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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다, 나으 딸
게시물ID : lovestory_888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2
조회수 : 23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11/25 10:4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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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장하다, 나으 딸



 초봄의 일이다, 중3 막내이 담임샘인테서 전화가 왔단다. 돌출행동이 잦아서 교무실로 불러서 야단을 쳤더니 울기만 하고 끝까지 말을 않더란다. 그라다가 끝에는 생각을 정리해서 내일 말씀드리겠다 카더란다. 지깐넘이 무슨 생각이 그래 많다꼬. 그렇게 나오니 선샘으로서는 찜찜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마누라인테 전화를 했던 거였다.

 그날은 알 없는 안경을 끼고 돌아댕기면서ㅡ며칠 전부터 수업시간에도 줄곧 끼고 있었고ㅡ 비누방울로 장난을 심하게 쳤단다. 체육시간에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데도 여름용 반바지 추리닝에 과년한 처녀들이나 신을 원색스타킹을 신고 운동장을 종횡하기도 한단다. 놀라운 건 친한 애들이 아주 많고, 많은 애들이 이넘을 따라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사춘기라서 집에 오면 짜증이나 부리지 말을 거의 안하니 친한 애들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즈그끼리 무슨 비밀결사단이라도 만들었는강 친한 애가 몇인지, 이름이 무언지 물어도 모르쇠인 넘이 그렇단다. 한번은 감기로 목이 아프다며 스카프를 맸는데 몇넘이나 수업시간에도 스카프를 따라 매고 있었단다. 며칠이나 그랬단다.

 더욱 놀라운 건 1학년 때 지 짝이었던ㅡ지 말에 따르면 너무 소심해서 왕따를 당하는 애를 2학년 때는 같은 반이 아니었는데도 점심시간이면 늘 같이 밥을 묵으러 댕겼단다. 걸핏하면 짜증이나 부리는 넘이 그런 일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선샘들이 그걸 알고 3학년 때는 둘을 일부러 같은 반으로 배정했다는 거였다.

 친구가 많은 이유가 짐작이 갔다. 마땅히 해야 하지만 누구나 하지는 못하는 일을 하면 따르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경험들 없는가. 버스 안에서 노인이 바로 앞에 서 있으면 아무렇지 않게 비켜드리겠는데, 좀 멀리 있으면 다른 사람이 볼까봐 괜히 부끄러워서 마음 불편해하면서도 끝내 앉아서 간 적이 없는가. 나는 통학할 때 그런 적이 많았다. 여학생들이 많거나, 좋아하던 여학생이 있을 때는 더했다.

 막내이의 행동은 지 자리에서 좀 멀리 떨어져 서 있는 노인을 모시고 와서 자리에 앉혀 드린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넘 중1 때였다. 학교에서 부모를 상대로 하는 설문조사에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가, 하는 항목이 있었다. 그런 건 당연히 마누라 몫인데 어떻게 내가 하게 된 거 긑다. 그래 나는 '적게나마 이웃을 돕는 사람'이라고 써줬다. 근데 선샘이 반에서 유일하게 지한테만 이거 누가 써줬냐고 묻고는 '아부지가 생각이 훌륭하신 분이구나' 카더란다. 훌륭하기는 개뿔. 돈 떨어지면 즈그 엄마 지갑에서 돈 쌔벼가 술 사묵는 폐인인데. 우쨌거나 그 일로 즈그 아부지가 눈꼽만치 자랑스럽었는강은 모리겠다.

 알아들을만한 나이가 됐을 때 붙들어 앉혀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ㅡ버스를 타고 가는데 니는 앉아 있는데 할매 한 분이 서있다, 그라머 우예야 되겠노?

 ㅡ비켜 드려야지.

 ㅡ누구를 위해서?

 ㅡ할머니를 위해서.

 ㅡ그기 아인데. 만약에 니가 안비케 드리고 그냥 있으면 니 마음이 편하겠나, 불편하겠나?

 ㅡ불편하겠지.

 ㅡ그라머 니가 편할라고 비케 드린 기 맞제?

 ㅡ응.

 ㅡ그라머 니를 위해서다, 그쟈?

 ㅡ그렇네.

 ㅡ남을 도우는 건 그런 기다.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니 자신이 편해질라꼬 하는 기다. 그라이까네 니 자신을 위해서 니 스스로 도우는 일이다, 알겠제?

 막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그랬다. 지 잘될라꼬 노력하는 넘을 하늘이 할일 없나 도와주구로. 가마 놔또도 잘될 낀데. 그런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스스로 알게 될테니. 이 격언에 대해서 다른 해석이 있는 줄 안다. 허나 나는 지금까지 철석 긑이 이래 믿고 있다.

 이넘이 아부지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그눔아가 하는 말. 억울해서 울었단다. 장난도 그렇게 심하게 치지도 않았고, 자신의 돌출행동이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단다. 맞는 말이 아닌가. 지야 알 없는 안경을 끼든, 수업시간에 스카프를 하든, 체육시간에 똥폼을 지기다가 다리가 아이스께끼가 되든말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아니지 않는가.

 나는 잘했다고 했다. 선샘이 또 머라카머 그때는 아부지가 학교엘 가꾸마, 했다. 대견해서 은근히 물어봤다.

 ㅡ니, 갸한테 잘해 준다메?

 ㅡ잘해 준 거 아닌데. 그냥 다른 친구들처럼 대해 줬는데.

 오호라, 거따가 겸손하기까장! 이라머 폐인이나 다름없는 내가 애들은 잘 키우고 있는 건가?

 다음날, 막내이 선샘인테서 전화가 왔단다. 자신이 잘못 생각한 거 긑다고. 애들인데 자신의 기준으로 본 거 긑다고. 그라고 그날도 교실에서 지켜보니 체육시간에 알 없는 안경을 끼고 운동장을 돌아댕기고 있드란다. ㅎㅎ.

 또 며칠 뒤, 소풍 후에도 선샘인테서 전화가 왔단다. 놀이공원에서 왕따 당한다는 그 친구를 하루종일 델꼬 댕기면서 챙겨주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고.


      20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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