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에서 낮은 진동음이 들리고 불이 들어왔다. 카톡이 왔다.
물주 – 오늘 잘 들어갔어? 내일도 집에 올 거지?
준기는 본인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라며 카톡을 하나하나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문자를 보낸 것인지 카톡 스크롤이 끝이 없었다. 내용은 음탕하기 그지없었다.
- 오늘도 자기 몸에 쑤시고 싶구만. 나중에 속옷은 입지말고 와.
- 응, 자기. 나도 근질근질해 달아오른다고!
- 남편은 어때? 끝내줘?
그리고 군데군데 그들이 각자에게 보낸 본인의 나체 사진과 자위를 하는 사진등이 들어가있었다. 목욕탕, 화장실, 그리고 안방까지, 장소를 가리지를 않았다. 준기는 이를 뿌득 갈았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처럼,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기분이었다. 더는 핸드폰을 잡고 있을 수 없었다. 멀리 집어던졌다. 호흡을 다스리기가 어려웠다. 거친 숨을 끈임없이 몰아쉬었다. 당장 주방으로 들어가서 칼을 들고 달려와 자고 있는 미자의 목덜미를 찢어버리고 싶었다. 준기는 얼굴을 양 손으로 비볐다.
옆에서 부스럭 인기척이 들렸다. 미자가 깼다. 그녀는 씩씩 거리는 준기와 옆으로 내동댕이쳐 있는 핸드폰을 보며 상황을 짐작했다.
“핸드폰 봤어?”
핸드폰을 다시 줍고 조립했다. 다시 켜니 작동은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준기가 대답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왜 그랬어······?”
“살아야 하니까.”
“살아야 된다고?”
“애들은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있고 돈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더 들어가는데 그럼 어떡해. 직장에선 여자라고 무시 당하고 거래처에서 오더는 받아야 되고.”
“내가 작가가 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잖아. 기다릴 수 있다고 그랬잖아. 그리고 성공했잖아.”
“언제까지 그래야 되는데, 그리고 작가가 되면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데?”
미자는 울고 있었다. 왼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일어서서 트렁크 가방에 짐을 차곡차곡 챙겨넣고 몸을 일으켰다.
“지금 뭐하는데?”
“우리 갈라서자. 나중에 정리되면 이혼 서류 보낼게. 나 찾지마.”
미자는 그 길로 짐을 들고 나가버렸다. 준기는 침대 맡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나가는 미자를 가만히 눈으로만 좇았다. 쾅, 문이 닫히고 준기는 얼굴을 무릎 사이에 묻었다.
미자는 나체로 헐떡이고 있었다. 온몸에는 땀이 흥건했다. 마치 운동장마냥 둥근 침대 위였다. 창문 밖으로는 너른 정원이 보였고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었다. 미자의 밑에는 이철구가 깔려있었다. 입가로는 미소를 지은 채 미자의 몸 여기저기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는 나이답지 않게 근육이 탄탄했다. 단단한 허리와 허벅지를 이용해 그녀의 몸을 향해 치솟아 오르는 움직임을 반복했다. 마치 용수철 같았다.
끝없이 반복될 것만 같던 움직임이 끝나고 미자는 그의 몸 위에 엎드려 뺨과 목에 입을 맞췄다. 입에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좋았어?”
“응, 끝내줘. 자기는.”
항상 업무가 끝나면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단백질과 채소 위주로 식단 조절을 하는 이철구의 몸은 아직 30대처럼 보였다. 몸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처음에는 마지 못해 그와 잠자리를 함께 했던 미자였지만 어느새 그녀가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처음에 관계를 할 때는 가만히 다리만 벌리다가 지금은 허리를 튕기며 좀 더 요염하게 굴었다. 철구는 그런 미자의 변화에 가장 흡족해했다. 아내와 이혼한지 어느새 10년 째, 그는 항상 여체를 그리워했다. 여기저기 사창가나 노래방 여자들과 관계를 가져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이를테면, 미자처럼) 여자들을 방으로 데려오기도 했지만, 미자가 가장 큰 만족을 주었던 것이다. 애를 둘이나 낳았지만 30이라는 젊은 나이답게 피부는 탱탱했고, 얼굴도 제법 예뻤다. 그리고 지금은 처음과는 달리 좀 더 퇴폐적이고 색정적인 매력이 생겼고 그게 또 자신을 뿌듯하게 했다.
사실 그게 그의 가장 큰 쾌감이었다. 처음부터 발랑 까진 여자애들과의 관계보다, 처음엔 요조숙녀같던 여자를 변화시키고 타락시키는 듯한 느낌이 짜릿했다. 단순히 몸의 쾌감 뿐만 아니라 지배욕과 정복욕을 충족시켰기 때문이었다.
“우리 결혼할까?”
“결혼? 뜬금없이?”
미자가 뜬금없이 결혼 이야기를 내뱉지만 않았어도 쾌감에 젖어 웃고있었을 철구였다.
“남편이 알았어. 문자를 봤어.”
“그래서? 간통죄로 신고하기라도 하겠대? 얼마쯤 찔러줘야 돼 그럼?”
“아냐. 나 이혼할 거야. 그래서 말인데 결혼하자, 자기야. 나 아직 젊잖아. 자기가 몰라서 그러는데, 나 길에 나가면 아직도 번호 달라고 하는 대학생들도 많아!”
“결혼이라······.”
“어차피 자기도 하루하루 나이도 들어가고 집에 여자 하나 있으면 좋잖아. 내가 잘할게, 예를 들어 이런 것도······.”
철구는 숨을 흡 들이쉬었다. 어느새 그의 허리 아래로 내려간 미자가 그의 아랫도리에 입을 맞췄기 때문이었다. 짜릿한 쾌감이 척추를 타고 머리로 올라갔다.
“그래, 뭐. 그것도 좋겠다.”
그들은 다시 몸을 하나로 포갰다.
집에서 짐을 싸서 나온 미자는 친정에 지내고 있었다. 거기서 회사를 왔다갔다했고 철구의 집도 다녔다. 하지만 그녀가 결혼 이야기를 꺼낸 날 이후로 연락이 되지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고 집에 가면 항상 경비를 통해 지금은 집에 없다는 이야기 뿐이었다. 여자에게는 촉이라는 게 있다. 직감적으로 미자는 철구가 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오후 1시 경, 미자가 그의 회사로 들어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비서들이 손님과 함께 있다며 그녀를 막아섰지만 의지를 꺾진 못했다.
쾅, 문이 열리고 사무실 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철구는 두 명의 외국인 바이어들과 함께 있었고, 반갑지 않은 손님이 들어서자 얼굴에 핏대를 올리며 비서들을 불러 축객령을 내렸다. 미자는 도도하게 발길을 돌려 휴게실로 갔다. 다행히 그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미자는 커피를 탔다. 한 모금 마시는데 커피 잔으로 눈물이 뚝 떨어졌다. 애써 괜찮은 척 얼마나 있었을까. 철구가 안으로 발길을 들였다.
“여기까지 찾아왔군.”
“자기 보러 왔지.”
철구는 짐짓 안기려는 미자를 밀어내며 이야기했다.
“앞으로 안 찾아와도 돼.”
“왜?”
“지겨워졌으니까. 또 다른 장난감을 찾아보려구해.”
“ 당신.”
“뭘 기대한 거야. 내가 당장이라도 너 아니면 안 돼 우리 결혼할까? 라고 이야기라도 할 줄 알았어? 더러운 창녀 주제에. 그래도 그동안 함께 한 정이 있으니 이거라도 주지.”
그는 미자의 가슴 사이로 흰 봉투를 슥 집어넣었다. 봉투 사이로 느껴지는 돈뭉치는 제법 두꺼웠다. 미자는 수치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입술을 피가 나도록 꼭 깨물었다.
“그리고 오늘 미팅을 방해한 댓가는 치르게 될 거야. 중요한 미팅이었거든.”
그는 우두커니 서있는 미자를 뒤로 하고 방을 나섰다.
미자는 길가에 있는 포차에서 소주와 오뎅탕을 주문했다. 그녀는 혼자였다. 안경을 낀 중년 과장이 왔다가기도 했고, 커플티를 맞춰입은 남녀가 다녀가기도 했다. 하지만 미자는 망부석마냥 가만히 앉아있었다.
이철구와 그 일이 있고나서, 회사에선 일방적인 해고를 통보했다. 분명 입김이 있었으리라. 그간 가장 매출을 많이 올려주는 거래처인 데다가, 많은 업체들을 연결시켜준 VIP를 미자가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어느 순간 갈 데가 없어졌다. 언젠가부터 화려하게 꿈꾸었던 부자집 사모님의 꿈은 그렇게 날아가버렸고, 또한 자신이 원래부터 갖고 있었던 가족들 또한 지금은 그녀의 곁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술 기운 때문인가 문득 아이들도 보고 싶었다. 지희는 몸이 좀 나았을지, 지석이는 밥은 잘 챙겨먹고 있을지. 남편 또한 작가가 되었다고 하는데 집필은 잘 되고 있을지, 자신 생각은 하고 있을지. 모든 게 뜬금없이 궁금해졌다. 밖으로 나오니 별이 하늘에 촘촘이 박혀있었다. 미자는 홀린 듯 발길을 옮겼다.
미자가 집을 나간지 두 달, 준기는 모든 것이 버거웠다. 살림은 자신이 도맡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집안의 일은 혼자서 하기에 너무 많았다. 하다 못해 음식물 쓰레기통 비우는 일마저 자신이 여태 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며칠 놔두자 음식물 썩는 냄새가 집에 진동한 것이다.
공동으로 하고 있던 육아 또한 혼자서 하기엔 너무 힘들었다. 아이들을 혼자서 데려다주고 또 학교랑 어린이집이 끝날 때쯤 맞춰서 데리고 오는 일, 그리고 엄마가 없다고 징징 대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가정에 안정적인 수입이 없자 돈 걱정이 피부로 끼쳤다. 물론 지금까지는 받은 상금으로 아직까지는 부족함이 없이 쓰고 있었지만 문제는 그 앞이었다. 통장의 잔고는 하루가 다르게 줄어가고 있었고 자신의 다음 소설 집필은 여전히 시간이 더 필요했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수입원이 없는 것이었다. 모르는 척 열심히 글에 몰두해오고 있었지만 마트에 장보러 가면서 돈을 쓰고 나면 통장 숫자 줄어드는 소리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어스름한 저녁이었다. 그는 자지 않겠다고 칭얼대는 아이들을 침대에 눕히는 것까지 끝내고 노트북을 다시 잡았다. 하지만 이내 한숨을 쉬며 덮었다. 오늘 하루는 대청소를 해 너무 피곤했다. 준기는 어느새 슬슬 쌀쌀해지는 날씨 탓에 가벼운 야상을 하나 챙겨들며 문을 열었다. 앞에 누군가가 떡하니 서있었다. 살짝 붉게 상기된 볼에 커다란 눈동자, 미자였다. 그녀는 양손을 주머니에 꽂고 가만히 집앞에 서있었다. 언제부터 기다리고 서있었던 건지 그녀의 피부가 밀랍인형처럼 창백해보였다. 약간 쌀쌀한 날씨에 옷차림도 얇았다.
“안녕.”
“응, 안녕.”
준기는 많은 말을 물어보지 않았다. 자연스레 미자는 문너머로 들어섰고, 대문이 쿵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