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게시판의 글을 읽다보니 아파트 가격이 많이 떨어질 것이다, 라는 주장이 많이 눈에 띄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살(그리고 가능하면 자신의 아이까지 대를 이어 살아갈) 집 한 채는 꼭 사두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현재 아파트 가격은 거품이다, 폭락을 피할 수 없다, 라고 주장하고 계시는데
만일 아파트 가격 급락사태(20%이상 단기간에 하락)가 실제로 벌어졌을 경우, 그 이후에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하시는 분들은 많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만일 다음 번 경제위기가 닥쳐와 아파트 가격이 급락한다면
1. 전세제도의 재편
2. 월세가격 급등
3. 임대소득을 얻기 위한 부유층의 아파트 매집 -> 아파트 가격의 회복
4. 양극화의 심화
라는 결과가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1. 전세제도의 재편
지난 1997년에는 매매가대비 전세가율이 50% 정도였습니다. 또한 오랫동안 주택가격이 안정된 상황이었기에 전세를 낀 집에 저당을 잡혀서 다시 대출을 일으킨 집주인도 지금보다 훨씬 적었고요. 그래서 일시적으로 역전세란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다음세입자+쌈짓돈/은행대출로 집주인들은 큰 문제없이 전세금을 임차인에게 돌려줄 수 있었습니다. 주택가격 역시 2000년 이후 빠른 속도로 반등해서 전세제도는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전세가율이 70%에 육박하는 데다가, 몇천만원이나마 대출까지 끼고 있는 집들이 상당히 많은 상황이죠. 만일 아파트 가격이 급락한다면, 많은 집주인에게 전세금 상환에 문제가 생기고 그 결과 집주인과 아파트 시세만을 믿고 수억이나 되는 돈을 남의 손에 맡기는 '전세'라는 특수한 제도가 사회적인 신뢰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지금도 전세가 없는 나라 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이 어떻게 모르는 사람을 믿고 그렇게 큰 돈을 줄 수 있는 지 신기해 하죠.
결국 완전 전세는 사라지고 반전세->월세로 시장이 재편될 것입니다.
2. 월세가격 급등
전세물량이 줄어들고, 또한 하우스푸어 중에 집을 던지고 나오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이들은 모두 월세시장의 수요자가 됩니다. 미국에서도 리만쇼크 이후 집을 잃은 사람들이 늘어나며 월세가 비싸지는 현상이 일어났었습니다.
아파트가격이 급락한 이후에는, 이미 전세가가 매매가와 같거나 매매가를 뛰어넘은 상황이기 때문에, 월세는 아파트 가격을 기준으로 해서 책정될 것입니다. 월세물건이 일시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므로 서울 도심에서는 집값 1억 당 60만원, 배후지대라면 50만원씩 6-7%씩의 월세전환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렇게 되면 서울 비도심지역에서 3억짜리 방3개 아파트를 빌리기 위해 보증금1억 + 월세 100만원을 지불하게 될 것입니다(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업국에서 도시근로생활자의 소득 중 35%는 임대료로 지출되기 때문에 이것은 아파트가격 폭락이 없어도, 집값 상승이 멈출 경우 결국은 일어나게 될 일입니다).
3. 임대소득을 얻기 위한 부유층의 아파트 매집 -> 아파트 가격의 회복
하우스푸어가 던진 집들은 과연 누구 손에 들어갈까요? 싸게 풀린 아파트들은 남아도는 현금을 가진 부자들이 사들이겠죠. 이들은 시세상승을 목적으로 집을 사들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전세가 아닌 월세를 놓게 됩니다. 그것도 가능한 한 보증금이 적고 다달의 월세수입이 많은 상태로 집을 빌려주려 합니다.
이렇게 되면 월세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집이 없는 사람들은 장기고정금리대출(모기지)을 끼고 집을 사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입지가 좋은 아파트들은 적은 수의 사람들이 이미 대량으로 매점하고 있는데다가 이들은 월세소득을 통해 안정적인 노후자금을 확보하려 하기 때문에 이 아파트를 팔려 들지 않죠. 결국 한 차례 아파트 가격이 급락한 이후의 세상에서는 시장에 풀리는 물량자체가 많지 않게 되고, 아파트 가격은 다시 완만히 상승할 것입니다. 모기지 이율이 만일 6% 보다 싸다면 집값의 상승은 더욱 빨라지겠지만, 집을 사고 싶어도 종잣돈이 없거나 고용이 불안정한 사람에게는 아예 은행대출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
4. 양극화의 심화
아파트 가격이 급락한 결과는 결국 부유층은 많은 아파트를 싸게 사서 월세를 놓고 vs. 중간/하위소득층은 소득의 35%를 월세로 지불하는 세상의 도래입니다. 심지어는 아파트 가격 자체도 다시 원래대로 비싸지게 됩니다. 이렇게 20년 정도가 지나면, 지금처럼 부모들이 아이 결혼한다고 다만 얼마라도 도와주는 일조차 힘들어집니다. 반대로 부유층의 경우 20년 정도가 지나면 자식에게 아파트 한 채는 증여할 수 있을 정도의 잉여자본=_=;이 축적되겠죠.
자산과 소득의 양 면에서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의 압도적인 승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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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의 상황을 놓고 볼 때, 자산양극화의 심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점진적인 하락의 경우에도 1-4까지의 일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시장재편이 완만하게 일어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적응할 시간을 가질 수 있겠죠). 이에 대해 많은 분들이 인구의 감소나 노령화 때문에 주택가격이 계속 내려갈 것이라고 하시지만, 만일 도심의 집을 대량으로 사들인 계층이 물건을 내놓지 않는다면 집은 싸지지 않고, 젊은 사람들은 월세를 감당하며 살거나 시외곽의 신축아파트를 사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어집니다. 많은 사회현상이 다 그렇듯이, 아파트 가격의 하락 역시, 하위소득층&젊은층에게 불리한 시나리오로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에서 한 소시민이 자기 몸과 가족을 지키는 길은 단 하나, 자신의 집을 사는 일 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집을 사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전세제도가 언젠가 사라질망정 아직은 기능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주거비용이 지금보다 더 싸지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기에, 가능하면 지금부터라도 절약하고 저축하셔서 소박하나마 자신의 집을 사실 계획을 갖고 준비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