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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유감 (2)
그런데 정작 나는 그뇨와 3년 가까이 만나면서도 손도 한 번 잡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은근슬쩍 손이라도 잡을라치면 무서우리만치 매정하게 뿌리치는 그뇨. 그러면서 말은 이랬다.
“나 있지, 니가 손만 잡아도 ㅇㅇㅇ 느낄지도 몰라......”
아, 띠바. 그 시절 내 ㅇㅇㅇ는 24시간 달아올라 있었다. 머리 속엔 오직 그뇨, 그뇨, 그뇨로 꽉 차 있어서 나 자신마저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날은 이게 웬일인가. 생각지도 않았던 제안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 며칠 여행이라도 갈까?”
“정말이가?”
“얘는...... 속고만 살았니?”
그때까지도 나는 믿지 않았다. 워낙 많이 헛물을 켰기 때문이었다.
“나 너무 힘들어. 아빠는 선보라고 난리야. 제법 탄탄한 기업 오너의 장남인데 결혼만 하면 아빠 사업도 날개를 달 거라나...... 이참에 사고 한번 치고 아빠에게 애원해 볼까?”
“......”
장난이 아니었구나. 그뇨의 진심을 안 나는 어금니를 물었다. 와락 그뇨의 손을 잡았다. 펄쩍 뛸 줄 알았던 그뇨가 오히려 내 가슴에 얼굴을 묻는 것이 아닌가. 눈에는 눈물까지 그렁그렁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왜 그렇게 더 ㅇㅇ한지. 대낮만 아니었다면, 커피숍만 아니었다면 바로 어떻게 해버리고 싶었다. 나는 씩씩하게 말했다.
“걱정하덜 마라. 싸나이 낭만이, 니만 좋다 카머 머든지 한다. 장인어른하고 투쟁하는 일은 전적으로 내인테 맽게라. 우리 시대엔 그냥 얻어지는 거너 엄써. 사랑도 쟁취해야 돼!”
행선지는 그뇨가 일방적으로 정했다. ㅇㅇㅇ산. 이런 산, 저런 산 다 놔두고 봉우리가 남자의 ㅇㅇㅇ랑 닮았다고 ㅇㅇㅇ산이었다. 뭔가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나 사실 처년데 너 첨부터 ㅇㅇㅇ 선물해 줄 수 있어?”
“그런 걱정허덜 마라. 너 염두에 두고 연구 무진했거덩.”
“그리고 결혼하믄 하루에 한 번 이상......”
“그런 염려 전혀 하지 말래두. 니가 원하면 하루 백번이라도 가능하다고!”
살짝 얼굴을 붉히는 그뇨 앞에서 난 호기를 부렸다.
“그리고 나 하고 싶은 거 맘껏하고 살아도 되지?”
“고롬, 고롬......”
그뇨가 원하는 자유에 대해서는 이미 전부터 이야기가 있었다. 혼자서 여행 다닐 자유, 밤 늦게 다닐 자유 등등.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뇨가 다른 남자를 꿈꾸는 일은 전혀 없으리라. 나만한 ㅇㅇ스킬을 가진 넘이 있을 리 없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었다. 인간 대 인간의 신의만 저버리지 않는다면 어떤 자유를 누리더라도 나는 개의치 않을 작정이었다.
우리는 백화점에서 텐트며 코펠이며 야영에 필요한 것들을 샀다. 물론 내세울 거라곤 돈밖에 없는 아저씨의 딸인 그뇨가 샀다. 나는 지금 당장 떠나자고 했지만 그뇨는 준비할 게 남았다고 했다. 뭐 때문이냐고 물었더니 바락 화를 내는 것이었다.
“생리때문이라면 니가 알아?”
제기랄. 생리때문이라니. 벌써부터 준비를 시작하는 내 ㅇㅇㅇ를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재수가 겹으로 없으려니 백화점에서 나오다가 친구넘들과 맞닥뜨리고 말았다. 무척 오랜만인 친구들이었다. 둘에게서는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디서 한판 제대로 붙고 오는 모양이었다. 둘 다 학교를 작파하고 노동운동에 투신한 고교 친구들이었다. 나는 넘들에게 그뇨를 소개했다.
“와아! 요런 미인이 어딨었디노?”
“무포 최고 미녀다야!”
친구넘들의 감탄사를 들으며 나는 우쭐했다. 그렇다고 침 삼키지 마라, 이넘들아. 속으로 혀를 내밀기까지 했다.
“오랜마인데 술 한잔 해야지!”
“야, 금슬 좋아 뷔는데 니는 인자 총각 졸업이네? 기분인데 제수씨하고 한잔 꺾자.”
싸나이는 뇨자에만 약한 것이 아니라 친구와 술에도 약했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나는 안되겠어요. 급한 일이 있어서요.”
그뇨가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으응, 미희씨는 안되겠어. 다른 약속이 있어서 말이야.”
‘연애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넘들의 강렬한 시선에 주춤거리다가 결국 배낭 등속을 넘들에게 맡겨두고 저만큼 가고 있는 그뇨를 뒤따라갔다.
“낭만씨, 내일 우리 여행 가야 되는데 오늘은 그냥 집으로 가서 자면 안돼?”
“워낙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라서 말이야......”
난 그뇨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왼쪽에 있는 친구, 눈 봤어?”
“응, 지랄탄 땜에 형편 없더만......”
나는 그뇨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그 친구, 지금 눈병 앓고 있어. 지금 아폴로 눈병이 유행이야.”
“설마......”
“설마가 아니야. 나 그 친구 이따만한 눈꼽 훔치는 거 봤어. 마주보기만 해도 옮는대!”
그뇨가 친구를 폄하하는 것 같아 은근히 언짢기도 했다. 약간의 오기도 생기고 있었다. 싸나이에겐 친구와의 의리도 중요했다.
“그런 개코 긑은 눈병이 내한테 옮는다 말이가? 씰데 엄는 걱정하지 마라!”
“......여간 내일 무슨 일 있으믄 끝장인 줄 알아!”
한참을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뇨는 매몰차게 한마디 내뱉고 가버렸다. 기분이 약간 상하려고 했지만 크게 신경쓸 일은 아니었다. 내공으로 똘똘 뭉친 내가 그깟 눈병 쯤이야 싶었다. 그뇨가 토라진 것은 내일 만나면 다 해결될 일이고.
나는 친구넘들과 합류했다. 막걸리가 유행이던 시절이었다. 다들 가난하던 때라 요기도 겸해서 시작은 보통 막걸리였다. 술자리가 시작되자 눈병에 대한 염려도 안개가 햇빛에 스러지듯이 녹아 없어지고 말았다. 주고받던 술잔이 좀 뜸해지자 한 넘이 정색을 했다.
“얌마, 니는 노동자 아이가? 오너 빼고너 전부 노동자라. 공무원노조 있는 나라도 부지기수다. 니도 고런 정도너 충분히 아는 넘 아이가? 그란데 이 중차대한 시국에 니는 연애질이라 말이제? 그라고 냉중에 다른 사람덜 실컷 피 흘리고 나머 무임승차할라꼬?”
“야, 미안타. 미안해. 이번 사업 끝나머 나도 동참하께.”
“사업은 맞다! 청춘사업!”
또 한 넘이 코웃음을 쳤다.
“너무 그라지 마라. 3년을 공들인 뇨자야. 며칠이머 완전히 내 손에 있으이까네 그때 꼭 동참하꾸마.”
취기가 오르는 중에도 나는 결코 본분을 잊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내일 그뇨와 인류사에 길이 남을 황홀하고도 아름다운 ㅇㅇ을 건설(?)해야 하는 것이다. 거의 만취가 돼서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예행연습까지 했다. 일어나라! 명령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 ㅇㅇㅇ는 ㅇㅇㅇㅇ해 거만한 자세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매우 흡족해 하면서 잠이 들었다.
텐트 속이었다. 나는 와락 그뇨를 껴안았다. 그뇨가 누우면서 촛불을 껐다. 그래도 달이 밝은지라 희미하게 그뇨의 윤곽이 보였다.
나는 그뇨의 옷을 벗기고자 했다.
“너부터 벗어. 네 몸을 보고 싶어!”
기어들어가는 그뇨의 목소리였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옷을 벗어던졌다. 기네스북에도 충분히 올랐을 만큼 잽싼 동작이었다. 잠깐만에 전방을 향해 ㅇㅇ총을 한 당당한 나의 ㅇㅇㅇ가 드러났다.
ㅡ3편에 계속됩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