 소리를 질렀고, 애들이 삽시간에 흩어졌다. 반이 다른 봉필이의 똘마니들도 빠져나갔다.
석호도 가고, 잠깐동안 나와 봉필이의 대치가 이어졌다. 제깐놈이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어쩔 것인가. 나는 대걸레 자루를 들고 있고, 검도를 배운 넘일지도 모르는데.
거기다가 봉필이는 이미 내게 겁을 먹은 것이 확실했다. 못 덤비는 것이 그것을 증명했다. 공포란 그런 것이다. 봉필이 맨주먹으로야 나 쯤은 추풍낙엽으로 만들고도 남을지라도 나중에 또 내가 각목이라도 들고 설치면 그때는 어떻게 하는가. 내가 맨손이 아닌 무언가를 무기로 쓸 수도 있는 놈이라는 두려움. 그것이 공포의 기제가 되면 내가 맨손으로 있다고 해도 공격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번 겁을 먹으면 그 시점 이후의 일까지 생각하고 계산하기 마련이라 겁을 극복하기가 난망하다는 말이다. 나는 독서와 생각을 통해 그런 것까지 이미 알고 있었다.
수학 선샘이 들어오더니 물었다.
“일마들, 느그 지금 싸우는 거가?”
“아닙니더. 대걸레 빌리러 왔습니더.”
“니는 멫 반 누구야?"
“2반 김성오입니더.”
“2반놈이 만다고 여기까지 왔어?”
“봉필이하고 놀기도 하고요.“
봉필이는 자리에 앉고 내가 수학 선샘과 주고 받았다. 수학 선샘도 이미 봉필이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박봉필이! 맞아?”
“예. 맞습니더.”
수학 선샘의 물음에 봉필이 마지 못한 듯 대답했다.
“깡패 같은 놈들이 벌써 카르텔을 다아 맺었구만.”
혀를 차던 수학 선샘이 나를 향해 내질렀다.
“빨리 느그반에 가, 임마!”
나는 속으로 ‘선샘요, 나는 깡패 아닙니대이’ 하면서 반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어떻게 알았는지 봉필이 혼자서 내 자취방으로 찾아왔다. 나는 봉필이 온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다. 겁을 먹었으니 나를 때려눕히는 건 불가능할 것이고, 어떻게든 나와 손잡지 않으면 중원을 평정한 일도 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많은 애들이 오늘의 일을 봐 버렸으니 제 체면도 살려야 될 게 아닌가 말이다.
예상대로 봉필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임마, 니, 우리한테 들어온나!”
“내는 공부해야 된다, 임마!”
“누가 공부하지 마라 카나, 임마!”
“그라고 나는 쌈질하는 거 싫다, 임마.”
“누가 니보고 싸우라 카나 임마. 니는 싸울 때는 뒤에 서가 팔짱마 끼고 있으머 된다, 임마. 내가 다 알아가 할 거니까. 그래도 깡다구가 있으니 토끼지는 않겠제?“
내가 검도는 고사하고 운동이라고는 개뿔도 한 게 없다는 걸 알고 왔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봉필이가 내게 겁 먹은 것이 없어질 수는 없었다. 나는 봉필이 일당에겐 여전히 위험한 놈이었다.
“싫거덩! 느그 긑은 넘들하고는 안 놀란다!”
“이, 씨봉넘이! 조 패뿔라 마!”
“씨봉넘아, 함 붙어보까?”
“아, 이 씨봉넘이, 미치겠네! 조 패뿔 수도 없고..... 그라지말고 우리한테 온나 임마. 내 재밌게 해주께.”
나는 깡촌에서 유학 온 자취생이었고, 봉필이는 무포 원주민이었다. 같이 놀면 재밌을 것도 같았다. 그러나 또 대학은 가야 했다. 대학엘 못 가면 왕년에 싸움 좀 한 아버지에게 죽을 수도 있었고, 작가가 되려면 대학은 무조건 가야 된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도 조금만 놀아서는 대학은 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제갈공명의 역할도 생각했다. 장수들을 움직이는 책사 말이다. 봉필이와 놀면서 조금은 색다른 경험을 하면 작가로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될 것도 같았다. 나는 봉필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나는 싸움도 제대로 안 하고 주먹대장 봉필이가 함부로 하지 못하는 유일한 넘이 되었다. 아니, 봉필이를 뒤에서 조종하는 막후실력자가 된 것이었다.
막후실력자로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써클의 이름을 불량기가 폴폴 풍기는 ‘꼴통파’에서, 봉필이의 이름을 딴ㅡ유머러스한 ‘뽕브라더스‘로 만든 것이었다. 뽕브라더스의 멤버는 8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