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학, 나를 울렸다
철근막대기로 꾹 찔러 넣은 것처럼
마루 밑구멍들이 끈끈이로 막혔다
오랜 시간 벽을 타고 흘러내린
끈끈이 액이 타일 바닥을 덮었다
쥐구멍 앞에 놔둔 끈끈이가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쥐구멍들을 쑤셔 막고 있었다
제법 덩치가 큰 쥐였으리라
사료 한 알 주워 먹으려다 그만,
끈끈이와 한 몸이 되었으리라
끈끈이를 뒤집어쓰고
데굴데굴 굴렀으리라
구멍 앞까지 굴렀으리라
구멍 속으로 기어들었으리라
털이 뽑히고 가죽이 늘어나
몸이 헐렁해질 때까지
울음소리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끈끈이로 구멍을 틀어막았으리라
자신의 구멍으로 사라진 쥐들을 떠올렸다
다시는 그 구멍으로 나오지 않은
쥐들의 눈빛을 떠올렸다
어디론가 맞구멍을 뚫고 나갔을
끔찍한 쥐들의 기억을 더듬었다
김정신, 이 그물을 어찌하랴
어쩌다 말을 만지는 자로 태어나
말을 다스리지 못하고
말을 건너지 못하고
다가오는 말에
혹은 내뱉는 말에 걸려 넘어진다
말에 걸려 울고 웃는다
불쌍한 우리네
말을 태워버릴 수도 없고
나를 태워버릴 수도 없고
한 세상 건너가는
이 그물을 어찌하랴
말 앞에 엎드려
말의 현현을 겸손히 지켜볼 뿐이다
고영민, 눈이 온다
눈이 온다
눈이 오는 산등성이에 황소가 묶여 있다
황소는 묶여 있고 눈이 온다
황소의 큰 눈을 닮은 눈이 황소의 새끼를 친다
눈은 그렁그렁 황소를 닮았다
울음소리를 닮았다
울음소리를 따라 황소를 닮은
함박눈이 온다
어미를 따라온 어린 눈이 황소의 등에 얹힌다
젖을 물듯 허공을 치받으며
눈은 오고
젖은 쇠방울 소리는 오고
황소는 묶여 온종일 잔등에 얹힌
제 새끼의
흰 눈을 턴다
문인수, 난타, 소나기
너의 양철지붕 창고를 본 적 있다
텅 빈 양철지붕 창고를 기억한다
어둠 속으로 꽉 찬 양철지붕 창고
너는 죽어 거기 걸터앉아 속 시원히 두드리고
나는 살아 돌아눕고 돌아눕는 밤
등허리가 시원하다
고광헌, 다시, 광화문
나는 졌고
너는 이기지 못했고
너는 물러났고
나는 앞으로 나아갔고
모두 지기도 하고
모두 이기기도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