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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슬픔의 지문이 내 몸에 살고 있다
게시물ID : lovestory_890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27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12/30 18:21:00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2qaM6KU6hkU






1.jpg

김은자슬픔의 지문이 내 몸에 살고 있다

 

 

 

사랑이 아플 때 비로소

나는 사랑을 말한다

꽃잎처럼 바라만 볼뿐 말 못함은

소유할 수 없는 이유

가질 수 없을 때

아프게 익어가는 사랑아

우리 한 시절만 아파하자

지금도 슬픔이 지문이 내 몸

어딘가에 살고 있다 지문은

계절이 가도 지지않아

시시때때 추억에 매달려 운다

그런 날이면 나는 아픈 꽃잎

홀로 들녘을 헤매다 늦은 저녁

헤진 노을을 입고 돌아온다

놓아주라고

끝없이 탐닉하고

확인하고 싶어했던 거리에서

너를 풀어주리라

심장 박동 소리가

살고 있지 않는 먼 곳으로

나를 보내다오

사랑이 아플 때 소리없이

너의 곁에 깃들리라







2.jpg

박덕규둥근 사이

 

 

 

연탄집게로 연탄을 집어든 어머니가

마당을 뛰어가신다

연탄을 든 어머니의 한쪽 어깨가 올라가고

반대편 어깨가 낮아졌다

어머니의 연탄 든 팔과 기운 몸 사이에 큰 틈이 생겨나 있다

그 틈으로 바람이 예사롭게 지나다닌다

 

지금 내 아내보다 더 젊은 어머니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연탄을 집어 들고 마당을 뛰어가신다

어머니의 연탄 든 팔과 기운 몸 사이의 틈으로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어머니가 입은 치마가 살랑거린다

 

한번은 그 연탄에서 불이 뿜어져 나와

어머니 몸이 공중에 떠오르기도 했다

그 때도 어머니는 공중을 뛰어가셨다

꼬리치며 쳐다보던 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머니의 연탄 든 팔과 몸 사이가 크게 벌어져

그 틈으로 비행기가 지나가기도 했다

 

아내는 어머니 흉내를 잘 낸다

그래도 연탄을 집는 일은 없다

연탄 힘으로 공중에 떠오르는 일은 상상도 못한다

아내와 아내보다 젊은 어머니 사이에 틈을 그려 본다

나는 그 틈으로 들어간다

어느새 내 몸이 공중으로 떠올라 있다







3.jpg

문숙밥상을 차리며

 

 

 

어느 문학상시상식에 가서 축하 반 부러움 반을 섞어 박수 치다가

상복 없는 시인들끼리 모여 서로서로 시 좋다고 칭찬하다가

문학상은 못 받아도 밥상은 받고 산다는 한 시인 농담에 웃어주다가

밥상이 문학상보다는 수천 배는 값진 것이라고 맞장구치다가

밥은 없고 술만 있는 자리에서 헛배만 채우다가

집에 와서 식구들의 밥상 차린다

일생 가장 많이 한 일이 나 아닌 너를 위해 밥상 차린 일임을 생각하다가

오나가나 들러리 밖에 안 되는 신세에 물음을 가져보다가

훌륭한 걸 따지자면 상 받는 일보다 상 차리는 일이라 생각하다가

그래도 한번쯤 상이든 밥상이든 받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다가

이런 마음이 내가 나를 들러리로 만드는 것이라 반성하다가

이번 생은 그냥 보험만 들다가 가겠구나 생각하다가

밤새도록 나를 쥐었다 놓았다 쥐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다가







4.jpg

문정영자정

 

 

 

밤의 한가운데를 바르게 펼쳐놓았다는 뜻이다

한밤에 꽃잎 떨어지면 하루가 가벼워지고

사랑니 빠진 자리에 혀가 들락날락하는 것같이 허전하다

허공을 풍경으로 하기에 아픈 시간이 자정이면

어둠을 자근자근 씹고 있는 꽃나무의 한때도 자정이다

 

내 입속 가시 부러지는 소리

몸속으로 들어간 어둠 빠져나가는 소리 크게 들린다

눈물도 꽃잎처럼 가벼워져야 떨어진다

자주 어두워지는 표정을 소리로 바꾸면 한숨이다

 

뼈에 장기에 소리들이 들어차고 소리들이 빠져나가는 소리

어떤 소리는 부드러움을 잃었고어떤 소리는 활기가 없다

 

풍경 이전의 허공한숨 직전의 표정이 나의 자정(自淨)이다







5.jpg

박소란시시한 시

 

 

 

결국 이런 시를 쓰게 될 줄 알았지

오오 이토록 시시한으로 시작되는 시

채 첫 연을 읽기도 전에 당신은

당신의 예민한 손가락은 책장을 덮어버릴지도 몰라

이를테면 이런 것 도무지 시적이지 않은 것

아침마다 당신이 사는 동네를 지나는 만원 버스

나는 늘 그 꽁무니나 죽어라 쫓는 거지

맨 끝 좌석엔 당신을 닮은 누군가 팔짱을 끼고 앉아

졸음이 잔뜩 묻은 뒤통수나 하릴없이 흔들고

그 지극히 사소한 모양으로 내 심장은 뛰지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할 때까지 그리고 문득 야근할 때까지

놓칠 게 뻔한 버스를 저만치 앞에 두고

온종일 나는 시시하지 너무 시시해 가끔은 눈물이 나

느닷없이 밀려오는 허기처럼 허기보다 먼저 구겨진 가방 속 빵봉지처럼

안 된 일이지만 내 평생이 이 따위 한낱 관용구로 채워지리라는 사실

무미한 혼잣말이나 읊조리며 종점을 향하리라는 사실 뻔하디 뻔한

일들만이 나를 놀라게 하겠지 그래 일찍이 나는 알았지

이런 시나 쓰게 될 줄오오 이토록 시시한으로 끝나는 시

끝나지 않는 시 시시하기 짝이 없는

이 시가 대체 어느 누굴 흔들어 깨울 수 있다는 건지 그래서 당신은

흔들렸다는 건지 어쩌다 잠시 잠깐

노선에도 없는 여기 변두리에 정차한 당신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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