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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출처 : https://youtu.be/8J1zSsdFliM
윤명수, 칠성무당벌레
칠성무당벌레 한 마리가
손바닥 위에서 괘를 살피고 있다
등짝을 잔뜩 웅크린 채
더듬이를 세워 찬찬히 손금을 살피고 있다
놈은 이미 천도(天道)을 알고 있다는 듯
내 손바닥을 읽어가며
제 발바닥으로 내 운명을 점치고 있다
지금 놈에겐 점괘가 나와 있을 터
우주 빅뱅의 비밀을 알려주려는 건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로막힌
길을 찾아주려는 건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손바닥 끝이 곧 지구의 끝이라는 것일까
지구의 무게를 떨쳐버리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곧 화려한 굿판이 벌어질 것이다
최문자, 지상에 없는 잠
어젯밤 꽃나무 가지에서 한숨 잤네
외로울 필요가 있었네
우주에 가득찬 비를 맞으며
꽃잎 옆에서 자고 깨보니
흰 손수건이 젖어 있었네
지상에서 없어진 한 꽃이 되어 있었네
한 장의 나뭇잎을 서로 찢으며
지상의 입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네
저물녘 마른 껍질 같아서 들을 수 없는 말
나무 위로 올라오지 못한 꽃들은
짐승 냄새를 풍겼네
내가 보았던 모든 것과 닿지 않는 침대
세상에 닿지 않는 꽃가지가 좋았네
하늘을 데려다가 허공의 아랫도리를 덮었네
어젯밤 꽃나무에서 꽃가지를 베고 잤네
세상과 닿지 않을 필요가 있었네
지상에 없는 꽃잎으로 잤네
최서진, 목걸이의 발달 이후
좋아하고 싶지만
더 이상 어두워질 수 없는 밤이
툭 떨어진다
목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처음 보는 침묵
목걸이는 참, 너무 환하고 무겁다
아픈 저녁이면 외로운 사람의 다른 손을 자꾸 만지게 된다
쇄골 사이를 가로질러 차갑게 감기는
실패한 곡선이 두 눈을 익사시킨다
어두운 들판에서 목숨에 대해 생각하지
잠에서 깨어나 문득 목이 긴 여자를 바라보는 기분은 어때
우리는 누구에게 가장 빛나는 존재가 되고 싶었나
눈은 결국 꽃을 본다
그때 가서야 목을 잃어버린 것을
거울은 가까스로 알게 될까봐
어쩌면 목마름이란 내 손을 벗어날 수 없는 것
눈이 먼다는 끝없이 반복되는 예감을 손에 쥔 채
목이 사라지고 없다
위태로운 밤을 맴도는 벌레들이 유리창에 부딪친다
목이 사라지고 없다
김길녀, 그렇게
느리게 천천히 살아라
기다리고 기다리던 마흔
많이 슬퍼해야 할 아픔이
똬리를 튼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실컷 놀 일만 남아 있대서
마냥 좋았다
이승희, 맨드라미 정원
저녁이 오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무엇과 무엇 사이에 아무도 살지 않는 집 있습니다
허공도 바닥도 아닌 곳에서
머리를 부딪쳐 피 흘리는 날 있습니다
잠을 자도 되는지
이쯤이면 그만 죽어도 되는지
묻지 못하는 날 있습니다
날마다 자라나는 과거도 있습니다
내가 버려진 상자가 되는 것은
정말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 입니다
아무도 날 데리러 오지 않아도
장례식은 어디서든 시작되고 끝날 것 입니다
나의 삶이란 한 줄로도 충분해서
누구든 나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나는 맨드라미 정원에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