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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원, 시(詩), 시(詩)
오늘은 내가 나부낀다
바람이 성근 신발을 여미는 때
하냥 졸던 논두렁이 마른 얼룩을 부비는 때
어긋난 서편 사이로 떠오른 개밥바라기별이 두근두근 저녁을 모으는 때
밥 짓는 연기 한 포기, 은빛 가을꽃으로 눈물겹게 피어나는
그 그 그 때
자욱한 먼지들로 살아나는 당신
내가 밀려간다
박후식, 일몰
산길을 가다보면
돌 끝에도
햇빛 앙금이 묻어 있다
누가
보냈을까
산골 할머니가 밭고랑 끄트머리에서
자꾸 흘러내리는 햇빛을 고랑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할머니가
돌멩이처럼 작아지고 있다
박철, 지리산에 살 때
마음은 항상 너에게 있었다
이른 아침 꿈에 놀라
뒤척이다 누워 여명 속에 운무를 마셨다
구름을 마셨으므로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산이건만 나무 한 그루 바위 한쪽 볼 수 없었으며
산그림자조차 나타나지 아니하였다
오직 너만이 하얗게 다가왔다
너는 역경이었다
처음엔 외로움도 친구였으나
시간이 지나 그도 내게 등을 돌렸다
무섭고 서럽던 무릉도원에서
내가 한 짓이라곤
밤새도록 구름 하나 부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이 년을 살다 내려왔을 때
나는 미쳐 있었다
김종제, 고백
햐, 달다
농익어서
저절로 터진
말씀 한 알, 한 알
단숨에
꿀꺽 삼켜
씨 뱉었더니
벌써 꽃 피었네
누군가 몸도 주고
무덤까지도 원하는 저 열매
강경호, 나무의 정신
죽은 나무일지라도
천년을 사는 고사목처럼
나무는 눕지 않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
내 서재의 책들은
나무였을 적의 기억으로
제각기 이름 하나씩 갖고
책꽂이에 서 있다
누렇게 변한 책 속에
압축된 누군가의 일생을
나는 좀처럼 갉아 먹는다
나무는 죽어서도
이처럼 사색을 한다
숲이 무성한 내 서재에서는
오래 전의 바람소리, 새소리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