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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너랑만 살고 싶었다
게시물ID : lovestory_886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27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10/26 09:32:17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d0BFUY4GJxc






1.jpg

김숙경귀가

 

 

 

먼 길 걸어온 캄캄한 골목

문패 없는 집 앞에서 서성인다

떠났던 아침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고

담 넘을 듯 자라난 라일락과 전신주 사이엔

그림자가 없다

 

까맣게 태운 하루는 보라의 꽃 뭉치 뒤로 숨자

지상의 기다림 들을 말끔히 다려놓는 땅거미

더 이상 지상의 구겨짐들

낮은 곳으로 숨어들 수 없다며

저녁 풀벌레는 징하게 운다

 

한해살이 집 다 짓고 별을 품기 위해

와이셔츠 단추를 푼 남자

이젠 어깨를 흔든다

여기까지 걸어온 모든 발은

닳을수록 무거워지다가

달을 헝겊으로 싸맨 그믐의 문패 앞에서

다시 맨발이 되고 있다







2.jpg

정호승손에 대한 예의

 

 

 

가장 먼저 어머니의 손등에 입을 맞출 것

하늘 나는 새를 향해 손을 흔들 것

일 년에 한번쯤은 흰 눈송이를 두 손에 고이 받들 것

들녘에 어리는 봄의 햇살은 손안에 살며시 쥐어볼 것

손바닥으로 풀잎의 뺨은 절대 때리지 말 것

장미의 목을 꺾지 말고 때로는 장미 가시에 손가락을 찔릴 것

남을 향하거나 나를 향해서도 더 이상 손바닥을 비비지 말 것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지폐를 헤아리지 말고

눈물은 손등으로 훔치지 말 것

손이 멀리 여행 가방을 끌고 갈 때는 깊이 감사할 것

더 이상 손바닥에 못 박히지 말고 손에 피 묻히지 말고

손에 쥔 칼은 항상 바다에 버릴 것

손에 많은 것을 쥐고 있어도 한 손은 늘 비워둘 것

내 손이 먼저 빈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자주 잡을 것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책을 쓰다듬고

어둠 속에서도 노동의 굳은살이 박인 두 손을 모아

홀로 기도할 것







3.jpg

이태수달빛

 

 

 

깊은 밤달빛이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간다

멀리 따스하게 깜빡이는

불빛 몇 점

하지만 아직은 저 마을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언젠가 잠 속에 깊이 빠져 있었을 때

침실로 다시 돌아와 보면

꿈속의 풍경들이 까마득하게 지워져 있듯

 

언젠가 마음 아파 그 아픔이 하염없었을 때

내 생애가 다만 하나의 점으로 떠서

작아질 대로 작아진 한 톨 불씨가 되어 있듯

 

내 마음은 여전히 적멸궁이다

깊은 밤달빛에 젖고 또 젖어 걸으면

몇 점마을의 저 따스한 불빛이

차라리 아프다환하게 아픈 그림 같다







4.jpg

김은숙동백 낙화(落花)

 

 

 

그렇게 뚝 뚝

붉은 울음으로 한숨으로

함부로 고개 꺾는 통곡인 줄 알았으나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심장이 멎는 것

간밤 지독했던 영혼의 신열 지상에 뿌리며

골똘했던 스스로를 기꺼이 참수하여

한 생애 온전히 투신하는 것이다

그리 뜨겁지 못했던 날들의 치욕

더 단단해야 했던 시간의 꽃술 씁쓸할 뿐이어서

간신히 머금고 있던 노란 숨 놓으며

이승의 마지막 꽃잎까지 불을 놓아

까맣게 태우고 싶은 것이다

무너지고 싶은 것이다 무참히

캄캄한 생애 건너고 싶은 것이다

 

오래 익힌 화농(化膿깊숙이 묻으며

어쩌면 저 붉은 물 스며들어

환한 하늘뿌리에 홀연히 닿을 것이다







5.jpg

이기철사랑에 대한 반가사유

 

 

 

우리가 이 세상에 와서 일용할 양식 얻고

제게 알맞은 여자 얻어 집을 이루었다

하루 세 끼 숟가락질로 몸 건사하고

풀씨 같은 말품 팔아 볕드는 본가(本家얻었다

세상의 저녁으로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 아름다워

세상 가운데로 편지 쓰고

노을의 마음으로 노래 띄운다

누가 너더러 고관대작 못되었다고 탓하더냐

사람과 사람 사이를 세간이라 부르며

잠시 빌린 집 한 채로 주소를 얹었다

이 세상 처음인 듯

지나는 마을마다 채송화 같은 이름 부르고

풀씨 같은 아이 하나 얻어 본적에 실었다

우리 사는 뒤뜰에 달빛이 깔린다

나는 눈매 고운 너랑

한생을 살고 싶었다

발이 쬐끄매 더 이쁜 너랑 소꿉살림 차려놓고

이 땅이 내 무덤이 될 때까지

너랑만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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