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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을 원망하지 않는, 단일 시즌 30승 투수.
게시물ID : baseball_8480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군청학사
추천 : 4
조회수 : 82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10/03 23:52:50
한 선수가 있었다. 

일본에서 기껏해야 15승이 커리어 하이 정도였던 투수. 나이는 어느새 30을 더 넘긴 나이의 투수.

가장 잘해봐야 팀의 2선발정도의 선수였다.

이름은 후쿠시 히로아키, 혹은 후쿠시 아키오.

82년도, 그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다. 3승

구단에서는 이를 이유로 연봉의 삭감을 얘기하였고 그는 이에 유니폼을 벗겠다고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그를 찾아온다. 찾아온 사람의 이름은 하리모토 이사오.

일본 프로야구의 레전드인 그가 후쿠시에게 꺼낸 말은 다음과 같았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어보지 않겠나"


잠시동안의 고민의 끝에 후쿠시가 내린 답은 "YES"

그리고 그는 83년에 한국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는 전설이 된다.








(1분 32초부터 재생)



후쿠시 아키오. 아니, 장명부.





09111720122326.png



60경기(44선발) 36완투(5완봉) 30승16패 6세이브 2.34



83년의 프로야구 주인공은 단언컨대 장명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능글능글 웃으면서 상대 타자 머리에다 냅다 던져버리는 위협구.

한국에서 최초로 스크류볼을 완벽히 구사한 투수.

그 외에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기행. 그리고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던 성적. 그는 대번에 스타가 된다.









그리고 그것이 또한 불행의 시작이였다.

84년...85년...86년... 해가 갈수록 30승 때문에 혹사당한 그의 어깨와 허리는 점점 무너져갔고

이윽고 1986년 그는 1승 18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면서 빙그레 이글스로부터 방출을 당하게 된다.

그가 86년도에 한 인터뷰는 83년도의 그것과는 매우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방출을 신호탄으로 그는 한국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투수 인스트럭터 일을 맡게 된다.

하지만 그는 좋은 투수인지는 모르나 좋은 코치는 되지 못했다. 금새 그를 찾는 사람은 없어졌다. 프로야구에 스타는 충분했으니까.

이내 그는 아내로부터 이혼을 당하고 양육권까지 빼앗긴다. 한국에서 떠날 수도 없었다. 주민세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는 실패한 운동선수에게 흔히 볼 수 있던 클리셰가 되어버린다. 마약을 하고, 끝끝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추방을 당하고.


그리고는 그는 여러 일을 전전한다. 공항을 짓는 일도 했다. 지인 부탁으로 파칭코 점원도 했다. 경비원도 했다.


그리고는 끝끝내 2005년, 자그마한 마작하우스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다. 30승의 레전드가 맞이할 죽음은 아니였다.


(56분)


그리고 지금은 9년이 지났다.

그는 한국에서 추방당할때 스스로를 실패한 투수라고 했다. 83년 이후의 그의 모습은 분명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과는 거리가 있다.

그가 말한대로 그는 실패한 사람인가. 나는 아직도 확답을 할 수가 없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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