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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푸른 가빠의 저녁
다섯 개의 오뎅을 먹고
꼬챙이를 세고 구겨진 돈을 냈네
푸른 가빠는 쓸쓸하고
아늑하고
푸른 가빠는 왠지 국물처럼 서러워
커다란 돌덩어리로 끄트머리를 눌러놓은 것 같은 청춘이 있었네
바람이 불면 그래도 들썽거리던 청춘이 있었네
푸른 가빠의 저녁
붉은 당근과
비릿한
오이와 매운 양파조각을 씹으며 나는 울었네
등받이가 없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울었네
맑은 소주잔처럼 엎드려 울었네
조동화, 나무의 정체
장작을 태워보고 알았다
나이테는
한 겹 한 겹 쌓인 세월이 아니라
켜켜이 잠재운 불이었음을
온몸의 잎들을 집열판처럼 펴서
해해연년 봄부터 가을까지
그가 열렬히 흠모한 태양이었음을
마침내 땅에 묶인 저주를 풀고
하늘 향해 회오리치는
자유의 혼이었음을
장작을 태워보고서야 처음 알았다
감태준, 잇자국
사과를 한입 베어 씹다가
사과 속살에 깊게 패인 잇자국을 보고
미안했으리
동글동글하게 살온 사과의 일생에
구덩이를 팠으니
김용택, 새들이 조용할 때
어제는 많이 보고 싶었답니다
그립고, 그리고
바람이 불었지요
하얗게 뒤집어진 참나무 이파리들이
강기슭이 환하게
산을 넘어왔습니다
당신을 사랑했지요
평생을 가지고 내게 오던 그 고운 손길이
내 등 뒤로 돌아올 때
풀밭을 보았지요
풀이 되어 바람 위에 눕고
꽃잎처럼 날아가는 바람을 붙잡았지요
사랑이 시작되고
사랑이 이루어지기까지
그리고 사랑하기까지
내가 머문 마을에
날 저물면
강가에 앉아 나를 들여다보고
날이 새면
강물을 따라 한없이 걸었지요
사랑한다고 말할까요
바람이 부는데
사랑한다고 전할까요
해는 지는데
새들이 조용할 때
물을 보고
산을 보고
나무를 보고, 그리고
당신이 한없이 그리웠습니다
사랑은
어제처럼
또 오늘입니다
여울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강물을 만들고
오늘도 강가에 나앉아
나는 내 젖은 발을 들여다봅니다
배창환, 냉이꽃 봄
우는구나 그대
아무데나 퍼질러 앉아
착한 꽃등 하나 달고
돌아앉아 우는구나
이 겨울이 가고
봄이 올 동안
너의 넋은 갈 곳을 잃고
밤마다 돌아오는 빛이 되어
처참하게 박힌
이땅의 꽃이여
쓰디쓴 진액 같은 나날을
질겅질겅 삼켜
아직은 봄이 아닌 땅
총검과 철망이 어둡게 빛나는 곳이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모여
엉엉 울다 가는구나, 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