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나오는" 지구방위대
예전에 저는 '나온다'는 소문이 있는 지구방위대에서 근무할 때 이야기라도 들려드릴까요.
이동할 때는 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받는 건
어딜 가나 있는 일이겠지만, 우리 조직에도 당연히 있다.
시간대마다 통행인 추이나 사건이 종종 발생하는 중요 경계 지역,
질 나쁜 단체나 이웃에게 폐를 끼치는 집,
협력자나 협력 편의점, 금융 기관,
그리고 시쳇말로 "사냥터"는 물론이고,
지구방위대의 비품 위치 같은 것도 지구방위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임자 아저씨한테 대충 인수인계를 받고,
지구방위대 안을 한 번 둘러봤더니 이상한 게 보였다.
지구방위대에 있기엔 좀 이상한, 제대로 된 소파 베드가 놓여져 있었다.
"엄청 비싸 보이는 게 다 있네요. 주민 분이 기부하신 건가요?"
"아니, 이건 근무자들이 돈 모아서 산 거야.
이 지구방위대에는 나오기 때문에 다들 수면실엔 안 가거든"
질문 자체가 반은 농담으로 한 거라서, 농담으로 대답하신 줄 알았다.
경찰은 꽤나 징조를 따진달까, 오컬트나 징크스 같은 걸 믿는 사람이 많다.
·"한가하다~"라고 하면 반드시 사건이 발생한다
·형사는 저녁 식사로는 돈까스 덮밥을 먹지 않는다(체포 사건이 일어난다)
뭐 이런 걸 터부 시 하곤 한다.
그런 환경이다보니 나도 아저씨 이야기를 한 귀로 흘려보냈다.
간략하게 지구방위대 위치를 먼저 말해두겠다.
장소는 바닷가 마을인데,
그 중에서도 우리 지구방위대는 10미터만 가면 부두가 있어서
폭우가 내리면 내심 상당히 불안했다.
항구와 공장이 주요 산업이라서, 밤이면 낚시꾼과 트럭 외에는
소리 내는 것이 없을 정도로 고즈넉한 곳이다.
나는 그 지구방위대에서 10개월 동안 실제로 네 번의 "체험"을 했다.
첫번째는 혼자 열리는 문.
아까 말한 소파 베드를 나는 쓰지 않았다.
만약에 상사와 동료가 있을 때는 아까 말한 징크스 같은 룰을 지키겠지만
다행히 나 혼자 근무하는 지구방위대였고
어차피 짧은 수면 시간이라 제대로 이불을 덮고 자고 싶었다.
수면실은 2층에 있었다.
사무실 옆에 좁은데다 전등이 망가진 계단이 있는데
그 계단을 올라가면 신발 벗는 곳이 있고,
문을 열면 3평 정도 되는 다다미가 깔린 방과 이불이 있었다.
그런데 그 문이, 눈을 떼면 열려 있는 게 아닌가. 얼마나 짜증나던지.
자다가 일어나보면 열려 있다.
자려고 위로 올라가보면 열려 있다.
순찰 돌고 돌아와서 서류를 작성하고
화장실 가려고 문득 올려다보면 열려 있다.
닫고 닫고 닫고 또 닫아도 문득 보면 열려 있다.
그러면서 지켜보고 있으면 꼼짝도 하지 않는다.
심할 때는 한 번 닫고 계단을 내려가다가 돌아보면 열려 있었다.
애당초 귀신보다는 불량배를 훨씬 신경써야짘ㅋㅋㅋ라고 생각하던 사람이라
이 정도로는 겁먹거나 하지 않았다.
다만 짜증이 나서 문 앞에 큰 널빤지를 걸어놨다.
문을 열면 우당탕 소리가 날 테니까.
"대체 이 귀신은 얼마나 수면실에 들어가고 싶은 거야?!"라고 생각했다.
널빤지를 댈 때는 마치 학창 시절에
문틈에 칠판 지우개를 올려놓고 선생님 오길 기다리는 그런 기분이었다.
두근두근하며 서류 정리를 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났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수면 시간 전이었으니 새벽 3시보다는 전이었던 것 같다.
.......................지익
하고 들려왔다. 널빤지가 미끄러지는 소리였다.
기다리던 현상이긴 하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어째야 할 지 모르겠다.
그래도 일은 알이니까 몸이 수면실로 움직였다.
머리는 텅 빈 채로 발만 계단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문 손잡이를 잡은 손이 천천히 문을 닫는 순간을 목격했다.
불이 켜지지 않은 계단 암흑 속에서 손목만이
닫히는 문 사이에서 하얗게 동동 떠 있었다.
왜 지금 문을 닫는 거야? 라는 생각을 했다면 좀 이상하겠지만
일단 그 순간에는 내 얼굴이 ( ﾟдﾟ ) 요런 상태로 굳어버렸다.
일단 두 가지를 파악했다.
하나는 전임자가 농담한 게 아니라는 것
또 하나는 수면실에 들어가려고 한 게 아니라, 이미 방 안에 있었다는 것.
그날부터 나도 소파를 사용하게 되었다.
두 번째 사건은 꿈 이야기다.
뭔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2층에 있는데다, 나는 소파에서 자면 안전하겠지.
지구방위대 안에 있는 것도 싫지만, 일이니까 어쩔 수 없고
윗선에 말하면 비웃음 당할 게 틀림 없다.
그래서 계속 1층에 있는 소파에서 자게 되었고, 그러던 중 겨울이 되었다.
수면을 취한다고는 해도 반드시 잘 수 있는 게 아니고
사건이 발생하면 어쩔 수 없이 밤을 새야 하고,
사건이 발생하지 않아도 낮에 복잡한 일이 하나라도 들어오면
수면 시간은 서류 정리에 할애해야만 했다.
서루 정리에 두 시간 걸린다고 하면, 남은 시간이 30분 뿐이라
누워봤자 일어나는 게 힘들 뿐이다.
책상에 엎드려서 잘 뿐이었다.
당연히 얕은 수면이라 그럴 땐 종종 가위에 눌리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도 바로 "아, 가위 눌렸네"하고 깨달았다.
평소에는 책상에서 엎드려 잘 때만 가위에 눌렸는데
오늘은 소파에서 자는데 대체 왜...
눈이 떠지긴 했지만 가늘게 떠질 뿐이었고
몸에 힘을 주려고 해도 약간 비틀리는 정도였다.
불이 켜져 있었다. 왜?
좁은 시야에 발 아래(누워 있었으니 발 아래라는 표현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의
스토브가 쓰러져 있었다.
그때 비로소 일반적인 가위 눌림이 아니라, 꿈이라는 걸 깨달았다.
왜냐하면 이 스토브는 요즘 쓰는 팬 히터 형이 아니라,
아주 옛날에나 쓰던 원통 모양의 40kg은 될 것 같아 보이는
발로 차봤자 쓰러지지도 않을 것 같은 그런 스토브였다.
꿈인데 참 현실 같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소리가 났다.
찰박 찰박 찰박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
으아아아 오랜만에 출몰했다!! 하고 두뇌 풀 가동.
대체 왜 이렇게나 정신이 또렷한데 눈이 안 떠지지?!
초조했지만 움직일 수 없었고, 소리를 내봤자 혼자 있으니 소용도 없다.
그저 발소리를 내는 것이 도착하는 걸 기다릴 뿐이었다.
체감 시간은 20초 정도 지나자 그것이 나타났다.
흰 우비? 아니면 원피스를 입은 사람이 내 시야 끝에 지나갔다.
꿈의 내용을 기억하는 거라 좀 애매모호하다만
그때는 발 소리가 안 들렸던 것 같다.
상하가 하얀 옷,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오는 길이에 얼굴은 안 보였다.
아마 남자였던 것 같지만 매우 말랐고, 구석에서 날 보고 있었다.
위험하다... 부디 다가오지 말라고 기원하며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했다.
그때 그 녀석이 갑자기
무언가를 말했다.
쇳소리가 나는 저음이라 성별을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튀어오르듯 몸을 일으켰다.
스토브는 쓰러져 있지 않았다. 역시 꿈이었다.
일어나서 생각해보니 그 녀석은
"비가 올 거야. 벌레가 들끓을 거야"
라고 했던 것 같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귀신은 2층에 있으니 1층은 안전하다"라는 설이 무너지고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였다.
어쨌든 그 날은 '맑은 날씨'였다.
세 번째 사건은 꽤 시간이 많이 지난 초여름. 마침 지금과 비슷한 시기였다.
지구방위대의 석면을 손보려고 업자들을 부른 적이 있었다.
꽤 오래 전부터 말이 나왔었는데 계속 미루다가
겨우 예산을 짜냈다며 총무가 불러 주었다.
나로서는 (아니, 직원 전원이) 석면 제거보다
딴 걸 먼저 제거해야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파출소에 가서 마지막 업무 인계를 하고 지구방위대에 도착해보니
울퉁불퉁 근육질 형씨들이 주차장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손님들이 오가는 곳에서 땡땡이치지 말라고... 일반인들이 무서워하잖아
라는 생각을 했지만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내가 생각하는 한 최선을 다한 상큼한 표정으로
"수고 많으십니다. 작업은 순조롭게 되고 있나요?"하고 물었더니
한 형씨가
"아니 그게... 안에 있는 순경 아저씨가 문을 안 열어줘서..."
아니 ㅋㅋㅋ 혼자 있는 지구방위대엨ㅋㅋㅋ
지금 그 본인이랑 인수인계하고 왔는뎈ㅋㅋㅋㅋ
낮의 출물이라 그렇게 무섭진 않았지만
업자는 총무 담당자에게 여벌 열쇠를 받았다고 들어서 그 사실을 확인해보니
·열쇠를 썼지만 막힌 것처럼 열리지 않았다
·체인이나 뭘로 막은 것 같아 귀를 기울여보니 안에서 소리가 났다
·불러도 답이 없어서 일단 나오길 기다리기로 했다
는 것이다.
그 후 내가 가진 열쇠로 열어보니 문은 잘만 열렸고, 당연히 2층 문은 열려 있었다.
마지막 경험이다.
이게 제일 무서워서 나는 견딜 수 없어져서 윗선에 직접 말해
10개월 밖에 근무하지 않았지만 교대하게 되었다.
계절은 한여름이었다.
그때 쯤부터는 되도록 지구방위대로는 가지 않고
서류 정리와 방문자가 있을 때만 가고
되도록 잠도 자지 않고 순회를 돌곤 했다.
그날은 운이 나빠 서류 정리할 게 많아서
지구방위대에서 토독토독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고 있었다.
수면 시간이 되었고, 개인적으로 참 싫은 시간대였지만
수면 시간에는 지구방위대 문을 닫고
(그 시간대에 오는 사람은 인근에 있는 지구방위대 사람이 커버해 줌)
서류 작성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작업이 진척된다는 게 유일한 동앗줄이었다.
아마 새벽 4시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바깥 주차장에 차가 서는 소리가 났다.
"누가 왔나? 이런 시각에? 긴급한 일인가?
인근 지구방위대에 연락하는 것보단 그냥 내가 상대하는 게 낫겠지"
거기까지 생각하고 문을 열려고 일어서니 바깥 문이 덜컹 열렸다.
"어이, 일 하냐?"
인근 지구방위대에 있는 선배 목소리였다.
수면 시간 중에 지구방위대 관내는 인근에서 대신 돌기 때문에
그때 가끔 이렇게 방문할 때도 있다.
아아 선배구나, 다행이네. 서류 작업 계속해도 되겠네
이런 생각을 하는데
"야, 열어줘~ 불 켜져 있으니 안 자는 거 아냐??"
하고 선배가 불렀습니다.
최근엔 잘 때도 불을 켜놓지만, 그걸 저 선배가 알 리가 없으니
열어주려고 일어나려던 순간
어?
진짜 선배라면 의례적으로 하는 '그것'이 없었다.
저 선배라면 반드시 하는.
여벌 열쇠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외부인이 절대로 알 수 없는 곳에 숨겨두는데
순경들이 별건 대처를 돕기 위해서
인근 순경들끼리는 여벌 열쇠를 어디에 숨기는지 알고 있다.
"야~ 열라니까"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대답해선 안 된다 싶었다.
창 밖의 주차장을 쳐다봤다.
차가 없다.
"열어~"
이건 대체 누구지. 열어선 안 돼. 열어선 안 돼.
안에 있는 것도 무서워. 어쩌지. 불이 켜져 있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어느 틈엔가 소리는 멎었지만 문 너머에서는 인기척이 들렸다.
어쩌면 그냥 내가 겁을 먹어서 착각한 걸 수도 있지만.
그대로 화장실로 직행해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반 울상으로 윗선에 달려가 교체해달라고 했다.
인수인계를 받던 동료가 내 이야기를 듣더니 비웃었다.
그리고 반 년이 지나, 이동하게 되어 그 후는 어찌되었는지 모른다.
이것으로 내 이야기는 끝났다.
미카와의 바닷가 어느 마을에서 발생한 진짜 경험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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