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장 저 개같은 좀비의 머리를 후려친다. 인간의 존엄성 운운할 만큼 똑똑하게 산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런 식으로 죽어선 안되지 않았을까? 분노는 곧 힘이다.(4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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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그 여자, 내가 누군지 모르는 눈치더구만.
나는 속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1층 주방쪽으로 향했다. 아까 움직이는걸 보아하니 좀비놈들 정도의 움직임이라면 너끈히 피해낼 자신이 있다. 실수로 경동맥을 제대로 못긋는 바람에 칼을 든 현직 경찰이랑 데스매치를 벌인적도 있단 말이지. 그까짓 덜죽은 시체라면 마저 죽이면 그만이다.
딱히 의심가는 곳은 없었다. 소리가 난건 아마 건물 밖이 아닐까? 칼을 청바지 주머니에 쑤셔넣고 담배 한대를 꺼내 물었다. 피운지 좀 됬었던가, 머리가 지잉 울리면서 말초신경이 흐물흐물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제 여자와 자연스레 말을 섞는건 가능해졌다. 그러나 문제는 끌어들이기지. 아무래도 무드에 휘말리지 않는 타입같다. 보통 여자라면 저런 사태에 비명을 지르며 자지러지던가 하다못해 울기라도 할텐데 눈물이 그렁그렁 한데도 이를 악물고 해머백을 들고 있다. 대단하지 않나?
아까 여자와 대화를 나누다 맡은 냄새가 생각났다. 오드 콜로뉴나 향수, 하다못해 화장품 특유의 달콤한 냄새도 없이 단정한 비누향. 흥분해 땀을 흘리는 상황에서도 피어오르는 그 향취는 끝내줬다.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목을 그을뻔 했다. 그럴순 없지. 이런 곳에선 제대로 해체를 할수가 없다. 적어도 내 집이나, 그 여자의 집으로 이동한 뒤여라야 한다. 최상품의 재료 수급을 위해 그 정도 수고는 당연한 일이다.
얇고 쫄깃한 피부 아래에 근육결이 들어날 정도로 발달한 몸, 아마도 팔을 많이 쓰는 일이겠지. 물을 건네줄때 보니 승모근도 만만찮고 손은 굳은살 투성이다. 실로 아름다운 여자... 경동맥을 비스듬히 자르고 그대로 갑상선 아래쪽으로 칼을 미끄러트려 쇄골까지 결을 따라 긋자. 뜻밖의 배신에 눈을 부릅뜨고 물러나면 도망갈때를 노려 등근육을 해체해야 겠다. 그래! 이번엔 산채로 해체하는거야!! 나는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걸 느낀다. 최고의 아이디어다.
그동안은 그저 피를 빼고 얼음에 몸을 담궈 천천히 조각하듯이 해체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뉴스를 보니 사태는 인근 경기지방까지 퍼진 상태고 국회는 벙커로 이동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상태다. 지금같은 때라면 시체가 하나쯤 늘든, 썩는 냄새를 풍기든 신경쓸 필요가 없다. 최상의 환경이다! 아까의 허기부터 물 흐르듯 이어지는 운명의 인도는 지금 내게 확실하고 완벽한 오브제를 요구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시체가 돌아다니는 도시에서 가장 단단한 여자를 산채로 해부하는 일이라. 그야말로 피그말리온 신화의 완벽한 역성! 죽은 돌로 조각상을 빚어 여자를 만든 피그말리온, 그리고 산 인간의 몸을 빚어 죽은 조형물을 만드는 나. 기가막힌 콘트라스트다.
바지가 터질듯이 부풀어 올라 생각을 멈춘다. 가라앉히자. 벌써부터 이 꼴이면 흥분해서 일을 그르치는 수가 있어. 담배는 몇번 맛보지도 못했는데 거의 필터까지 타들어가 있다. 기분을 정리하려고 한대 더 불을 붙인다. 그때, 위층에서 퍽! 하는 소리가 들린다. 뭔가 딱딱하고 축축한게 터져나가는 듯한 소리. 이내 퍽소리가 연달아 들린다. 퍽퍽퍽... 곧이어 계단을 따라 핏줄기가 주르륵 떠내려 온다.
그 뒤에 그 여자가 서있다. 눈은 이 어둠속에서도 빛날듯이 형형하게 뜨고있고, 어디서 난건지 쇠로 된 야구배트는 한쪽면이 찌그러진 상태다. 연록색 저지 여기저기에 살점처럼 보이는 무언가와 희고 붉은 액체가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지만 꺼리는 기색은 없다.
"위층에 좀비가 들어오려고 하길래, 머리를 박살냈어요."
짧고 명료하다. 목소리는 떨리지 않고 단단한 심지 같은게 느껴져. 분명 그것은 문명사회의 인간이 쉽게 맛볼수 없는 유사살인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기가 죽거나 절망하는 기색도 없다. 해야할 일을 하겠다는 의지 같은게 느껴진다. 나는 놀란 표정을 유지하려고 갖은 애를 쓴다. 그녀에겐 찡그리는 것을 참으려는 모양새겠지. 그러나 이것은 희열이다. 저 여자는 스스로 자신 최후의 모양새를 결정해왔다. 확정이다. 전부 해체한 뒤에는 그녀의 뇌수와 피를 전신에 뿌려주자.
"...괜찮으세요?"
"네. 일단 밖으로 이동합시다. 시내까진 안되겠지만, 가까운 Q아파트 단지, 아세요? 그 근처의 학교가 긴급시 피난처로 운용된다고 들어본거 같아요."
나는 얼른 달려가 그녀를 부축하려 했지만, 그녀는 웃지도 않고 내 호의를 거절했다. 그리고 정돈된 걸음걸이로 문으로 향한다. 그래, 어서 가자꾸나. 그치만 종착역은 그곳이 아닐거야. 그녀가 왼쪽으로 진로를 잡자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준다. 그쪽이 Q아파트 단지쪽이라고 설명해주면서. 왼쪽으로 보내긴 좀 그렇다. 아까 우리보다 먼저 나간 가게 일행이 한창 디너쇼를 벌이는 중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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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품 : 목공예용 중간크기 칼 하나, 담배 반갑, 라이터 하나.
1. 일단 아파트 단지쪽으로는 데려가 볼까? 이 근처 지리를 아예 모를리는 없을테니 너무 어긋나게 가면 의심할테지. 그 근처에서 우리의 허니문 로드를 찾아보자고.
2. 이대론 참을 수가 없다. 어떻게든 내 아파트로 끌어들여야겠어. 걸어서 이십분 거리에 있는 Q 아파트를 모른다는건 애초에 여기가 초행이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