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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 얘기가 나와서 출판쪽 사정
게시물ID : sisa_55430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yx008
추천 : 7
조회수 : 170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10/03 01:42:43
출판쪽 비스무리하게 일하고 있는데...
뭐 결론부터 얘기하면 도서정가제는 그냥 다 같이 죽자는 법이에요.
일단 이해를 돕기 위해 책값이 왜 이따위인지 썰 좀 풀어볼게요. 틀린 게 있다면 기차없이 지적을.
소비자쪽부터 가보죠.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서점에서 어떻게 그렇게 싸게 후려칠 수 있는지.
보통 출판사는 소비자에게 직접 책을 팔지 않습니다. 총판이나 대형서점을 거치죠. 당연히 소비자가대로 들어가는 게 아니고 더 낮은 가격으로 들어가는데 이걸 보통 공급률이라고 합니다. 소형 서점에 책을 공급하는 중간상인 총판에는 보통 65~75% 대형서점에는 55~65% 온라인에도 비슷 그 정도 들어가요. 출판사나 도서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출판사가 유통에 넘기는 가격은 정가의 65% 정도로 보면 되는 거죠. 만원짜리 책이면 권당 6500원.
이 책 만드는 데 얼마나 들어갈까요? 뭐 만원짜리 책이니까 그림 사진 별로 없고 대충 글 위주로 채운 책이라고 해보죠. 250쪽 정도. 괜찮은 원고라면 못해도 원고료를 매절로 사들였을 때 500은 나올거고 일러스트가 적당히 괜찮은 놈으로 5컷 정도 들어가면 이것도 200은 되겠네요. 디자인은 좀 신경썼다 싶으면 450은 될거고. 벌써 1150이네요. 여기에 초판 3000부 정도 찍었다면 대략 600~700 정도. 총 1800 안팎. 여기에 인건비를 직접비:인건비 6:4 정도 잡고 넣으면 대충 3000만원 들고. 이 인건비는 편집 기획 인건비라 별도 마케팅 예산도 잡아야 합니다. 대충 500 정도. 이 정도면 광고 두어번이면 끝. 뭐 하나마나죠... 타이트하게 잡은건데 3500이네요. 책 한 권 만드는 데. 그러면 몇 부를 팔아야 할까요? 유통으로 넘어가는 가격이 6500원이니까 대충 5000부군요. 헐 1000부 넘어도 대박 소리 듣는 출판시장에서 5000부??? 이게 베스트셀러의 실체입니다. 더 무서운 건 한국에서는 콘텐츠와 창작의 가치가 아주 낮게 매겨지기 때문에 원고료는 적은 편이라는 거. 저거 하나 만드는 데 1년은 걸리죠? 물론 여러 권 동시에 맡아 진행하기는 하지만 양판소가 아닌 이상 서너 달에 하나씩 못찍습니다.
결국 책값이 내려갈래야 내려갈 수 없는 구조죠. 도서가 면세 품목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시장이 작습니다. 그럴 거면 싸게 좀 내놓으라고요? 옛날엔 문고본 많이 나왔습니다. 흔히 말하는 갱지로 만든 책이요. 소프트백에 종이도 저질이고 가벼운 그런 책. 근데 언젠가부터 이런 책을 다들 안사요. 때깔이 안나니까. 서가에 꽂혀서 폼낼 수 있는 책을 찾거든요 다들.
여기서 도서정가제를 시행한다? 뭐 몇 달이 지나도록 못받던 판매 대금 미수금을 좀 당겨.받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출판사에 들어오는 돈은 똑같습니다. 판매량 줄어드니 그냥 매출만 깎아먹는거죠. 유통사도 매출이 줄어드니 더 낮은 가격에 들여오기를 강요할거고. 결국 판매량 감소에 더 심해지는 후려치기. 
사실 출판 시장이 살려면 셋 중 하나입니다. 시장이 넓은 영어책만 만들든지 통일돼서 내수가 커지든지 사람들의 콘텐츠 소비 패턴이 바뀌든지. 어떻게든 판매되는 부수가 늘어야 출판사도 도서시장도 콘텐츠 창착도 살아나는 거지요.
장황하게 썼는데 현재 한국 상황에서 출판사 대부분은 뭔 짓을 해도 영세합니다. 외서 중 탐나는  게 있어도 그놈의 손익분기점 때문에 감히 번역하고 만들 엄두를 못 내고 있어요. 다들 양질의 책을 안만들고 싶어서 안만드는 게 아닙니다. 게임시장과 다르지 않은 셈입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건 도서 정가를 못박는 게 아니라 캠페인이든 뭐든 여론을 조성해서 싸고 좋은 책을 많이들 사게 하는 겁니다. 내용만 좋으면 페이퍼백도 펑펑 사준다면야 굳이 비싼 포맷으로 편집하고 쓸데없는 여백 둘 필요도 없어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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