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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출처 : https://youtu.be/1SGG7G_XzU4
문효치, 멍석딸기꽃
울지도 웃지도 않는다
그냥 잠시 거기 있을 뿐
바람이 흔들어 떨어뜨릴 때
그 모습 우리의 가슴에 그려 놓고
가뭇없이 사라져 간다
말하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다져 열매를 만든다
우리가 그 열매를 깨물었을 때
매끈매끈한 목소리에 실려 나오는
별같이 많은 말들이
입 안 가득 씹히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박정만, 오후 두 시
바람이 잠든 날의 오후 두 시
어디선가 허공을 무너뜨리면서
마치 산악과 같은 조수가 밀려와서는
두 시의 내 영혼을 흔들어 놓았다
나는 급히급히 침몰당했다
마음 한쪽 구석에서 살짝 꺾여진 여름날의
두 시의 빛의 매장
당신도 그것을 보았으리라
고요함이 고요함으로 무너지고
빈 소리가 빈 소리로 요란하던 것을
그러나 세상은 세상
반쯤은 병(病)
바람이 잠든 날의 오후 두 시
병(病)을 일으키며 바람이 조용히 다가와서는
내 귀를 지하(地下)로 내리게 하는
그러나 폭풍(暴風)은 폭풍
당신도 그것을 보았으리라
칼이 칼로써 무너지고
반쯤은 죽음
죽음을 일으키며 바람이 조용히 다가와서는
하린, 새점
이야기를 발설한 죄로 독방에 갇힌다
단단한 주둥이가 형벌로 점을 치고 주술이 역하게 삭아간다
당신의 운명이 무작위로 선택되고
한 줄도 못 채운 문장으로 뒤집힐 때
퇴화된 부리가 아무렇지 않게 이별을 통보한다
없는 소문이 등을 돌리는 순간
사랑했던 여자가 무녀가 되었단 걸 나이 사십에 듣는다
지나간 것은 예감이고 지나갈 것은 착각이다
깃털 하나에 사랑과 죽음이 정의되니
당신은 당신의 전생을 옛날처럼 구긴다
이은규, 잘못된 지도
발걸음
앞으로 가는 혹은 지나온 시간으로 돌아갈
내가 너에게 걸어온 길
네가 너에게 돌아갈 길
그 교차점에서 만나고, 헤어질 우리
성춘복, 빈자리
의자 하나가 건너왔다
다듬은 푼수로 보아
하퇴뼈는 부실한 듯
등침도 얼마 휘었으나
내 위엄에 엉그름은 없을 것 같고
애써 내칠 바도 아니었다
더욱 빈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넘기기가 뭣해서
간곡함인 양 받았으니
안경을 겹으로 써도 잘 안 보이는
내 수고로움에 절로 지쳐서
그러려니 앉아보기로 했고
웬만큼 길 잘 들이면
밑둥이사 고칠 수 있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