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MTKnYS6rEnw
구석본, 식사
은빛 고요가 불타오르는 쟁반 위에
구워진 생선 두 마리가 놓여 있다
한 생을 자글자글 태우던 허기
정면 체위로 누워 있다
나이프로 먼저 대가리를 자르고 꼬리를 자른다
그다음 배때기를 쩌억 가르면
살보다 먼저 드러나는 주렁주렁 엮인 알들
포크로 찍어 천천히 씹으면 하나씩 입 안에서 터진다
비릿하면서도 고소하다
한 생을 통째로 먹는 맛이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면서 알들이 푸득거린다
비로소 한사코 내 살 속으로 파고든다
알알이 내 살 속에 박혀 부풀어 오른다
어느새 내 몸은 만삭이다
만삭의 몸으로 식당을 나서면
알에서 깨어나
내 안에서 끊임없이 푸드득거리는 치어들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채울 수 없는 허기로 자글자글 타오르는 나를
쟁반 위로 스르르 올려놓고 있다
곽재구, 어란진에서
바람처럼 이곳 바다에 섰네
어깨 너머로 본 삶은 늘 어둡고 막막하여
쓸쓸한 한 마리 뿔고둥처럼
세상의 개펄에서 포복했었네
사랑이여, 정신 없는 갯병처럼
한 죽음이 또 한 죽음을 불러일으키고
더러는 바라볼 슬픔마저 차라리 아득하여
조용히 웃네
봄가뭄 속에 별 하나 뜨고
별 속에 바람 하나 불고
산수유 꽃망울 황토 언덕을 절며 적시느니
함민복, 마흔 번째 봄
꽃 피기 전 봄 산처럼
꽃 핀 봄 산처럼
꽃 지는 봄 산처럼
꽃 진 봄 산처럼
나도 누군가의 가슴
한 번 울렁여 보았으면
이복희, 삭발
머리를 조금 잘랐더니
어느새 시가
짧아졌습니다
긴 머리만큼이나 길었던 시
이제는
한 줄의 시도 쓰지 않기 위하여
비구니처럼
나는
푸른 삭발을
꿈꾸고 있습니다
유안진, 술친구 찾지 마라
아무리 마음 맞는 여럿이
얼크러 설크러져 마셔봐도
결국에는 저 혼자서 마시는 것이 되고
저마다 제각기
제 상처만을 찾아가는 외로운 술자리
멱살 잡을 원수도
목을 안고 같이 울 그이도
결국에는 외동그레 저 하나일 뿐
가엾은 제 몸밖에 누가 또 있다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