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항상 눈팅만 하다가 얼마전에 가입하고 이 글이 첫 글입니다.
이게 은근히 떨리네요..
저는 취준생입니다.
이력서 정말 숱하게 썼죠.
일자리 얻기 위해서 이력서 작성하고 노력하는 게 힘들긴 해도 수치스럽게 느낄만한 일은 아닙니다.
백장을 쓰던 천장을 쓰던 날 위해 하는 일이고 꾸준히 노력하는 것 만으로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울 일이겠죠.
그렇지만 제가 가끔 이력서를 작성하며 수치심을 느끼고 비참해 지는 것은 이력서를 쓰고 있는 제 자신 때문이 아닙니다.
이력서 양식에서 요구하는 개인정보 때문입니다.
이제는 주민등록번호 요구까지는 못 하도록 되어있다고는 하지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합격이 된 것도 아닌 그저 지원해보는 회사에도 주민등록번호까지 상납했어야했었죠.
대학생 때 주민등록 번호를 채팅사이트에서 도용당해서 고소장(?) 같은 것을 받게 되어 부산남부경찰서에서 소환장까지 받고
제가 한 것이 아니라는 내용증명까지 보내야 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사실 주민등록번호를 입사지원할 때 제공해야 한다는 것도 굉장한 부담이었습니다.
개인정보가 정말 보호 되고 있는지 확인 할 방법 같은건 제겐 없었으니까요..
근데 이게 또 그것 뿐이라면 모르겠는데
어떤 회사에서는 가족들의 주민번호를 요구하기도 하더군요.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만)
주민번호를 요구하지 않더라도 가족의 이름, 직장, 직책, 학력 등을 거의 다 요구하는데 이런 양식을 채워 넣을 때 마다 비참해집니다.
이 내용들이 대체 나의 업무능력을 확인하고, 이 일자리를 가지는데 필요한 '자격'인건가 하는 의구심과
친한 친구들이나 알 만한 가족관계와 가족 구성원의 직장과 학력같은.... 내 개인정보도 아닌 가족의 개인정보까지 팔아 일자리를 얻어야하나.
가족의 학력과 직장으로 나의 능력과 자격을 확인한다는 것은 너무 부당한 처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 이 가족관계란을 채울 때도 가슴이 꽉 막혀옵니다.
그리고 또 이해 안되는 것은 '본적'을 요구하는 회사들.
주민등록상 주소지도 아니고, 현재 거주지도 아니고 본적은 왜 요구하는건지.
그게 대체 내가 지원하는 직무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지역감정에 따라 인재를 채용하고싶은 건가요...
나 조차도 가 본 적도 없는 본적을 부모님께 물어 적으면서도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아, 그리고 사무직이건 뭐건간에 거의 모든 회사에서 요구하는 것 중에 하나가
키와 몸무게, 혈액형, 시력 등입니다.
지원하는 직무가 키가 일정 이상 크거나 작아야만 수행 가능한 업무도 아닐 것이고,
몸무게는 친한 친구들한테 묻기에도 무례한 질문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은데...
어째서 사무직에 지원하면서 몸무게를 공개해야하는건지 궁금합니다.
혈액형? 일본과 우리나라만 믿는다는 그 혈액형 성격결정론 때문인가요?
그게 아니라면 특정 혈액형을 가진 사람들만 받아서 회사가 폭탄테러를 당했을 때를 대비해 수혈이 용이하도록 한다는 건가요?
어차피 입사하면서 신체검사를 할 것이고 이를 통해 건강 상 업무를 수행할 수 없을만한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밝혀질 것인데...
이런 신체적 개인정보까지 쓰라고 하는 것은 무슨이유인지.....
이 것 역시 쓰면서 정말 이해할 수도 없고 불편한 부분입니다.
언젠가 본 다큐멘터리에서는 다른 나라(어딘지는 정확히 생각이 나질 않아서 죄송합니다)에서는 '차별금지법'이라고 해서
입사지원서에 업무능력과 자격사항과 관계없는 개인정보를 요구할 경우 불법이 되는 법이 있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그런 나라가 다 있다니...
나는 여기서 가족들과 내 몸무게며 본적이며 있는정보 없는 정보를 1차 서류전형에서부터 다 갖다 바치고 기다려야 하는데..
네, 저는 일자리를 구하고 있습니다.
돈 벌고 싶으면 취직하고 싶으면 그냥 하라는 대로 하면 되고
그게 싫으면 거기 이력서 안 넣으면 되지 뭐 그렇게 말이 많냐고 할 수도 있죠.
제 개인은 그러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구직자들은 잘도 제공하는 정보들인데 너는 뭐가 떳떳하지 못해 기업이 알고싶다는데 말이 많냐고 한다면
묻고싶습니다.
다른 분들은 정말 괜찮으신가요?
저런 민감한 개인정보 등을 다 적지 않으면 입사지원 조차 안되는 홈페이지에서 좌절해보거나 비참해져 본 적이 없나요?
이 모든 것들이 외모와 집안의 경제력등으로 공공연하게 차별당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이렇게까지 해서-
내 자존감과 자존심을 1차부터 짖밟으며 '을'로써 회사에 충성하길 바라는 이 체계가 괜찮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력서 한 장이라도 더 써야 할 시간이지만... 너무 답답해서 써 봤습니다.
제가 정말 사회 부적응자여서 이런 생각을 하는건지.
사는게 참 그렇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