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너무나도 무거웠고 또 쓸쓸했습니다.
3년 전, 일본에서 워킹으로 돈 벌때
우연히 군함섬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일본 근대화 발전이 꽃 피운 곳이자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령출몰지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했습니다.
일본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아파트가 들어서고 전성기때에는 도쿄의 9배에 달하는 세계최대의 인구밀도를 자랑했던 곳이라고 하니
호기심이 만발하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한번 가볼 수 있을까 알아보던 차에
그곳에 그, 군함섬에 엄청난 피와 눈물의 역사가 숨겨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좀 이른 휴가를 받아서
군함섬에 다녀왔습니다.
여정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후쿠오카까지 2시간50분.
후쿠오카에서 나가사키까지 기차로 2시간,
그리고 나가사키항에서 다시 배를 타고 30분 정도 서쪽으로 서쪽으로 갑니다.
군함섬에 착륙하기 위해서는 4300엔 정도의 요금이 필요한데 100% 사전 예약으로
상륙하기 위해서는 섬에서 불순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 안전요원의 말에 적극적으로 따를 것 등의 서약서를 반드시 써야만합니다.
맨 정신으로는 다녀오기 힘들 것 같아서 소주를 한팩 준비하려고 했는데 음주행위는 물론 술을 들고 가는 것도 금지입니다.
출발과 동시에 나가사키항과 주변섬들에 대한 관광안내가 이어지는데
지금도 해상자위대 군함을 만들고 있는 미츠비시조선소가 건재합니다.
비가 구슬프게 오는 날인데도 운이 좋게 상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멀리서부터 딱 네모반듯한게 보통 섬이랑은 생긴 것 자체가 다릅니다.
본래는 하시마라는 이름의 섬이지만 미츠비시가 생산한 일본제국주의 해군의 주력 군함과 모양이 닮아 있어서
군함섬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하네요.
석탄이 발견 된 것은 19세기 중엽의 일이고 그걸 미츠비시에서 현재 시가로 10억엔 정도에 구입해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본래는 한바퀴 도는데 10분도 안 걸리는 작은 바위섬인데요.
사진에서 보이는 초목이 자라난 곳이 본래의 섬지형이고 그걸 콘크리트로 확장하고 확장시켜서 지금의 모양이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파도가 거센 지역이라 5m이상의 콘크리트벽이 섬전체에 둘러져 있습니다.
.....감옥이 따로 없는 것이죠.
보통 군함섬 출신의 자원봉사자들이 관광안내를 맡고 있습니다.
과거 섬의 모습과 현재의 무참한 보습을 비교해설하는 내용이 주입니다.
오른쪽 콘크리트 기둥들은 캐낸 석탄을 운반하던 컨베이어벨트의 흔적으로
군함섬의 석탄은 매우 질이 좋아서 노동들의 일본제일의 석탄을 우리가 캐낸다는 자부심에 가득차있었으며
난방용이 아닌 폭탄제조용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정면에 보이는 흰건물은 노동자들의 자녀를 위한 6층짜리 학교 시설인데
4층까지가 초등학교 5층부터는 중학교, 꼭대기에는 유치원이 있다고 합니다.
건너편엔 대규모 운동장도 있어요.
당시에 노동자들은 가족단위로 섬에 들어왔기 때문에 생활유지를 위한 모든 시설이 섬에 있었다고 합니다.
다방이나 술집, 영화관 같은 유락시설은 물론이고 이발소, 목욕탕, 대규모의 병원 등도 있었고
보통 노동자들은 우리나라로 치면 3평 규모의 아파트에서 생활은 했는데
모든 시설물은 지하터널로 연결되어 있어 비가 오는 날에서 섬 끝에서 끝까지 비를 맞지 않고 이동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하네요.
정면 보시는 건물은 일본 최초의 철근 콘크리트 아파트로 곧있으면 지은지 100년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인구가 정점을 찍었을 땐 몇 만명이 이 좁은 땅에서 생활했다고 하고
64년 도쿄 올림픽 당시 모든 섬 주민들이 티비로 올림픽 중계를 시청했다고도 합니다.
생활용수는 주로 해수를 가열하거나 빗물을 받아 썼으며 식수만 나가사키에서 지하파이프를 이용해서 공급받았다고 하네요.
스산하고 또 스산해서 발걸음이 너무 무겁더라고요.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에서 생죽음 당한 노동자들의 고통과 처참한 현실은
전혀 조명되지 않은 채 사람들이 히덕거리면서 관광하는 것이 너무나도 낯설고 또 낯설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나가사키 방송에서 만든 군함섬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는데요, 이게 하일라이트였네요.
군함섬의 노동자들은 일본 근대 발전에 이바지한 자랑스러운 우리들의 아버지, 어머니였다.는
나레이션 밑으로
지나가긴 지나갑디다.
당시 극심한 노동력 부족 때문에
탄광에는 외국인노동자들이 다수 유입되었으며
군함섬도 예외는 아니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랬던 것이지요.
할말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정리가 되지를 않네요.
현재까지도 미츠비시는 당시 목숨을 건 노동자들의 정당한 대가 지불에 침묵하고 있습니다.
온갖 매질과 임금 착취를 견디지 못해 탈출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바다로 뛰어내릴 수 밖에 없었다는..
생존자들의 눈물어린 인터뷰를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뭐가 맞고 그른지 세상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요.
억울하게 희생당한 강제징용노동자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