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J21uV5-3Yv8
이정록, 연탄
아비란 연탄 같은 거지
숨구멍이 불구멍이지
달동네든 지하 단칸방이든
그 집,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한숨을 불길로 뿜어 올리지
헉헉대던 불구멍 탓에
아비는 쉬이 부서지지
갈 때 되면 그제야
낮달처럼 창백해지지
나태주, 오랜 사랑
바위는 부서져 모래가 되는데
사람의 마음은 부서져 무엇이 되나
밤새워 우는 새
아침 이슬
기와집 처마 끝에 걸린 초승달
더러는 풍경소리
바다는 변하여 뭍이 되는데
우리의 사랑은 변하여 무엇이 되나
이용임, 산책
우리는 발자국을 얼음처럼 떨어뜨렸다
파고의 푸름 속에
일렁이며 저승 나비 무늬
무덤의 가장자리마다 핀다던
마른 꽃으로 굳었다
물이 핥고 가는 산호처럼
나의 시간을 빚어 실루엣을 만들었다
그림자를 볼 때마다
그대를 떠올렸다
뒤집으면 다시 시작되는
유리 속 황금시대
좋았던 날들만 무한재생하는
착각과 망각의 틈새마다
우리는 조약돌처럼 은닉했다
눈감아라 뚝딱 꼬리를 늘이며
달아나는 술래, 손가락이 찾아주길 기다리며
문동만, 저울에게 듣다
아버진 저울질 하나는 끝내줬다
파단 마늘단, 어머니 무르팍에서 꼬인 모시꾸미도
오차 없이 달아내셨다 저울질 하나로 품삯을 벌어오던
짧은 날도 있었다 대와 눈금이 맨질맨질해진 낡은 저울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정확히 볼 수 있었던 건
그 눈금이 아니었나 싶다
내게 평을 맞추어 제 눈금을 찾아가는 일이란
아버지가 먹고살 만한 일을 찾는 것만큼 버거운 일이다
균형이란 무엇이고 치우침이란 무엇인가 그런 머리로
내 혼동의 추가 잠깐씩 흔들린다
그러나, 저울을 보는 눈보다는
치우치는 무게이고 싶다는 생각
무게를 재량하는 추보다 쏠리는 무게로
통속의 추들을 안간힘으로 버둥거리게 하고픈
그 변동 없는 무게들을 극단으로
옮겨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벼우나 무거우나 역동의 무게로 살라는
이젠 팽개쳐져 아무것도
가늠치 못하는 녹슨 저울에게
지청구 한토막 듣는다
이학성, 덤불 속의 새
그것은 여전히 덤불 속에 있다
아홉 살 키 작은 소년의 목소리로 운다
눈앞의 잔가지 하나를 들추자
또 다른 가지
난 덤불에 다가가는 조심스런 발걸음 소리를 기억한다
저무는 숲은 다락만큼이나 고요하다
소년은 다락에 숨어 울었다
차가운 작은 새는
소년의 손바닥 위에서 숨을 멎었다
여전히 울고 있는 덤불 속의 새
마지막 가지를 들추자 저녁해의 잔광(殘光)이 눈을 찌른다
그것을 찾기에 내 눈은 이제 흐려졌다
난 그치지 않는 소년의 울음을 알고 있다
숲을 깃들이는 어둠의 때에
소년은 다락에서 나와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