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BGM] 내겐 이제 거울이 필요 없다
게시물ID : lovestory_891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24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1/10 11:00:30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8J1zSsdFliM






1.jpg

권혁소모든 길

 

 

 

모든 길은

오르막이거나 내리막이다

단 한 뼘의 길도 결코 평평하지 않다는 것

늦게 배운 자전거가 가르쳐준다

 

춘천에서 속초를 향해 가는 길

느랏재 가락재 말고개 건니고개

오르막이면서 곧 내리막인 그 길

미시령을 넘어서니 바다다

 

바다그 또한 끝없는

오르내림의 반복

그러면서 배운다

봄이 오기까지는

모든 관계가 불편하다는 것







2.jpg

이성선거울

 

 

 

내겐 이제 거울이 필요 없다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 하고

부지런히 들여다보던

거울은 필요 없다

 

하늘을 바라보면 그것이

나의 거울이 되었다

바닷가에 나가 높은 물결을 바라보면

그것이 나의 거울이 되었다

 

냇물 흐르는 시골길을 걷다가

들꽃에 얼굴을 묻으면

그것이 나의 거울이 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이보다 더

매일 아이들 얼굴 속에

나의 얼굴을 묻으면

그 눈빛들이 진정한 나의 거울이 되었다







3.jpg

전윤호작은 감자

 

 

 

안주로 작은 감자가 나왔다

단골이라고 주인이 덤으로 준

검게 탄 자국이 있는 감자

쥐어보면 따뜻해서

선뜻 껍질을 벗길 수 없다

혼자 술 마시는 저녁

취하면 큰소리로 전화하는 사람들의

소주보다 차가운 입술이 부럽다

함부로 뚜껑을 날리며 병을 따고

죄 없는 젓가락을 떨어뜨리면

새 걸로 바꿔달라는 사람들이 두렵다

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생각하며

내 심장은 망설이며 뛰고

비 없이 흐리기만 한 여름

가뭄 속에서

감자야 난 잘 살고 있는 걸까







4.jpg

강윤미귀신의 시

 

 

 

귀신이 써준 것 같은 당신의 시

요즘은 4차원의 시대니까

영감은 무슨 영감

누군가 대신 써준 걸 거야

 

귀신 하면 엄마가 떠올라

죽음의 순간그녀의 몸속에

들어갔던 할아버지

어린 나는 할아버지라고 해야 할지

엄마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그냥 귀신이라고 생각했었지

어쩜 얼굴 없는 아이가 될 수도 있다고 상상했었지

 

본 적 없는 표정이지만

어떤 때엔 나도 귀신이 된 것 같아

컴퓨터 앞에서 귀신이 되는 꿈을 꾸거든

내가 변신로봇도 아니고

아이와 씨름하다 갑자기 시인이 될 수는 없잖아

누구나 잠이 들면 반쯤은 귀신이 되니깐

 

귀신이 시를 써준다면 좋겠어

그래 준다면밥상에 기꺼이

숟가락 하나 더 올려놓겠어

새로 산 접시에 시 한 편 올릴 거야

내 이름과 똑같은 어여쁜 귀신 불러다

옆구리에 차고 잠을 잘 거야







5.jpg

이승주발바닥

 

 

 

지금도 가끔 발바닥이 시리다

발바닥은 내가 걸어온 길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배는 배고픔의 기억이 가물거려도

발바닥은

내가 걸어온 길마다 백열등을 켠다

마른 대추 같은 주정뱅이 애비가

소주병처럼 쓰러져 나뒹굴던 방구석

외풍이 드센 바람벽과

세간 나부랑이에 붙어 어른거리며 자라던 낡은 그늘

등짝에 얼음장을 지던 방바닥에 누워

밤마다 살아있는 그것이 까닭 없이 거저 서러워

뼛속까지 얼어붙던 날들을

지금도 발바닥은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는 네 발바닥이 무척 그리웠다

너와 발바닥을 마주대고 싶었다

늘 발바닥이 시렸으므로

시린 너의 발바닥을 타고

시리고 시린 너의 가슴에 닿고 싶었다

내 발바닥이 걸어온 길과

네 발바닥이 걸어온 길이 서로 만나

우리가 걸어온 시린 길이 그냥 따뜻해지고 싶었다

우리가 걸어온 시린 길을 함께 사랑하고 싶었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