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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출처 : https://youtu.be/BVgLCrkzIh8
송재학, 아버지
그 너머 가면
돌아오지 못할 길이
내 등 뒤에서 휘어지는 중이다
복사꽃잎 쌓이는 십 리 길
글썽이는 집 앞
모롱이의 철새 떼와 만나고도 오래
길은 첩첩 쌓인다
며칠 지나 달빛 밟고 되돌아오면
식구들도 집도
한 잎 나뭇잎 그대로 초록일까
김이듬, 결별
흘러가야 강이다
느리게 때로 빠르고 격렬하게
그렇게 이별해야 강물이다
멀찍이 한 떨기 각시 원추리와
반질거리는 갯돌들과
흰 새들과
착한 어부와
몸을 씻으며 신성을 비는 사람들과
돌아선 발이 뻘밭인 듯 떨어지지 않아도
우리들 할 말이야 저 강물 같아도
너는 강물에 발을 담그고 난 손을 모아 그 물을 마신다
흘러가니까 괜찮은 일이다
우리는 취향이 다른 음악처럼
마주보고 흐르거나
다른 지류로
알 수 없는 유형으로 흘러갈지 모른다
흐르고 흘러 너와 내가 우연히 다시 만난다면
그래서 오늘의 모습을 까마득히 잊고
반갑게 서로 포옹할지도 모른다
김완하, 허공이 키우는 나무
새들의 가슴을 밟고
나뭇잎은 진다
허공의 벼랑을 타고
새들이 날아간 후
또 하나의 허공이 열리고
그 곳을 따라서
나뭇잎은 날아간다
허공을 열어보니
나뭇잎이 쌓여 있다
새들이 날아간 쪽으로
나뭇가지는
창을 연다
박연준, 나무의 약력
원래는 팔이 있었다
어느 날 이유 없이 두 팔이 잘리자
온몸으로 한을 품은 나무의 정수리에서
수십 개의 잔가지들이 뻗어나왔다
팔을 돌려달라고
바람에 흔들리다가
정신없이 위로 뻗대다가
더는 견디지 못하게 됐을 때
붉은 심장을 뱉어내기도 했다
발이 묶인 삼손들이 울부짖고 있다
참을 것이 많은 봄밤이라고
눈먼 나무들이
수런거린다
오명선, 낮달
밤을 지새고
이른 새벽 산사에 오른다
누군가 나무 물고기 두드리는 소리
안개비에 젖어
날짐승 머리를 감기고 있다
저 안개비에도 내 머리는 젖지 않는다
내 그릇에 담기지 않는, 병 깊은
낮달 같은 사랑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