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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싯적에 읽은 박완서 선생이 쓴 ‘미망’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어쩌다가 거시기한 하룻밤을 보낸 늙은 주인공은 작부에게 다시 찾아간다. 우쨌거나 짜증이 난 작부가 ‘임금님도 가죽방아를 찧는다’ 등의 절묘한 말들을 내뱉는데, 그중 압권은 ‘털요강’이었다. 요강이 뭔지도 모르는 세대야 짐작도 못하겠지만 나는 그 절묘한 표현에 탄복하고 말았다. 그 말이 박완서 선생이 만든 소위 신조어인지, 선생도 어디서 들은 말인지는 모르겠다.
거기에 감화 받은 나는 ‘꽃동굴’이란 말을 만들었는데, 어디까지나 그 말은 내가 사랑한 여자들에게 밀교의 비의처럼 은밀하게만 써먹은 터라 널리 알려질 수가 없었다. 최근에 들어서야 SNS에서 몇 번 슬며시 공개를 하기는 하였으나, 4류작가인 나를 누가 주목하겠는가. 아직 ‘꽃동굴’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아, 띠바! 4류작가의 비애여!
나는 이렇게 거시기를 아름답게 정의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던 것이다. 벗님들께서 객관적으로 봐도 ‘꽃동굴’이 훨씬 근사하지 않은가? 그렇게 느끼신다면 즐겨 사용하시기 바란다. 저작권료는 받지 않는다.
그런데 어젯밤 자신의 글을 읽어보라는 모 밴드 여성 리더의 명령을 받은 나는 허겁지겁 달려갔는데, 그 내용은 이랬다.
여차저차해서 접촉사고가 났는데, 리더는 별 잘못도 없었는데 덮어씌우려 했다는 것이었다. 근데 상대 차주의 풍모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나는 꼭 도둑놈 제발 저리듯 했던 것인데...... 왜냐? ‘ㅇ방망이도 션찮을 놈'이라 했던 것이다.
그래 나는 나더러 보라는 말인가 싶어 민망하기도 해서 ‘ㅁ방망이’로 좀 순화한 댓글로 너스레를 떨었던 것인데, 리더께서 제대로 ‘ㅇ방망이’로 쓰라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이분이 ‘늙은 여자는 여자가 아니라 그냥 사람일 뿐’이라는 이상한 신념에 투철하신 분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여성에 대한 로망이 깨지는 아픔을 느껴야 했다. 지나치게 씩씩하기는 해도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가 워찌 그런 말을 그래 아무렇지도 않게 쓴단 말인가. 쫌 그러지 마시라. 제발 ‘ㅇ방망이’ 같은 이름 말고 덜 거시기한 이름을 만들어 쓰시라.
늙은 여자는 여자가 아니라는 말은 남자들이 자신들의 부실함을 은폐하기 위해 만든 세상에서 가장 큰 음모요, 가짜뉴스다. 여성들은 존재 자체로도 아름다우니 남자들이 의도하는 대로 끌려다니지 마시라. 안치환도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 고 노래했다. 남자도 꽃보다 아름답거늘, 여성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남자들은 태어나서 꽃동굴을 떠나는 순간부터 본질적으로 외롭다. 그래서 끊임없이 꽃동굴로 회귀하려고 환장을 한다.
연어들도 강물이 맑고 향기로워야 돌아온다. 여성들도 남자들의 부실함만 탓하지 말고 만반의 준비를 다하라.
그래서 은비늘을 반짝이며 물살을 거슬러 힘차게 돌아오는 싱싱한 연어들의 거친 숨결을 맞으라, 여성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