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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출처 : https://youtu.be/-bsLRwZtUNo
장이지, 출혈
주차장 골목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멀리 보이는
당인리 발전소의 굴뚝 연기
손가락 끝에 피가 맺힌다
피 흘리는 길을 따라
인생은 다리가 아프게 걷는 것
출혈을 감수하면서도 시를 쓴다는 거
그건 가치 있는 일일까
재미 삼아 유서를 쓰고
못난이들끼리 모여서 낄낄댄다
귀로에 들면
유서 품은 가슴만 서늘해지고
있잖아 멀리 보이는
당인리 발전소의 굴뚝 연기는
왜 그리 쓸쓸한 걸까
홍해리, 물새 발자국
사랑아, 너는 앞으로 걸어가는데
왜 자꾸 내게로 다가오고 있느냐
박상우, 버티는 삶
사막과
황무지와
무인도로 이루어진
나의 세계
갈증을 견디기 위해서는
한 잔의 물만
허기를 견디기 위해서는
한 움큼의 먹이만
있으면 되고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서는
인간은 본디 섬이라고
믿으면 되느니
그런 삶도
그럭저럭 버틸 만하다
햇빛이 닿지 않는 심해(深海)에 빠져
염통과 뇌가 터질 듯 말 듯해도
도종환, 막차
오늘도 막차처럼 돌아온다
희미한 불빛으로 발등을 밝히며 돌아온다
내 안에도 기울어진 등받이에 몸 기댄 채
지친 속도에 몸 맡긴 이와
달아올랐던 얼굴 차창에 식히며
가만히 호흡을 가다듬는 이 하나
내 안에도 눈꺼풀은 한없이 허물어지는데
가끔씩 눈 들어 어두운 창밖을 응시하는
승객 몇이 함께 실려 돌아온다
오늘도 많이 덜컹거렸다
급제동을 걸어 충돌을 피한 골목도 있었고
아슬아슬하게 넘어온 시간도 있었다
그 하루치의 아슬아슬함 위로
초가을바람이 분다
유홍준, 모래밥
공사장 모래더미에
삽 한 자루가
푹
꽂혀있다 제삿밥에 꽂아놓은 숟가락처럼 푹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느라 지친 귀신처럼
늙은 인부가 그 앞에 앉아 쉬고 있다
아무도 저 저승밥 앞에 절할 사람 없고
아무도 저 씨멘트라는 독한 양념 비벼 먹어줄 사람없다
모래밥도 먹어야 할 사람이 먹는다
모래밥도 먹어본 사람만이 먹는다
늙은 인부 홀로 저 모래밥 다 비벼먹고 저승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