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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철, 가슴을 열어보니
먼 사막을 지나왔는지
하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청춘이 가슴을 열어 보인다
샘도 풀도 나무도
오아시스는 모두 어디로 가고
속에는 가득 마른 모래바람
문소윤, 따뜻한 똥
누렁이 꼬리가 뒷산 흔드는
싸락눈 내리는 밤
뒷간을 가야할 때면 어김없이
아버지가 일어선다
삐거덕삐거덕 널빤지에 앉혀주는
아버지 손은
똥 누는 내내 따듯했다
2학년 올라가는 형아야 국어책
비비는 소리는 더 오래 따뜻했다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버들강아지 실눈 뜰 때
아버지 똥추마리 업고 봇도랑 건너
호박구덩이로 가겠다
까마귀도 출렁출렁 따라가며
뭐냐고 묻기도 하겠다
나는 양변기에 앉아서
어두워진 아버지를 오래도록 풀어낸다
김선우, 사랑
새장 속의 꽃을 기른 적이 있지
새장 문을 열어 두어도
꽃은 날아가지 않았네
새장 속의 심장을 기른 적이 있지
새장 문을 닫아둔 날
심장이 날아갔네 꽃이 날아갔네
잠긴 새장 바닥엔
무거운 핏빛 깃털 몇 낱
마르지 않는 고통 몇 잎
두려움에 문 닫은 자여
스스로의 무지에 애도할 것
이만섭, 직선의 방식
직선은 천성이 분명하다 바르고 기껍고
직선일수록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이는 곧, 정직한 내력을 지녔다 하겠는데
현악기의 줄처럼 그 힘을 팽창시켜 울리는 소리도
직선을 이루는 한 형식이다
나태하거나 느슨한 법 없이
망설이지 않고 배회하지 않으며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있는 그대로
단순한 정직이다
밤하늘에 달이 차오를 때
지평선이 반듯하게 선을 긋고 열리는 일이나
별빛이 어둠 속을 뻗쳐와 여과 없이 눈빛과 마주치는 것도
직선의 또 다른 모습이다
가령, 빨랫줄에 바지랑대를 세우는 일은
직선의 힘을 얻어
허공을 가르며 쏘아대는 직사광선을
놓치지 않으려는 뜻이 담겨있다
그로 인하여 빨래는
마음 놓고 햇볕에 말릴 수 있을 것이다
바지랑대는 빨랫줄로 말미암고
빨랫줄은 바지랑대 때문에 더욱 올곧아지는
그 기꺼운 방식
마경덕, 뒤끝
버스 뒷좌석에 앉았더니 내내 덜컹거렸다
버스는 뒷자리에 속마음을 숨겨두었다
그가 속내를 꺼냈을 때도 나는 덜컹거렸다
뒤와 끝은 같은 말이었다
천변(川邊)이 휘청거렸다
나무의 변심(變心)을 보고 있었다
이별을 작심한 그날부터 꽃은 늙어
북쪽 하늘이 덜컹거렸다
코푼 휴지를 내던지듯 목련은 꽃을 던져버리고
남쪽을 향해 돌아앉았다
발밑에 널린 파지를 밟으며 걸었다
자줏빛 눈물이 신발에 묻어왔다
길가 벚나무가 검은 버찌를 버릴 때도
보도블록은 잉크빛이었다
뒤가 어두울수록 앞은 환하고 눈이 부셨다
뒤끝이 지저분한 계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