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73) 한화 이글스 감독은 지난해 11월에 치른 일본 오키나와 마무리캠프를 '천국캠프'라고 불렀다. 선수들이 온통 흙투성이, 땀투성이가 된 훈련사진이 공개되면서 '지옥훈련'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그 정도는 약과라는 뜻. 김 감독은 일본 고치 스프링캠프로 출발하기에 앞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극한'까지 가봐야 한다"며 스프링캠프의 훈련강도가 마무리캠프를 뛰어넘을 것임을 시사했다.
사실이었다. 15일부터 시작된 한화의 고치 스프링캠프는 무척이나 치밀하게 구성돼 있다. 김 감독이 비훈련기간 동안에 심혈을 기울여 짠 훈련 메뉴가 그물처럼 촘촘히 짜여있었다. 캠프 참가선수라면 누구라도 예외는 없다. 40대의 베테랑이든, 이제 막 20살이 된 신인이든 똑같이 그라운드에서 뒹굴어야 한다. 훈련을 100%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로만 고치 캠프 참가멤버를 구성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화 이글스 야수조의 17일 일본 고치 스프링캠프 스케줄표의 일부. 아침부터 밤까지 빽빽히 구성된 훈련 스케줄에는 점심시간이 딱 20분만 배정돼 있다. 다음 스케줄이 촘촘히 이어지기 때문에 '20분 점심식사'는 철저히 지켜진다.
심지어 선수들이 캠프에 도착한 첫 날인 15일 밤부터 곧바로 훈련을 했을 정도다. 선수들은 짐을 풀고, 저녁을 먹은 뒤 곧바로 훈련장으로 나와 배트를 휘두르고 섀도 피칭을 했다. 김 감독 역시 고치에 도착하자마자 숙소에도 가지 않은 채 곧장 그라운드로 나와 훈련을 지켜봤다. 한국에서 출발한 청바지에 재킷 차림 그대로였다.
이런 빽빽한 훈련 스케줄의 정점은 바로 '점심시간 20분'이다. 선수단은 야수조와 투수조 모두 하루에 12시간 정도 훈련을 한다. 아침 9시에 시작돼 야간훈련까지 마치면 밤 9시가 훌쩍 넘는다. 쉴 틈이 별로 없다. 오죽하면 점심식사 시간도 최소화했을 정도다.
17일 한화 선수단의 훈련표를 보자. 야수조의 점심까지 훈련 메뉴다. 오전 훈련 때는 수비에 중점을 둔다. 아침 웜업과 러닝을 마치면 송구와 펑고 연습으로 오전시간을 전부 보내게 된다. 특이한 점은 '점심시간' 항목이다. 낮 12시50분부터 오후 1시10분까지. 딱 20분만 배정돼 있다. 이후에는 또 곧바로 훈련스케줄이 이어진다. 점심식사 후 동부구장으로 이동하는 스케줄도 있어서 '20분 식사'는 칼같이 지켜져야 한다. 투수조도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메뉴도 간단하다. 도시락과 우동이 점심 메뉴의 전부다. 대단한 파격이 아닐 수 없다. 보통 야구단은 스프링캠프 점심메뉴 구성에 매우 큰 신경을 쓴다. 현지의 한국식당을 섭외하거나 숙소 호텔과 계약해 푸짐한 부페메뉴가 차려지곤 한다. 식사 메뉴가 알차야 선수들이 더 힘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시간도 최소 30분 이상이다.
하지만 김 감독은 다른 생각이다. 점심은 간단히 먹고 그 시간에 훈련에 집중한 뒤 오히려 아침이나 저녁을 충분히 먹는 게 낫다는 게 김 감독의 지론. 고치 캠프에서 점심은 사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