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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희, 별자리
프랑스 왕립 천문학회가
새로 발견한 별에
랭보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몇 년 전 파리에서 들려와
나를 감동시키더니
우리는 언제 저렇게
새로 발견한 별에
백석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궁금해지더니
며칠 전 신문에서
별이 1초에 79개씩 사라진다는 것을 보고
꿈이 사라지는 것처럼
놀랐느니
아직 새 별을 발견하지도 못했는지
아무 기별이 없어
이것이 간절함이 극에 달하는 길이거니
무궁의 길이거니
별을 보는 것은 어디서나 길을 묻는 것
나, 오늘 별자리에 들고 말았네
고영민, 곡우
날이 흐리다, 흐리고 비가 왔다
그사이 누가 다녀가셨나
흰꽃은 피었다 졌네
마당엔 발자국
얼마나 주춤거리다가
대문을 들어섰는가, 그대는
널어놓은 검은 빨래를 누가 걷어놓았을까
나 없이 볍씨를 담그고
뜬 벼를 걷어내고
잠깐 시간이 남아
말없이 마루를 한번 더 훔치고
돌아갔는가
지싯지싯 매운 내가 오르는
눅눅한 아궁이에
환한 등걸 하나를 지펴
깊숙이 질러넣고 곰곰
구들을 밟아 떠났는가
이 저녁 나는
허공을 보고 이야기하네
박후기, 꽃 택배
택배회사 울타리
벚꽃 피고 진다
어떤 꽃잎 피어날 때
어떤 꽃잎 지고 있다
늙은 왕벚나무가
꽃들의 물류창고 같다
사랑은 언제나 착불로 온다
꽃들은 갑자기
왕벚나무를 찾아와
빈손을 벌리고
집 없는 나는 꽃 피는
당신을 만나야 한다
꽃잎은 끊임없이
억겁의 물류창고를 빠져나가고
사월의 허공이
태초의 발송지로
반송되는 꽃잎들로 인해
부산하다
장옥관, 고등어가 돌아다닌다
고등어가 공기 속을 유유히 돌아다닌다
부엌에서 굽다가 태운 고등어가
몸을 부풀려
공기의 길을 따라 온 집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반갑지도 않은데 불쑥 손목을 잡는
모주꾼 동창처럼
내 코를 만나 달라붙는다 미끌미끌한
미역줄기 소금기 머금은 물결이 문득 만져진다
고등어가 바다를 데리고 온 것이다
이 공기 속에는
얼마나 많은 죽음이 숨겨져 있는가
화장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름과 이름들
고비사막에 섞여 있던 모래와 뼛가루처럼
어딘가에 스며있는 땀내와 정액
비명과 신음
내 코는 고등어를 따라
모든 부재를 만난다
죽음이 죽음 속에서 머물고픈 모양이다
이정애, 김치에 대하여
식탁 위에 맛있는 김치
풋풋한 배추가 다섯 번 죽어야 했다
칼날에 잘려 철철 흘린 피
소금으로 덮어 차매고
기 빠진 잎잎이 되었을 때
매운 고춧가루 양념으로 버무려
그대의 사랑으로 가두었네
얼마나 숙성시켜야 맛나는
그대의 사람이 될까
내 안에 죽어야 사는 영혼 있어
날마다 죽으라고
머리에 배꽃 흩날릴 때 까지
아낌없이 주고 후회 없이 주고
그렇게 사는 것이 사랑이라고
눈물도 눈물같이 흘러 보지 못한 여자
시린 등뼈 다독이는 노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