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선거 때마다 언론은 선거 결과를 놓고 예상치 못한 이변이라며 호들갑을 떨곤 한다. 4·13 총선도 마찬가지였다. 개헌선인 180석에 육박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새누리당 의석수는 과반은커녕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도 못 미쳤다. 야권 분열로 여당이 어부지리를 얻을 것이라는 예상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한겨레>의 선거 보도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민께 혼란을 준 점 사과드린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가장 큰 원인은 부정확한 여론조사 때문이다. 총선 여론조사는 집전화(유선전화)만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집전화를 대상으로 하면 응답률이 낮을뿐더러 전화를 받는 사람도 주로 낮에 집에 있는 주부나 고령층이 대부분이다. 제대로 된 여론을 반영하기에는 원천적인 한계가 있다. 이렇게 부정확한 여론조사에 기댄 언론 보도가 제대로 맞을 리 없다.
그렇다고 엉터리 선거 보도를 부정확한 여론조사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언론은 이미 여론조사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한겨레도 여론조사의 한계와 부작용을 사설로 지적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밑바닥 민심을 소홀히 한 채 여론조사 결과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민심의 흐름을 치열하게 파고들지 않은 언론의 게으름이 엉터리 선거 보도에 한몫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여론조사의 정확도와 신뢰도를 높이려면 여론조사 방식을 바꿔야 한다. 사실상 모든 국민이 가입된 휴대전화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하는 것이다. 고객 전화번호가 노출되지 않는 ‘휴대전화 안심번호’를 이용한 여론조사가 이뤄진다면 언론은 지금보다 훨씬 정확한 여론을 국민에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여야는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선거 때마다 국민이 엉터리 여론조사에 휘둘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야권 분열은 필패’라는 도식적인 접근법이 이번엔 통하지 않았다. 언론은, 야당이 분열하면 여당에 유리하다는 건 너무나 뻔한 ‘산수’라고 판단했지만 유권자는 이런 산수를 비웃듯이 야당 승리로 응답했다.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국민의 들끓는 분노가 야당 분열로 인한 패배 우려를 압도해 버린 셈이다. 그 분노의 크기를 언론은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다.
더욱이 정치적 의도까지 개입되면서 ‘야권 분열은 필패’를 전제로 한 언론 보도는 정반대 방향으로 증폭되기도 했다. 야권 분열로 이득을 볼 것이라는 새누리당의 이해를 대변하는 보수언론은 야권 분열을 부추겼고, 그 반대쪽에 서 있던 진보언론은 야권 단일화를 촉구하는 보도에 치중했다. 결과는 양쪽 모두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언론이 선거판에서 심판이 아닌 선수로 뛰려 할 경우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언론의 신뢰도만 떨어뜨릴 뿐이라는 쓰라린 교훈을 남겼다.
양당 체제에 익숙한 언론이 실질적인 제3당의 출현 가능성을 그리 크게 주목하지 않은 것도 실책이었다.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약진하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이처럼 의미 있는 제3당으로 우뚝 설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더욱이 정당투표율에서는 국민의당이 더민주를 제치고 2위를 기록했다. 이는 그동안 양당 체제를 상수로 놓고 모든 것을 판단한 언론으로서는 충격적인 결과다.
호남 민심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아무리 반문재인 정서가 강해도 호남인들이 제1야당인 더민주를 이처럼 철저히 외면할 줄은 생각지 못한 것이다. 정권교체를 최우선시하는 호남 유권자들이기에 대선 주자 지지도 1위인 문재인을 일정 정도는 지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호남인들은 문재인으로는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냉정하게 심판했다. 총선 뒤 이런 결과에 대해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아전인수식 해석이 난무한다.
정석구 편집인 물론 언론이 선거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민심과 동떨어진 엉터리 선거 보도가 계속될 경우 유권자의 판단에 혼란을 주고, 자칫 특정 세력에 의해 여론이 조작될 수도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건전한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게 된다. 언론이 정확하고 믿을 수 있는 선거 보도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