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당신은 범수씨가 아니에요.” 순간 나는 쇠망치에 두들겨 맞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소리야.나는 바로 네 옆에 앉아있잖아. 바로 네 앞에.” 다시 유리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해요. 내가 알고 있던 범수씨는 이 세상에 없어요.” 나와 유리사이에 있는 테이블은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유리… 너 마음이 변하거야?” ”아니에요 저는 영원히 범수씨를 사랑해요.” 나는 드디어 화가 나기 시작했다. ”대체 뭐가 문제지.” 유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해요. 전 이만 가볼께요.” 그녀는 입구 쪽으로 걸어가더니 마침내 문을 열고 사라 졌다. 그리고 난 한참 동안을 카페에 홀로 앉아있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유리가 왜 그러는지…
나는 S대에서 생물학과를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우리아버지는 중소기업의 사장으로 우리 집은 꽤 부유한 편에 속하였다. 하지만 올해 봄부터 아버지회사가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한달만에 도산해 버렸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엄청난 빛을 떠맡게 되었다. 아버지가 도산의 충격으로 쓰러지신 후 마침내 돌아가셨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어머니와 형이 교통사고 로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나는 인간이 이렇게 불행해질 수 있을까 생각했다.
유일한 위로가 되었던 것은 바로 유리였다. 유리는 3년전 어느 대학축제에서 만났다. 그때 유리는 대학생도 아니었고 단지 친구를 따라온 회사원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유리는 E여대에 합격해놓고도 집안이 어려워 입학하지 못했다.
예상대로 우리가 사귀는 것을 어머니는 반대하셨다. 그것은 힘든 싸움이었다. 내가 열흘을 굶고 병원에 실려간 다음에야 어머니로부터 유리와의 문제에 대해 허락을 얻어냈고 마침내 약혼식까지 했다.
그후 얼마되지 않아 졸지에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가 되는 불행이 일어 난 것이다.
나는 유리와 바닷가에 갔다. 그리고 빗발이 날리는 어느 날 단둘이 배를 탔다. 바다를 보면 그리고 유리와 같이 있으면 모든 것을 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배가 뒤집히고 나는 다음날 어느 해안 가에 서 발견됐다. 유리는 다행히 마침 지나가는 배에 바로 구조되었다고 한다. 당시 나는 '실종'처리 됐고 모두들 고기밥이 된줄 알았다고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범수씨는 죽었다고…. 그게 돈 많은 시절의 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빈털터리가 된 내가 싫어졌다고 아니야 유리가 그럴 리가 없어, 유리가..
나는 그 카페가 문을 닫을 때까지 혼자 앉아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친구 민국의 집에 묵고 있었다. 민국은 나에게 빈방 하나를 마음좋게 내주었다. 나는 내 방침대에 가만히 누웠다. 내가 구조된지 일주일이 넘어가는데 아직 한숨도 자지 못했다. 이상하게 잠도 오지 않았고 자지 않아도 별로 피로하지 않았다.
”범수야 자니?” 방문이 열리며 민국이 들어왔다.손에는 캔 맥주가 든 봉투와 오징어 한 마리를 들고 있었다. ”아니.” 민국은 캔을 하나 따 나에게 건네주었다.민국도 하나를 따 한 모금 마셨다. ”유리 만난 일 잘 안됐니?” 나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유리는 아직도 내가 살아돌아온것을 믿지 않아.” ”대체 유리는.” 민국도 내 눈치를 보며 말을 잇지 못하였다.
내가 해안 가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가장 먼저 찾은 것은 바로 유리였다. 나는 정신이 없는 동안에도 줄곧 '유리'라는 이름을 불렀다는 것이 나를 구해준 사람의 이야기이다. 나는 곧바로 유리의 집으로 전화를 했고 전화 상에서 유리의 목소리가 등장했을 때 얼마나 기뻤던가. 하지만 유리는 내가 살아온 것을 믿지 않았다. 범수씨는 이미 죽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나는 겨우겨우 유리에게 조르고 강요해 처음으로 만난던 것이다. 하지만 유리는 살아있는 내 모습을 보고도 날 믿지 않았다. 유일한 내희망은 유리였다. 내 희망이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민국과 나 주위에 빈 맥주 캔이 쌓이고 있었다. ”범수야 힘을 내, 넌 지금 너답지 않아.” 나는 화를 냈다.그것은 술기운 때문이 아니었다. 난 술을 먹을수록 정신 이 말똥말똥해지고 있었다. ”나답지 않다고.” ”왜 그래.” ”나는 나야 알았어.바로 범수라고.” ”미안해 내가 그만.” 나는 나답지 않다는 민국의 말에 유리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신은 범수씨가 아니에요.> 나는 민국에게 사과했다. ”아니야 내가 그만. 미안하다..” 민국은 자신이 실수한 부분을 깨달은 모양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마음이 너무나 잘 통하던 친구였다. ”범수야.” 나는 말했다. ”민국아 오늘은 피곤하다.그만 자자.” 사실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난 피곤하지지는 않았다. 단지 혼자있고 싶었다. 민국은 비닐봉투에 빈캔 을 담았다. ”푹 자둬라 범수야.” ”잘자” 민국은 방을 나가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아침에 나는 민국의 집을 나와 옛날집(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빼앗겨버린) 앞으로 갔다.집안의 넓은 정원이 눈앞에 들어왔다.어릴 적부터 내가 뛰 어 놀던 곳이었다. 아버지와 야구도 하고 형하고 술레잡기도 한 그 정원 이었다. 그곳은 지금은 들아갈수없는 곳이 되버렸다.그때 등뒤에서 부르 는 소리가 났다. ”오빠.”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부르는 사람은 은정이었다. 그녀는 아버지 어릴 적 친구분의 딸로 한 동네에 살고 있었다.그 아버지 친구분도 아버지회 사의 도산을 막을려고 애쓰셨지만 그때는 너무 늦은 때였다. 어버지가 돌아가지자 그분은 자기를 아버지처럼 생각하라고 위로해주셨 다. 사실 내가 해안 가에서 발견된 후 차로 난 서울로 데러다준 분이 그 분이었다. 그 분은 앞으로 자기의 집에서 묵으라고 하셨지만 난 정중히 사 양했다. 이미 아버지회사가 흔들릴 때 우리 집은 그분에게 너무 큰 빛을 졌다. 은정이는 3살 아래로 어릴 적부터 나를 잘 따랐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은정이집에서는 나를 사위 삼는다는 애기를 많이 했었다. 내가 유리를 만나지 않았다면 정말로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은정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난 오빠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안녕. 어디가는길이니.” ”학교 가.” 은정이 학교로 가는 지하철을 탈려면 이 길은 돌아가는 길이었다. 난 은정이가 왜 이 길로 가는 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 부터인가 항상 일부러 우리 집 앞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오빠 뽀삐는 잘 있을까?” 뽀삐는 우리 집에서 키우던 애완견 이름이었다. 하지만 뽀삐도 집과 함 께 팔려갔다. ”잘 있을 거야 그놈은 워낙 귀여워서 누구에게나 사랑받을꺼니까.” 그것은 은정이도 마찬가지였다. 은정이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뽀삐 보고 싶다.” ”그래. 참 그 녀석” ”오빠 오늘 할일 있어?” ”아니 왜.” ”있잖아 내가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같이 볼만한 사람이 없어.” ”은정인 남자친구도 없니.” ”핏 그건 오빠가 더 잘 알잖아. 내가 남자들은 쳐다보지도않는것.” 그 말 안에는 '오빠만 빼고' 하는 말이 생략돼 있었다. ”후후.” ”오빠 그러니까 같이 보러가자.” ”글쎄.” ”아 수업 늦겠다.이따 4시정각에 우리학교앞으로 와 꼭.” 은정이는 대답도 듣지 않고 서둘러 뛰어갔다. ”은정아.” 은정이는 그렇게 하면 내가 거절 못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길을 걷다가 다시 공중전화박스로 갔다.동전을 넣고 유리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난 신호음이 울리기도 전에 끊어버렸다. 이게 무슨 바보같은짓이야 이게 무슨 …
난 4시가 좀 넘어서 은정의학교 앞으로 갔다. 은정이는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또 늦었군, 오빠는 약속하면 항상 늦어.” ”차가 좀 막혀서.” ”지하철도 막히나 좋아 또 한번 봐 준다.”
우리는 대학로에 있는 어느 소극장에 갔다. 그 영화는 '사랑과 영혼'이었다. 강도에게 죽은 연인이 유령이 되어 애인인 '몰리'를 지켜준다는 내용이었다. 왠지 그것이 가슴에 와 다았다. 내가 너무나도 예민해진게 아닐까…
극장을 나서며 은정이가 웃으며 말했다. ”난 다 봤지요 오빠가 우는 것. “ ”내가…” ”아닌 척 하는 것 봐요.” 나는 시계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8시가 다 되가네.” 은정이가 말했다. ”벌써 빠져나가려고 그러는거지. 오늘은 안 돼. 은정이는 아직 저녁도 안 먹었는데.” ”그럼…” ”우리 분식 집에 가서 간단하게라도 먹어.”
우린 사주,궁합이라고 써놓고 천막안에서 점을 보는 곳이 흩어져 있는 길을 스쳐 지나가고있었다. 은정이가 그 가운데 하나로 들어갔다.은정이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오빠 잠시만 와봐.” 난 뭘 쓸데 없는 짓을 다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곧 유리와의 일이 궁금해졌다. 내가 겪은일 그리고 앞으로의 일이 사주에 나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은정이가 물었다. ”오빠 몇시생이야.” ”내가 새벽 2시인가 그럴걸.” 은정이는 내 생년월일시와 자신의 생년월일시를 적었다. 사주를 풀던 할아버지가 고개를 가우뚱하였다. ”지금 날 놀리는 것인가?”
할아버지는 나와 은정이를 돋보기 안경너머로 노려보았다. ”이 사주누구것이지.” 은정이는 나를 가르쳤다. ”이 오빠요. 왜요.” ”젊은이 잘못 안 것 아닌가?” 나는 말을 더듬었다. ”저 맞을텐데요.” ”이 사주는 죽은 사람의 사주야. 이런 좋지못한 사주를 가진 사람이 아직 살아있을 리는 없어.” 나는 깜짝 놀랐다. 옆의 은정이도 놀라는 것 같았다. ”무슨 소리이지요.” ”아마 젊은이가 잘못 안것일꺼야. 이런 사주를 가진 사람은 몰론 그 사 람의 가족들에게도 화가 미칠걸.”
나는 그곳을 나와 말없이 걷고 있었다. 은정이가 조그맣게 말했다. ”오빠 미안해 내가 쓸데없는 것 보자고 했어. 오빠 기분 나빴지.” 은정이는 내 눈치를 살폈다. ”근데 그 할아버지 왕 엉터리다 그렇지.”
난 10시쯤 민국의 집에 도착했다.열쇠로 문을 따고 살짝 내 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려고 했는데 민국이 나를 불렀다. ”범수야” 나는 민국과 민국의 방에 들어가 앉았다. 민국은 담배 하나를 물더니 불을 붙었다. ”오늘 내가 한번 유리를 만나봤어.” ”네가.” ”유리는 너무나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말하더라. 유리는 널 믿지 않아 네가 범수라는것을.” 난 고개를 숙였다. ”유리는 네가 물에 빠져 실종 된날 꿈을 꾸었고 꿈에 네가 나왔데.” ”내가?” ”그래. 꿈에서 너는 이렇게 말하더라는 거야. <유리 널 두고 떠나서 미안해 내가 없더라도 행복하길 바래 정말 미안해 정말> 유리는 널 불렀데. 그리고 꿈이 깨고.” 내가 아래입술을 살짝 물고 말했다. 눈에서는 눈물이 펑펑 쏟아질 것 같았다. ”난 이렇게 살아있잖아.” 민국이 말했다. ”그래 어째든 유리는 그날이후 네가 이미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라고 믿 고 있었지 꿈도 그랬지만 뭔가 너에 대해 느끼는 것이 있었다는 거야. 그리고 이틀 후에 또 꿈에 네가 다시 나왔다는 거야.” ”…” ”꿈에서 너는 유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 한번만 더 보고 떠나려고 유리야 널 찾아갈 나는 결코 내가 아니니 믿지마 그건 내가 아니야 내가 절대로> 그러면서 너는 사라지고 다시 꿈을 깼데.” ”그렇다면 그 꿈때문에 그러는거야.” ”글쎄 다음날 유리는 정말로 너의 전화를 받았는데.” 나는 말했다.어느덧 눈에는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바보처럼… ”그때쯤 아마 내가 전화 했을 거야.” ”그 전화의 목소리는 틀림없는 너였지만 그것은 범수씨가 아니라는 느낌 을 받았데. 그 아니라는 느낌이 너무 강해서 유리 자신조차 지울수 없었 다는거야.” ”유리… 그렇다면.” ”어쨌든 유리는 네가 범수라는것을 믿지 않아. 절대로 범수씨는 아니라며.” 나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말했다. ”아니야 난 범수라고. 난” 민국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는 울면서 말했다. ”민…국…아 내가 범…수 맞지.” 민국이 말했다. ”그래 너는 범수야 나의 소중한 친구 범수.”
일주일후 나는 또 다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바로 유리가 자살한 것이다. 범수씨를 따르겠다는 유서와 함께 그녀는 목을 매 달았다. 이 바보 너의 범수는 바로 여기에 있는데 너의 범수는… 바보같이 너의 범수는 이렇게 살아있다. 말이야. 하지만 나의 유리는 사라졌다. 나의 분신이었던 유리… 그녀는 영원히… 나는 유리가 사랑과 영혼에서처럼 내 주위에 영원히 머물렀으면 하는생 각까지 들었다. 유리의 남동생인 석현이 나에게 편지하나를 건네 주었다. 유리가 쓴 유 서중 하나라고 했다. 유서의 제목 '또 하나의 범수씨에게'로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유서를 읽지 않았다. 내가 그 유서를 읽는다면 내가 유리의 범수 가 아니라는것을 인정하는 것이 될까봐 불안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다니던 S대의 학교의 벤치에 앉아있었다. 난 몇주일째 술을 퍼마셨다. 마구 취해 미친척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술을 마셔도 취하지않았다.
그래 저 앞에서 유리를 만났었지…. 그때 너의 미소를 난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영원히 잊지 못할 미소를… 나는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때 내 등을 두들기는 사람이 있었다. ”범수형” 학과 2년 후배 민기였다.민기는 내 옆에 가만히 앉았다. ”형 오랜만이야.” ”너도.” 민기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형 애기 들었어. 가족얘기도 형이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이야기.” 나는 이제 남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가슴을 억누르고 있었다. 바보 내가 이렇게 약해졌나… 민기는 말을 끊었다가 조심스럽게 이었다 ”그리고 유리라는 형 애인 이야기…” 나는 쓴 웃음을 지었다. ”후 그래.” ”형.” ”이제 난 괜찮아 벌써 다 지나간 일인걸 내가 너희들에게 한말이 있잖아 중요한건 과거가 아니다 바로 지금이다.나는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내 말은 거짓말이었다. 난 이제 다시 살아갈 용기가 없었다. ”형, 존 맥비박사 알지.” ”해양생물학자말이야?” ”응 오늘 학교 세미나 실에서 그 사람의 강연이 있거든 지금거기 가는 길이야.” 그리고 보니 걍연회를 알리는 플랭카드가 붙여있었다.
그 사람은 한국계 미국인인 유명한 해양 생물학자인데 어머니가 한국인이라 한국어에 남날달리 능통하다고 했다. 우리과 학과장인 남두헌교수님의 친구분으로 그 분이 초청하셨다고 한다. 올해가 두 번째인데 처음 일년전에 했을 때 큰 호응을 얻었다는 말을 드렸다. 그때 맥비박사는 현학적인 전문용어도 거의 쓰지않을뿐더러 위트있는 한국어도 구사해 가며 훌륭한 강연을 한다고 들었다. 민기가 말했다. ”형 시간있으면 한번 가볼래.” ”글쎄” ”형 도움이 많이 될거야,강연 끝나고 같이 술이나 먹고 어때.”
세미나 실에는 사람이 꽉 차서(관련 없는 다른과에서도 많이온것같았다) 나와 민기는 보조의자를 사용해 앉았다. 한 10분쯤 늦게 강연이 시작됐다. 맥비박사는 젊은 사람이었다. 그는 고래와 상어의 생태, 그리고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어류에 대한 설명을하였다. 전문적 지식이 없더라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여태껏 알지 못했던 유익한 것이었다. 강연이 끝난후 맥비박사는 학생들의 질문에 몇가지 보충설명을 해 주었다.
멕비박사가 말했다. ”이 것은 계획에 없는 것이지만 여러분이 열심히 경청해 주시는 것이 마 음에 들어 잠시 시간을 내어 지금 연구중인 한 해저생물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슬라이드엔 거머리처럼 생긴 생물이 비쳤다. 맥비박사는 이 생물의 크기는 보통 거머리만하다고 덧 붙이며 계속 말했다. ”이 미지의 생물은 깊은 해저에 살고 있습니다. 가끔 수면 가까운 곳으 로 올라 오지만.” ”이 것을 저는 '로스트 메모리어스트'라고 명명했습니다. 잃어버린 회고 자란 뜻으로 간단히 메머라고도 합니다.” 슬라이드의 화면이 바뀌었다. ”이 화면은 메머가 금방 죽은 상어의 살갗을 뚫고 들어가는 장면입니다. 마치 거머리 같지요.” ”메머는 죽은 생물의 살갗을 뚫고 바로 그 생물의 뇌로 갑니다.” 슬라이드의 화면이 바뀌었다. 그것은 헤엄치고 있는 상어의 모습이었다. ”뇌로 들어간 메머가 활동을 시작하면 이 죽은 상어처럼 다시 움직이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상어가 아니라 메머에 의해 움직이는것이지 요. 메머는 침입한 생물의 습성,본능,기억,언어 모든 것을 흉내냅니다.” 슬라이드 화면이 바뀌었다. 그것은 미로에 갇힌 실험용 쥐였다. ”전 기억분자의 실험에 힌트를 얻어 이 실험을 했습니다.우선 쥐에게 미 로를 찾는 찾는 법을 기억시킵니다. 그 다음 쥐에게 안된 일이지만 전기로 충격을 주었습니다. 완전히 심장이 멈추었다는것을 확인한후 '메머'가 있는 특수 제작된 수조에 빠트렸습니다.
'메머'는 살아있는 생물은 절대로 건드리지않습니다. 쥐가 물에 빠지자 '메머'는 살갗을 통해 쥐의 뇌에 침입합니다. 제가 쥐를 건져놓자 몇 시간만에 쥐가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쥐를 미로에 놓자 그쥐는 복잡한 미로를 빠져나갔습니다. 믿지 못할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쥐가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단지 메머의 이른바 흉내 내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상하게 내 가슴이 뛰고 있었다 ”한가지는 이 메머조차도 자신이 쥐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쥐의 습성,본능,기억,성격,생체 생리활동 모든 것을 흉내냅니다. 여기서 생각한다는 단어는 적절지 못하지만. 기생체에게 지배당한 이것은 일종의 살아있는 시체입니다. 그 쥐속에 들어간 '메머'는 아직도 스스로를 쥐라고 생각하며 내 사무 실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때 누군가 손을 들며 일어났다. ”그렇다면 사람에게도 '메머'라는 생물이 침입할수있나요.” 순간 내 얼굴을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맥비박사가 웃으며 말했다. ”이론상으로는 그렇습니다. 직접 실험을 해볼 수는 없지만 바다에 익사 한 사람에게 '메머'가 침입 하다면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메머는 사 람의 습성,본능 그리고 그 사람의 뇌에 있는 기억,성격,추억들을 흉내내 그 사람로 살아가겠지요. 무서운 일은 자신조차도 '메머'라는 사실을 모르고 그 사람의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어쩌면 여기 서 있는 저도 '메 머'일지도 모르지요. 만약 내가 어느 날 연구하다가 제가 과로로 쓰러 졌는데 그 사이에 그 '메머'라는 생물이 우연히 머릿속으로 침입했는지도. 그것은 모를 일입니다. '메머'는 자신이 맥비박사라고 느끼며 맥비박사라는 인간이 연구한것을 열심히 지금도 발표하고 있는것이겠죠. 여러분이 '메머'의 흉내내기라는 개념이 잘 이해가 가셨는지 모르겠군요. '말 그대로 믿거나 말거나'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세미나 실이 약간 웅성웅성됐다. 어쩌면 공상과학소설 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난 긴장으로 온몸을 떨고 있었다. ”하하하 여러분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메머가 수면가까이 올라오는 일 은 거의 드물고 올라온다해도 곧 압력 차로 죽어 버리니까.” 누군가 손을 들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혹시 '메머'라는 사실을 아는 방법은 없는지요.” ”아직 어떤 조사방법도 없습니다. 단지 해부해서 뇌속을 자세히 살펴 확인하는 방법밖에는.” 난 어떤 불안감이 내 몸을 감싸는 것이 느끼어졌다. 맥비박사가 말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메머가 흉내내지 못하는 한가지 습성이 있지요 그것은 수면입니다. 실제로 내 실험실의 그 쥐는 한숨도 자지 않습니다.” 그 목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그것은 수면입니다>>
”중요한것은 메버가 기생하는 생물체는 뇌로 들어오는 물질에 대한 정화능력이 뛰어나 특수한 약물중독에 중독되는 일이 없습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마약 그리고 알코올중독자가 되지 않다는다는 의미입니다. 술에 취하는 일이 없다고 할까요. “ <<술에 취하는 일이 없다고 할까요.>> ”제 친구인 의사에게 이 말을 했더니…” 나는 어느새 그 세미나 실을 뛰어나와 있었다. 나는 아까 그 벤치로 가 덜썩 주저앉았다. 듣지말았어야 할 강연이었다. 들어서는 안되는 이야기였다. 난 해안 가에서 구조된 이후 전혀 잠도 자지 못했다. 술을 그렇게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그것보다 어떤 느낌이라는 것이 있었다. 내가 아니라는 느낌… 자신에 대한 어떤 낯설음 …
그것도 내 느낌이 아니라 범수라는 사람의 느낌이다는 소리일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내 사고는 모든 것이 허상이었다. 유리의 추억도… 모든 것은 범수라는 다란 사람 아니 다른 생물의 것이었다. 난…난… 난 품에 고이 접어두었던 유리의 유서를 꺼냈다.봉투를 뜯어 유서를 읽 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범수씨에게
미안해요. 당신은 나의 범수씨는 아니에요. 그래서 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싫어 일부러 더 당신에게 차게 대했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난 당신의 그 눈길을 기억할 것이에요. 마음속에 나의 범수씨와 함께 그럼 안녕히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