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은 서른이 되기 전에 결혼해야 된다는 주위의 압박으로 어쨌든 서둘러 결혼을 하게 되었다.
적극적이고 남자다운 기혁을 부모님과 친구들이 좋게 봤고 그런 사람 어디 없다며 주변에서 서두르는 바람에 못 이기는 척 간신히 서른 살이 되기 전 스물아홉 늦가을에 떠밀리다시피 결혼을 한 것이다.
결혼을 망설일 때 주변에서는 이렇게 말들을 했다.
‘여자는 자고로 남자가 좋다는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 거야! 여자가 좋아서 결혼하는 부부치고 끝까지 사랑하며 사는 부부 없다더라!’
여자는 사랑을 받는 거지, 라는 어른들의 무언의 잠재된 말들이 일상에서 얼마나 많이 먹히는가!
여자는 수동적이어야 하고 다소곳해야 한다는 말을 학교 다닐 때부터 이미 누누이 들어 잘 알고 있는 미영이었다.
미영은 결혼할 당시 기혁씨 말고 약간의 썸을 타고 있는 직장에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에게 호감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썸은 썸일 뿐 서른이 다가오는 나이에 이제 썸타서 언제 결혼을 하게 될 것인가? 혼자 답답했었다.
연하의 직장 동료는 미영의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풋풋하게 다가오고 있었지만 결혼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연하보다는 남들이 가는 길, 두 살 연상이 정답이다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주변에서는 서른을 넘기면 똥값이라고 다그치는데 새로 썸을 타는 기분이야말로 아주 긴장되고 좋았지만 그렇게 한가한 나이가 아닌 게 문제였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이렇게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너 나랑 결혼 전제로 사귀고 싶은 거야?’
너 나랑 결혼까지 갈 수 있어? 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본다면 역지사지로 내 입장이라도 아마도 달달 했던 감정까지 또라이라 생각하고 놀라서 줄행랑칠 것 같았다.
거기에다 또 하나 안정된 기혁 씨와 결혼을 하는 게 더 편하다고 무의식이 그렇게 이끌기도 했다.
결혼을 앞두고 갑자기 미영은 예전에 교수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강의시간이 아닌 파전에 동동주를 놓고 주거니 받거니 하던 술자리에서 했던 말!
그때는 교수님 말이 조금 과격하다 싶었지만, 막상 결혼을 앞에 두니 그 말이 크게 두각 되어 떠올랐다.
어른들의 말이 젊었을 땐 갸우뚱 이해가 가지 않던 말들이 나이가 들다 보면 하나씩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 적당한 때 떠오르게 될 때가 있었다.
“자네들은 결혼은 어떤 사람하고 하고 싶은가?”
“사랑하는 남자요.”
모두 똑같이 조금도 서슴없이 대답했다.
“사랑하는 남자?”
“네.”
“결혼을 앞두었다고 생각해 봐도? 오직 사랑하는 사람과 할 거란 말이지?”
“당연하죠!”
“지금은 자네들이 그렇게 말하지만, 막상 결혼을 앞두면 자네들의 무의식이 상대의 학력, 그 사람의 연봉, 부모의 재력, 집안 분위기, 준수한 외모...... 그런 것들을 고려하게 되지.”
학생들은 머뭇대며 딱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고 서로의 얼굴만 바라봤었다.
“서로 수지타산을 밑바닥에 깔고 가기 때문에 사실 까놓고 말해서 결혼은 서로 장사하는 거야. 장사는 밑지는 장사보다는 남는 장사를 하려고 하지.”
그땐 다들 장사란 말에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결혼을 앞둔 미영은 갑자기 그 말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다.
‘나를 먹여 살릴만한 남자인가? 외모는 보통은 되고, 학력도 괜찮고, 집안도 좋은 기혁을 선택하는 나 아닌가?’
그렇게 기혁을 결정해놓고 미영은 새로 썸을타는 신입에게는 이렇게 혼자 말을 했다.
‘그래 너랑은 인연이 아닌 게야. 인생은 타이밍인데 너랑은 아쉽지만 여기까지...’
미영은 결혼을 앞두고 과연 남자가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들은 정말 다 끝까지 사랑하고 살 수 있을까? 살짝 의문이 되었지만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을 따를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기혁은 죽기 살기로 미영에게 매달렸기 때문에 주변에서도 그런 사람 없다며 뭘 망설이냐며 오히려 망설이는 미영을 한심스러워했었다.
‘너보다 조건도 좋고 능력도 있고 거기다 널 사랑해서 너 아니면 죽는다는데, 아니 왜 망설여? 그런 사람 어디 없어 난리들인데? 너 예쁜 거 믿고 뻐기는 거니?’
다들 몰아붙이니 떠밀리듯 결혼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미영의 친정 부모님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담배는 물론 술을 단 한 번도 입에 대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취해본 적이 없으니 늘 깔끔하신 모습이셨고 엄마의 집안일도 부탁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도와주시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거기에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서 몸에 밴 어리광에는 미영을 따를 자가 없을 정도로 일가견이 있었다.
미영의 애교에는 세상의 누구도 당해낼 자가 없을 정도였다.
결혼을 결정하고 나니 결혼을 하면 막연한 희망이지만 부모님이 보여주던 그런 다정다감한 가정의 모습에다 미영 자신의 애교가 곁들여지면 행복하게 살 것도 같았다.
기혁은 연애 시절에는 아버지만큼이나 다정다감 했다. 한마디로 피지컬한 어떤 강한 남녀 간의 성적인 끌림보다는 아버지같이 푸근한 다정함과 배려에 미영은 마음을 조금씩 주게 되었던 것이다. 기혁의 현실 불가능한 달달한 말에도 그래도 왠지 그렇게 정말 해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세심하게 배려하고 미영이 원하면 뭐든지 들어 주었다.
‘이 정도면 됐어!’
연애할 때 잘해준 사람일수록 결혼 후엔 실망한다는 것을 순수한 미영으로선 그땐 알 수가 없었다.
내 것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한 사람에게는 사람이 심리적으로 상대 앞에서 조심하고 더 배려한다는 것을 그 나이에 알아챌 사람이 어딨겠는가? 그런 심리까지 깨달으려면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보기 전에는 그 누구라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거기에다 본인이 자신의 단점을 가면을 쓰고 다가오는 데야 미리 알기란 어려운 것이다. 아무리 직관력과 통찰의 힘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그건 불가능하다.
‘살아봐야 아는 것들!’로 세상은 가득했다.
다음회에서 만나요.
#유튜브채널 [이묭영 작가의 일상] 은 제가 직접
노래는 물론, 피아노연주, 플룻연주, 강연, 제가 쓴 소설책 읽어주기등 한마디로 골라보는 재미가 있도록 다양하게 꾸미고 있습니다.
이제 시작한지 몇달 되지 않았지만 여러분들이 사랑해주시고 관심 가져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플룻연주 하나 올려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