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숭례문 잊으면 안되는 사건
게시물ID : bestofbest_888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우주로가자
추천 : 459
조회수 : 60716회
댓글수 : 0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2/11/18 01:37:39
원본글 작성시간 : 2012/11/16 21:09:07



사건


2008년 2월 10일 20시 40분경, 채씨가 시너를 부은 다음 라이터로 불을 붙여서 일어난 불이 흰 연기와 함께 숭례문 2층에서 발생하여 소방 당국은 신고를 받고 소방차 32대, 소방관 128명을 현장에 출동시켜 불씨를 제거하고자 건물 일부를 잘라내고 물과 소화 약제를 뿌리며 화재 진압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2월 11일, 0시 25분경, 2층 누각 전체가 불에 휩싸이고 화재 4시간 만에 0시 58분경 지붕 뒷면이 붕괴되기 시작했고 곧 2층이 붕괴되었습니다. 이어 바로 1층에 불이 붙어 새벽 1시 54분에는 누각을 받치는 석축만을 남긴 채 모두 붕괴되어 발화 5시간 만에 2층 문루는 90%, 1층 문루는 10%만 소실 되었습니다.

↑ 100년 전의 숭례문입니다.



↑ 6. 25 전쟁 직후 사진 입니다.




↑ 2008년 2월 10일 화재 발생










아래는 숭례문이 우리곁을 떠나던날 한 외국인의 인터뷰입니다.

 

 

"중국 전통 건축물은 '나는 이렇게 부자고 힘이 세다. 너는 뭐냐'하는

 

오만한 느낌이고 일본 전통 건축물은 너무 깔끔해서 정이 없어요.

 

하지만, 한국은 달랐어요. 건물 전체의 부드러운 흐름이 '어서 오세요'라며

 

따뜻하게 맞아주는 느낌이였죠."

 

숭례문 화재는 그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고 한다.

 

그는 "11일 아침 집에서 용산구에 있는 회사로 출근하다가 새까맣게 탄

 

숭례문을 보고 너무 놀라 하마터면 앞차를 들이받을 뻔했다"고 말했다.

 

그는 숭례문의 소실로 서울이 '행운의 상징'을 잃었다며 슬퍼했다.

 

일제시대 때 고궁부터 지방 과아까지 조선시대 건물 대부분이 철거 됐는데,

 

서울 복판에 있는 숭례문이 헐리지 않고 남은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그런걸 잘 몰라요. 당연히 그 자리에 있겠거니 하는 거죠.

 

하지만 저는 숭례문을 볼 때마다 저도 그 기적 같은 행운을 입는 느낌이 들어정말 행복했어요."

"한국의 혼 같은 한옥을 뜯어내고 아파트를 지은 뒤, '돈 벌었다'며 좋아하는 일이 많았죠.

 

관광안내 책자마다 숭례문 사진을 실어놓고 정작 방재예산 편성에는 인색했어요.

 

그러니 숭례문이 얼마나 섭섭했겠습니까.

 

600년이나 곁을 지켜줬는데 너무 돌봐주지 않으니까 화가나서 훌쩍 떠나버린 거지요."

 

바돌로뮤씨는 아프올 2~3년 안에 숭례문을 완전복원하겠다는 문화재청의 발표도

 

못마땅하다고 했다.

 

"조선시대에는 최고의 목재를 골라서 말리는 데만 3~4년이 걸렸거든요.

 

명장(名匠)들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 나무의 물결무늬까지 신경을 써서 건물을 지었는데

 

한국인들이 그런 정성 어린마음을 잊어버린것 같아요.

 

크면 둥글게 다듬고 작으면 섬세하게 깍아서 균형을 맞추던 옛 한국인들의 핏줄은 다 어디로 갔는지..."

 




2008년 안타깝게 소질 되어버린 숭례문이 내년 초에 다시 복원 된다는 소식입니다.

안타깝게 옛날의 것을 다시 복원 시키진 못하겠지만 앞으로는 숭례문뿐아니라

우리나라의 국보, 천연기념물, 무형문화재, 유형문화재 등 한사람 한사람이 훼손시키지 않고

지켜내서 미래에 후손들이 잘 관리하여 지켜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숭례문 화재 잊지말자|작성자 블랙마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