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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유감 (마지막 편)
그런데 나온 사람은 그뇨가 아니라 운전기사였다. 문을 연 운전기사가 나에게 손짓을 했다.
“형씨, 들오소.”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싸워 보지도 않았는데 상대가 항복을 해버린 것 같은 그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운전기사의 불손한(?) 태도도 마음에 걸렸다. 나를 내동댕이 치면서도 표정에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미안함 같은 것이 배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같잖다는 듯이 나의 아래 위를 훑어보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들을 다 정리하기에는 현관은 너무 가까웠다. 현관 거울에 비친 내 몰골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얼굴이며 팔은 모기에게 물린 자국으로 성한 데가 없었고, 옷은 구겨지고 더러워져서 걸인보다 나을 게 없었다. 그래도 나의 불굴의 의지를 보여줄 수 있어 괜찮을 것도 같았다.
거실에는 그뇨의 아버지, 엄마 그리고 그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뇨의 아버지는 파이프 담배를 꼬나물고 비스듬히 소파에 기대어 있고, 그뇨의 엄마는 뭔가 불안해하는 낯빛을 하고 있었으며, 그 옆에 그뇨ㅡ내 사랑하는 그뇨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나는 얼른 그뇨에게 애절한 눈길을 보냈다. 그래도 그뇨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나는 일단 그뇨의 아버지, 엄마에게 큰절을 올렸다.
“일마야, 내 니인테 절 받을라꼬 부른 기 아이다! 내 이바구했제. 우리 미희가 니 싫다 칸다꼬. 그라고 인자 우리 미희 결혼날짜 잡아났다.”
“그럴 리가 없심더! 그럴 리가 없심더!”
나는 그뇨를 바라보며 외치다시피 했다. 그뇨에게 동의를 구하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뇨의 표정은 너무나 냉랭했다.
“일마가 이거 속고마 살았나? 미희야, 니 입으로 말해조라.”
“예.”
부드러움을 한껏 가장한 그뇨 아버지의 말에 그뇨는 너무나 다소곳하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 이제 낭만씨 싫어요! 그리고 나 결혼해요. 축하 해주러 올 거죠?”
그뇨의 말은 마치 오래 연습한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진심이 아니야! 진심이 아니라꼬! 이거너 절때 니 진심이 아니야!”
나는 애원하며 울부짖었다. 그뇨의 아버지는 득의양양했다.
“니 잘들었제? 니 만약에 또 우리 앞에 나타나가 함마 더 행패 부렜다카머 니너 경찰에 신고해가 바로 처였불 끼다.”
“회장임, 신고하고 할 거도 없십니더. 일마 이거 지인테 맽게 놓이소. 이런 씨레기긑은 눔은 회장임인테 아무 누가 앤가게 지가 알아가 조제 뿌겠심더.”
옆에 서있던 운전기사까지 끼어들었다. 드디어 운전기사에게까지 박해를 당하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뇨의 냉랭한 표정ㅡ그것이 더 무서웠다. 나는 운전기사에게 멱살을 잡힌 채 쫓겨났다. 그뇨에게 애타게 구원의 눈길을 보내봤지만 그뇨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계속 무포에 있을 수도 없었다. 나의 집 또한 그곳이었으므로 소문이라도 나서 부모님이 아시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아들의 꼴을 보신다면. 하는 수없이 서울로 돌아온 나는 출근도 않고 술에 절어 살았다.
며칠 후, 그뇨에게서 한 통의 편지가 왔다.
낭만씨에게
낭만씨는 어차피 나와 결혼할 수 없어. 낭만씨는 일의 경중을 모르는 바보거나, 아니면 나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거짓말을 했거나 둘 중의 하나야. 첫째 경우라면 내가 어떻게 낭만씨를 믿고 평생을 살까? 내가 그날 분명히 이야기했었지? 눈병이 옮을 거라고. 그런데도 낭만씨는 내 말을 무시했어. 그 친구들과 술 마시는 게 중요했어, 우리들의 사랑이 중요했어? 둘째 경우라도 마찬가지야. 여자가 발가벗고 덤비는데도 싫다는 남자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내가 그만큼 매력이 없었던 거야? 어쨌든 결국 낭만씨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던 거야.
그리고 정말 낭만씨와 결혼해서는 안될 진짜 이유가 있어. 나는 그날 우리가 계획했던 대로 ㅇㅇㅇ산에 갔었어. 어떤 양아치 같은 넘과 어울려 놀았고, 내 처녀를 그넘에게 줘버렸어. 그날 그 순간 낭만씨를 생각하며 조금 울었다는 걸 밝혀둘께. 나는 낭만씨에게 내 처녀를 주고 싶었던가 봐. 그 양아치 자식, 생리 중인 여자와 ㅇㅇ하면 3년 재수 없다며 왜 말 안 했냐고 날 막 때리더라. 기가 막혀서.
내가 처녀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낭만씨가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두고두고 나 스스로를 괴롭히겠지.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홧김에 처녀를 다른 넘에게 내던져 버린 여자. 나는 그런 여자로 평생을 살겠지. 최악의 경우엔 이혼도 하게 될 거야. 난 그렇게 살기는 싫어.
그럼 그 사람에게는 어떻게 가냐고 묻고 싶겠지. 그 사람과는 사랑 때문에 하는 결혼이 아니니까. 당사자가 배제된 집안 대 집안의, 사업 대 사업의 결합일 뿐이니까. 그 사람은 좀 모자라 보이기는 해도 내 말이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할 사람이야. 나는 낭만씨가 아니라도 충분히 행복할 거야. 내가 원하는 건 사랑이 아니니까.
낭만씨, 내가 낭만씨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거 알지? 낭만씨가 나를 사랑했다는 것도 알아! 그래도 이제는 서로 잊어야 할 시간이야.
낭만씨, 꼭 와서 내 결혼 축하해줘. 와서 잊을 수 있다고 말해줘. 그래야 내가 덜 힘 들 것 같애.
ㅡ낭만씨를 사랑했던 여자가
나는 씻지도 않고 술만 마셨다. 한달 여를 밥은 몇 번 먹지도 않았다. 저러다 죽는다고 하숙집 아주머니가 걱정이 태산일 정도였다. 그때 탈수기 같은 것에 나를 집어넣고 쥐어짰다면 술만 쏟아져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과장을 비롯해 몇몇 동료들의 연락이 있었지만 나는 철저히 무시했다. 당연히 회사에서는 잘렸다.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어 그뇨의 집으로 몇 번 전화를 했지만 그뇨와의 통화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정말 죽고 싶었다. 술이 취해서 엉엉 울기도 했다. 그뇨에 대한 그리움은 안주 없는 술보다 더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뇨의 결혼식 날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물론 나는 그뇨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바보같이 예식장으로 갔다. 손님을 맞고 있던 그뇨의 아버지는 나를 보더니 일순 당황하는 듯하더니 어깨까지 감싸안으며 너스레를 떨어대는 것이었다.
"아이구, 자네 왔능가? 그래, 어른은 평안하시고? 자네는 갈수록 어른을 닮구마는......”
완전히 희극의 한 장면이었다. 그러는데 신랑 측에서 무슨 눈치를 채겠는가.
나를 보고도 그뇨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신부 대기실에서 만난 그뇨는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낭만씨, 왔어? 나, 예쁘지?”
안 그래도 예쁜 그뇨에게 새하얀 드레스는 너무나 잘 어울렸다. 나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녀를 납치해서 도망이라도 가고 싶었다.
그러나 끝내 영화 ‘졸업’에서와 같은 장면은 연출하지 못했다. 너무나 행복한 그녀의 표정 앞에 나는 힘없는 발길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의 결혼문화는 왜 이따위인가? 신랑은 신부가 늙어 쭈그렁망태기가 돼도, 신부는 신랑이 노망을 해도 사랑하겠는가. 왜 이딴 것만 묻고 끝내는가 말이다. 서양처럼 ‘이 결혼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있으면 지금 나오시오! 아니면 영원히 침묵하시오!’ 이렇게 못하는가 말이다. 그랬다면 나는 ‘이의 있소!’ 소리 지르며 한달음에 달려 나갔을 것이었다.
신부대기실에서 그녀가
"낭만씨, 이제 나 잊겠다고 말해 줘!”
라고 했을 때, 뒤끝 있는 나는 어금니를 악물고 말했었다.
"아니! 죽을 때까지 안 잊을 끼다, 가시나야!”
'아폴로’에 원한을 품은 것은 그때부터였다. 눈병을 옳겨준 그 친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자신의 안위 따위는 돌보지도 않고 앞장서서 피 흘렸던 그 친구 같은 사람들 땜에 우리는 지금 그나마 눈치 덜 보고 숨쉬며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더더구나 말 그대로 생리현상인 그뇨의 생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원망할 것은 그놈의 눈병이었다. 나는 ‘아폴로’가 들어가는 상품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신화에 등장하는 아폴론까지도 저주하기 시작했다. 이미 지구로 귀환한 지 20년이 돼가는 ‘아폴로11호’를 시차를 뛰어넘어 추락시키겠다고 ㅇㅇㅇ을 해댄 것도 그때였다. 그러나 그녀를 잃고 나자 거짓말처럼 몸에서 내공이 빠져나가 ㅇㅇ은 겨우 보통남자들 보다 배 정도 더 날아갔을 뿐이었다. 아아, 사랑은 가고, 그렇게 내공도 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10년도 훨씬 지난 지금도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그뇨를 ‘아폴로 안톤 오너’ 이 더럽고 치사한, 헐리우드 액션 같은 왜넘의 종자 쉐이가 다시 한번 아프게 상기시키고 만 것이었다.
오늘 밤도 나는 꼼지락 않고 누워 있다가도 ㅇㅇㅇ만 시작되면 꼭 뇨성상위를 고집하는 팔뚝이 무시무시하게 굵어져 버린 여자에게 깔려, 숨도 제대로 못쉬고 그뇨를 생각하며 몰래 한숨 짓고 베갯잇 적신다.
그래도 소싯적에 단련한 내공이 다 소진되진 않았는지라 혼자서 ㅇㅇㅇ 허벌나게 느낀 여자가 큰 입, 두터운 입술로 뽀뽀를 퍼부으며 느끼한 숨결로 속삭인다.
"낭만씨는 최고야!”
아아! 띠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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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정말 이런 유혹 받구 싶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