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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수, 오손도손 귓속말로
나무 위의 새들이 보았습니다
해질 무렵 공원은 어스름한데
할머니와 또한 그렇게 늙은 아저씨가 앉아 있었습니다
나무 위의 새들이 들었습니다
인생은 황혼
집은 없어도
흐르는 세월에
다정을 싣고
오손도손 그렇게 살아가자고
귓속말로 사랑한다 했습니다
나무 위의 새들이 물었습니다
사랑이란 그 무엇인가
그리고 또 인간이란
유형진, 외가
솜사탕 기계에서 설탕 실이 풀어져 나무 막대에 모이듯
손주, 증손주들이 외할머니 집 툇마루에 모인다
‘달리아’와 ‘백일홍’과 ‘맨드라미’가 성한 계절
‘토실’, ‘토돌’이란 이름의 붉은 눈 흰토끼들이 함께 한 가족 캠프에
가겟집에서 사 온 아이스크림은 소복한 외할머니 흰 머리카락
손주, 증손주들 다 떠난 여름밤의 툇마루엔
음력 칠월 보름달 혼자 월식을 하고
솜사탕은 너무 금방 녹는다
김행숙, 착한 개
착한 개 한 마리처럼
나는 네 개의 발을 가진다
흰 돌 다음에 언제나 검은 돌을 놓는 사람
검은 돌 다음에 흰 돌을 놓는 사람
그들의 고독한 손가락
나는 네 개의 발을 모두 들고 싶다. 헬리콥터처럼
공중에
그들이 눈빛 없이 서로에게 목례하고
서서히 일어선다
마침내 한 사람과 그리고 한 사람
김경후, 잘 듣는 약
이번 약은 잘 들을 겁니다
의사 말을 듣고
믿고 싶은 그 말을 믿고 나는 묻는다
얼마나 잘 듣지 않았나
이불 속에 드러누운 나의 마음은
컴컴한 창밖 얼어붙은 얼굴을 들이미는 나의 고함조차
듣지 않았지 열어주지 않았지
내가 있어도 나는 빈 방
없어도 나는 나의 빈 방
누구를 기다리는가
골목 구석에 쑤셔 박은 내 밤들
털 빠진 등허리를 말고 자던 내가 버린 고양이들
듣지 않았지 나는
내가 지내온 빈 밤의 소리들
내가 지워버린 빈 밤의 소리들
듣지 않고 딛고 가야 할 소리만을 믿었던 나는
나는 텅텅 빈 소리
그것들을 잘 다지고 잘 부수지만 잘 듣지는 않는 병
앞으로도 나는 듣지 않을
빈 방의 나의 소리들
이 약은 잘 듣고 있겠지
유홍준, 하지 무렵
밭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정지문 앞에 서서
수건을 벗어 펑펑 자신을 때리며 먼지를 털었다
그 소리가 좋았다
나는 밭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먼지를 털고 끓여주시는 국밥이 좋았다
점심때는 늘 뒷산 멧비둘기가 구구 구구 목을 놓아 울었다
마당 가득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텃밭 가득 감자꽃이 피고 지고 있었다
바닥이 서늘한 마룻바닥에 앉아
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그 서럽고 가난하고 뜨거운 국밥을 퍼먹었다
검불 냄새가 나는 수건이었다
펑펑 자신을 때리며 먼지를 털던 수건이었다
구구 구구 목을 놓아 울던 수건이었다
깨끗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은 수건이었다
어머니가 벗어 놓으면 꼼짝도 않고 어머니를 기다리던 수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