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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해, 나무로 만든 다리
초가을을 처음 맞는 수련을 보고 섰네
다리는 나무로 얽은 다리
누군가 나처럼 수련을 보러 오네
그의 무게가 내 발바닥에 전해지네
그의 걸음이 내 몸을 흔드네
이런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한 생애가
내 발바닥을
내 온몸을
고스란히 흔드는 일이
나무는 알았을까
땅 위에서 한 채의 고목이 되는 대신
이리 물 위에 평평히 눕게 될 줄
이 나무들은 서 있을 때도 그러했다지
새 한 마리 들어도
빗방울 후둑이는 소리에도
이파리들을 반갑게 흔들었다지
거위들이 목을 내저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이 저녁
나도 그대를 이 다리 위에 세워 둔 채
흔들며 가고 싶네
물결이 수련을 건드리듯
임희숙, 둥지에 들다
저녁이면 나무들이
돌아온 새들을 데리고 그들의 집으로 떠났다
누구나 쉴 집은 멀리에 있다
보이지 않는 산수의 경계에 둥지처럼 숨겨져 있다
빈 공원에 혼자 선 나무가
눈먼 딱따구리를 기다리고 있다
저 나무가 밤늦도록 우듬지에 닿은 별을 야멸치게 흔드는 것은
새를 위하여 종을 울리는 것이다
제대로라면 나무의 종소리는 딱따구리의 귀 속에 들어가
지도가 되어야 할 것이었다
공원의 나무들이 가버린 줄을 모르고
저녁이 익어 밤이 되었는지도 모르고
딱따구리는 숲을 돌아다니며 점자를 새기고 있다
저기는 껍질이 벗겨진 늙은 밤나무의 가슴이고
여기는 뽀얀 자작나무의 매끄러운 어깨라고
다른 새를 위하여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눈먼 새를 기다리는 나무와
집으로 가는 길을 기억하지 않는 새는
몸 밖에 둥지를 만들지 않는다
제 몸이 둥지인 것을 알게 되었으므로
돌아가 쉴 집
지금, 여기, 몸에 든다
유안나, 산 벚꽃
자리가 비어있다
그 자리에 무엇으로 채울까
당신이 두고 간 서랍을 뒤적여본다
서랍 속엔 알약 같은 별들이 뒹굴고 있다
미래도 서랍처럼 살갑게 열리고
빠르게 늙어서 무엇이든 다 알았으면 좋겠다
어디서 오는지 모를 황사바람에 걸려 넘어지면 언덕에 앉아 울었고
노복처럼 하늘을 흘겼었다
빈자리가 따끔거린다
봄밤을 메우기 위해 꽃이 피어났다고 생각하며
통증을 달래야 할까
흉터는 이쪽과 저쪽을 가로지른다
장례식장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도 생의 구덩이를 파는 일
방패연을 놓친 아이처럼 하늘을 바라본다
날아간 연줄은 울음을 달고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다
흰 그림자에 산 벚꽃을 채워 넣어야 할 것 같다
하늘도 빈자리에 별을 채워 넣고 있다
나 여기 있다 하고 대답해주는 하늘을 바라본 적 있는가
여기 자리를 비우고 거기서 깜박이는 당신을 바라본다
강성은, 기일
버려야 할 물건이 많다
집 앞은 이미 버려진 물건들로 가득하다
죽은 사람의 물건을 버리고 나면 보낼 수 있다
죽지 않았으면 죽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를 내다 버리고 오는 사람의 마음도 이해할 것만 같다
한밤중 누군가 버리고 갔다
한밤중 누군가 다시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다
창밖 가로등 아래
밤새 부스럭거리는 소리
박복영, 눈물의 멀미
눈물은
달빛 머금은 이슬 같은 것이니
처음, 아침이 오는 구부러진 길에
마중 나온 풀잎은
욱, 멀미를 하는 것이나
눈물이 넘어져 일어설 때까지 당분간
떨어뜨려놓고
멀미가 잦아든다면
식은 눈물이 무릎을 툭툭, 턴다면
살면서 견뎌야 할 하루는
이제 바닥에 있다
열꽃처럼 몸속에 돋은 눈물이 밖을 향하여
피어오르는 것은
몸 안에 허공을 두고 싶기 때문이니
흔들리다가
차갑던 눈물이 뜨거워지는 순간
풀잎은 우뚝, 일어서
세상의 모든 무게를 이고
꽃이 될 것이다
눈물의 몸살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