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꾼 남편 사용설명서 및 술꾼 남편들에게 하달하는 행동요령 지침 ***
1. 술꾼 남편 사용설명서
먼저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이견이 분분하겠으나 내 멋대로 정의하자면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술 때문에 새벽에 귀가하거나 외박도 불사하는 남편이 술꾼남편이다. 거기에 미치지 못하면 술꾼이라 볼 수도 없으니 그냥 고마운 남편이라 생각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오손도손 명랑가정을 가꾸며 사는 것이 좋다고 감히 말씀드린다.
남자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주된 이유는 외로워서다. 아내들은 남편들이 놀려고, 놀기 좋아서 술을 마시는 줄 알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술과도 친구하고 싶고, 술과도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이 대다수 남자들의 팍팍한 삶이다.
특히 아버지이자 남편인 남정네들의 앞길은 온통 가시밭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어깨에 매달린 처자식의 무게는 천근만근인데 어떤 문제가 생겨도 어디에 하소연할 데가 없다. 어쩌겠는가. 아내를 걱정시켜서는 안되겠고, 잘 나가는 친구들에게 넋두리를 하자니 자존심도 상하고 도움은 더욱 안되고.
이러니 어찌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술은 모든 것을 받아준다.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묵묵히 상대방의 말을 들어준다. 술을 마시는 동안 남자들은 위로를 받는 것이다.
아내들은 술 마시고 들어오는 남편을 따뜻하게 맞아줘야 된다.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사정을 헤아려줘야 된다.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까지 귀가를 하지 않으면 집에 못 들어오게 하고 그러면 안된다. 그러면 어쩌라는 말인가. 대문 앞에서 잘 수는 없지 않는가. 아내들은 시간은 상대적으로 흐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술을 마시면 한두 시간은 금방 간다. 술하고 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하면 그날은 이미 새벽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으면 좋겠지만 남편이 어느덧 술꾼의 경지에 오르고 말았다면 제재를 가해야 된다. 질병과 마찬가지로 술에 의한 폐단은 조기 발견과 신속한 처방이 중요하다. 까딱하면 알콜중독으로 발전한다.
제재는 가하되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흔들어 보이면 안된다.
“더러븐 인간아, 술이가, 내가? 골라잡아라!”
이러면 안된다는 말이다. 그러면 반발한다. 남자들은 반발하는 인간, 즉 호모 스프링스다. 아내의 말이 맞지만, 아내의 말대로 하고 싶지만, 아내가 강요하면 어깃장을 부리고 보는 것이 남정네들의 심뽀다.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는 것이 실제로는 “당신은 와 그래 눈이 작노?” 이래버리는 것이 남자다. 그런데 잔소리를 하면 효과가 있겠는가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남편이 새벽 귀가한 날 아침에 정성을 다해 끓인 해장국을 차려내라. 그리고 말하라. 이때, 절때로 잔소리를 해서는 안된다.
“자기야, 어제 나 자기 많이 기다렸단 말이야! 자기야, 앞으로 쬐끔만, 아주 쬐끔만 더 일찍 오면 안돼?”
그러면서 한숨을 포옥 쉰다. 이때 보일 듯 말 듯한, 입은 듯 만 듯한 신비감을 자아내는 복장을 착용하는 것이 좋겠다. 거기에다 눈물까지 한 방울 연출한다면 더욱 금상첨화겠다.
연거푸 세 번만 그렇게 하라. 그러면 감동한 남편은 순한 양이 되어 충성을 맹세할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눈에 콩깍지가 씌여 당신이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고 뎀벼들던 한 마리 굶주린 들짐승 같던, 그때의 그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서는 사랑하는 남편이 평생 술을 끊을 수도 있다.
그렇게 했는데도 개과천선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한번 패줘야 된다. 패주는 데에도 요령이 필요하다. 그냥 되는대로 막 패면 안된다. 내가 가정폭력을 부추긴다는 비난을 받게 될 수도 있으니 꼭 필요한 분들은 최대한 요령껏 소문 안나게 패시기 바란다.
극약처방 하나 더.
몇 년 전이다. 남자와 남자가 만나는 장소는 오직 술집뿐이라는 투철한 신념을 수십 년째 견지해 온 친구넘이 술집이 아닌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연락해 왔다.
사연인즉슨 전날도 꼬알라가 되도록 술을 마시고 들어왔는데 아침에 마누라(나에겐 제수씨)가 화도 내지 않고, 멋진 안주에 독한 양주를 차려놓고 해장술까지 권하더란다.
뭔일인가 싶었는데 제수씨 그러더란다.
자신은 요즘 너무 행복하다. 당신이 이렇게 맨날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시는 걸 보면 과부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걸 안다. 그래서 당신이 죽으면 타먹을 수 있는 보험도 몇 개 더 들어 놨다. 어차피 죽을 거면 하루라도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당신이 죽으면 나는 정말 프리하게 살 것이다. 낭만씨하고도 수시로 잘 생각이다. 그 냥반 분위기도 있고, 멋지다. 거기다 오래 전에 술도 끊었으니 오래 살 것 아니냐.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마누라가 그러니 술이 확 깨더란다. 그렇게해서 나를 만나 금주선언을 하게 된 것이었다.
사실은 제수씨가 친구넘의 술 때문에 하도 하소연을 해대길래 내가 가르쳐 준 방법이었다.
친구넘이 마지막으로 한 말은 이랬다.
“시봉넘아, 다른 넘은 몰래도 니는 절때로 안된다!”
눈치 빠른 분들은 이쯤에서 남편 친구 중에서 분위기 쫌 아는 껄떡쇠를 찾아냈을 것이다.
껄떡쇠라고 다 같은 껄떡쇠가 아니다. 명랑가정이 명랑사회의 초석이라는 내 굳은 신념은 이렇게 한 가정의 평화를 지켜냈다. 친구넘은 지금 술을 완전히 끊지는 못했지만 1등 남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살고 있다.
이 자리를 빌어 친구넘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다.
“내가 여자라머 무조껀 뎀비는 줄 아나, 이 시봉넘아? 내도 니 마누라는 싫거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