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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생활
찬물에 걸레 빨다가 문득
고 계집애, 백석의 시에 나오는
내지인 주재소장 집에서 밥 짓고 걸레 치던
고 계집애 생각이 났다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
이공, 파문
돌의 날개를 본 적이 있다
당신 생각만 해도 어둑해지던 강가
당신 생각으로 굳어져버린 돌 하나 다듬어서 물수제비 뜰 때
떠오를 듯 가라앉을 듯 더 보내지 못한 채 멎은
자리
미련처럼 가라앉아버린 그 자리에서
온통 당신 스치고 간 흔적밖에 없다고
둥근 날개 펴고 다시 내게로 돌아와 손등을 적시는
파문
돌의 날개로 젖은 손등 말려본 적 있다
이재무, 징
징은 울고 싶다
다시 한 번 옛날을 울며
울음의 동그라미 속에
나무와 꽃, 사람을 가두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그의 울음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의 울음은
이미 어제이고 충분히 낡았으므로
새 악기의 향내에 취하다 보면
한때 신명으로 몸 흔들며
목청껏 부르던 노래
왠지 시들하고 구차해진다
징 속에서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징 속에 들어가
징의 일부가 되어버린 몇 사람만이
광 속 어둠 안에서
퍼렇게 녹슬고 있다
징은 울고 싶다
쩌렁쩌렁 천년을 한결같던 솜씨
울음의 곡괭이 휘둘러
거만한, 저 위선의 모래기둥
흔들고 싶다
박기영, 눈
겨울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늘을
떠돌아다니는 영혼들을 불러다
눈이 되어 내리게 한다
이동순, 슬픈 가마우지의 노래
어부의 배에 실려와
나는 망망한 바다 위로 내던져졌다
어부가 내 발목을 잡아매고 있다는 것도
나는 한 순간 깜빡 잊어버리고
다만 물속의 고기떼를 쫓아 두리번거린다
넓은 갈퀴로 물살 헤치며
발밑으로 달아나는 저 물고기를 향해
온 힘을 다해 자맥질한다
내 큰 부리는
곧 한 마리의 물고기를 물고 떠오른다
눈부신 햇살에 어깨 으쓱이며
나는 내가 잡은 물고기를 대뜸 삼키려 한다
그러나 가늘고 긴 내 목에는
이미 노끈이 조여져
그 고기 결코 목구멍을 넘어가지 못한다
이때 어부는 재빨리 줄을 당겨
내 목에 걸린 고기를 뽑아 바구니에 담는다
나는 또 빈털터리가 되어
막막한 바다 위로 내던져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