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형의 이야기를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렸을 때부터 나와는 다르게 모범적이었던 형은 의외로 특이한 직업을 선택했어. 평소 코카콜라를 좋아했는데 그래서 형은 북극으로 간 걸지도 몰라. 휴가 차 한국을 방문한 형은 4년 만에 가족의 얼굴을 마주한 사람치고는 말이 너무 없었어. 아니,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며칠 동안 지켜본 형의 얼굴은 겁에 질려 있었어. 북극이 너무 추워서 말을 못 하게 된 건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야. 우리 둘 다 과묵한 성격이라 학창시절부터 많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주일 동안 한마디도
안 하는 건 너무 한 거 아닌가?
형이 북극에 돌아가기 전날, 친척들이 형의 얼굴을 보기 위해 우리 집에 모였어.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북극에서 일하는 사람이 나왔다고 형을 유명인사 취급을 했지. 오래간만에 모인 친척들은 갈수록 오르는 세금 이야기에 열을 올렸어. 쥐꼬리만 한 월급에서 세금을 내면 나에게 돌아오는 게 무엇이 있냐면서. 그래서 내가 세금을 안 내는 방법을 택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어.
백수인 나와는 세금은 상관없는 일 같아서 방으로 들어갔지. 형도 따분했는지 먼저 방에 들어와 있었어.
“빙하가 발견됐어.”
뜬금없이 무슨 말인가 형을 쳐다봤어. 더군다나 며칠동안 한마디도 안 하던 형이 처음 꺼낸 말이 빙하 이야기라니.
형은 멍하니 먼 곳만 응시하고 있었어.
“북극에 빙하가 있다는 건 당연한 거잖아”
“너 세금이 어디에 쓰이는 줄 아니?”
나를 무시하는 건가? 부끄럽지만 선뜻 대답할 수 없었어. “어딘가 필요한 곳에 쓰이겠지.”라고 가장 그럴듯한 대답을 했지. 갑자기 빙하 이야기를 하다가 세금 이야기를 하는 형이 이제는 조금 의심스러웠어.
“빙하랑 세금이 무슨 상관인데”
“…………”
조금 머뭇거리더니 이내 입을 열었어.
“빙하 속에 말이야”
“빙하 속이 뭐?”
“그 안에 뭔가가 있어.”
“그게 뭔데?”
“아폴로 506이 분명해”
형은 혼자 중얼거리는 듯이 말했어. 그러더니 피곤하다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는 거야. 다음 날 아침, 내가 일어났을 땐 형이 북극으로 떠난 뒤였어. 형이 가고 나서 안부 메일을 보냈는데,
일주일 동안 평소같이 않던 형이 낯선 탓도 있었지만, 어딘가 불안해 보였기 때문이야. 북극으로 보내는 메일은 해외 배송을 기다리는 것처럼 잊힐 때쯤 돼서야 답장이 와. 언제나 그렇듯 1주일이 지나도 2주일이 지나도 답장은 없었어. -며칠째 기후 악화로 북극 과학기지에 있던 연구원들이 모두 연락 두절 상태가 지속되면서- 쉽게 연락도 닿지 않는 곳이라 나는 기다려야만 했어. 형의 소식을. 뉴스가 보도되고 이틀이 지나서야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연락이 왔어. “한진호 씨 동생분이시죠?”
“네”
“한진호 씨 사망하셨습니다.”
순간 형이 떠나기 전날 내게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어. -배에 타고 있던 94명의 사람까지 모두 사라진 사건. -이 사건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있음 형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그런데 왜 선뜻 이야기하지 못했을까? 왜 뉴스에서는 한번도 이 소식을 전하지 않았을까? 메일을 확인했어. 항상 잊고 있다가 생각이 나면 확인하는 습관이 된 나는 이제서야 한 통의 -지구온난화가 심각해지면서 이 빙하도 서서히 녹기 시작했고 -빙하가 녹고 배가 발견되고 사람들까지 모습을 드러내면 -지구에 있는 인간들이 모두 멸종할 수 있을 만큼의. -우린 이 빙하가 녹지 않게 다시 얼리고 있어. 이 사실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떠나서 난 지금 형의 죽음이 궁금해졌어. “잠깐만요”
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