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챙”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여여문의 겉옷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 피할 곳이 없는 좁은 공간과 누워있는 인질 그리고 전투에 의한 피로. 이 때문에 그는 평소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수세에 몰려 있었다.
“그만…. 포기해라…. 왜놈. 흐흐”
유격장 파쇄의 입에서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대로 간다면 계집과 수급이 모두 자신의 차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퇫. 그럴 수 없다. 이 돼지 같은 되놈아.”
여여문은 입속에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지자 밖으로 뱉어내며 말을 이었다. 다시 둘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음…. 시간을 끌면 내가 이기겠지만, 왜놈들이 곧 쳐들어올 테니 이곳을 빨리 뜨는 게 좋겠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써야겠지.’
파새는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심하게 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답을 찾았다.
“가질 수 없는 장난감이라면, 부셔야겠지?”
더듬거리는 조선어 대신 유창한 모국어가 파새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여대장이 한어를 머릿속으로 해석하는 그 순간에 그는 혼절하여 누워 있는 울이에게 별안간 칼을 내려치는 시늉을 하였다. 놀란 여대장이 몸을 던져서 그녀 위로 엎어졌다.
“푹”
“설마 내가 이 아이를 죽이겠어? 얼음장처럼 냉정하다는 천하의 여여문이 이깟 계집 때문에 오늘 목숨을 잃는구나. 하하하”
“푸욱”
파 유격은 그를 조롱하며 그의 옆구리에 칼을 꽂아 넣었다. 여대장은 급작스런 고통에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안 아프지? 말해봐? 너 얘 좋아하지? 다 늙어빠진 게 추하군.”
모국어로 계속해서 그를 욕하는 파쇄였다. 그때였다.
“벌컥”
“쿵”
서낭당의 문이 급하게 열리며 세 명의 남자가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중 가장 어려 보이는 사내가 순간 여여문을 찌르고 있는 유격장 파새를 발로 차 떨어뜨렸다. 다른 사내 둘이 성황당에 자리를 잡았을 땐 이미 상황은 정리되어 있었다.
“파 유격! 이 무슨 망발이요!”
함께 들어온 중년의 남자가 파새에게 일갈했다. 명군 접반사 이덕형이었다. 옆에 있던 통사가 부지런히 그의 말을 한어로 통역하고 있었다.
“캑캑. 접반사 오셨소? 첫 번째 개별대면치곤 인사가 거칠구려.”
어린 사내에게 발길질을 당한 파새가 숨을 몰아쉬며 이덕형에게 항의했다. 그 순간 짐승의 포효와도 같은 고성이 작은 서낭당을 울렸다.
“아아. 스승님!”
덩치 큰 파새에 가려있던 여여문의 처참한 몰골이 키 작은 아이의 눈에 들어왔다. 아동포살수대 초관 산이가 분기탱천해 왜검을 뽑아 파 유격을 견주었다.
“아…. 산이 목소리가…. 들려…. 으으…. 여기가 어디지…. 헉. 대장님.”
산이의 큰 목소리가 누워있던 울이의 정신을 차리게 해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여여문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비시유 샤스...”
이번에는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산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불한당에게 천천히 다가가 겨누고 있던 칼끝을 그의 목에 대었다. 모가지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안 된다. 산이야.”
쓰러져 있던 스승이 제자의 발목을 잡았다. 산이는 고개를 돌려 여여문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며 짧고 간결하게 말했다.
“막지 마십시오. 설명은 이놈을 멱을 딴 다음 듣겠습니다.”
“히이익…. 살려주시오. 접반사 제발….”
갑작스러운 전세역전에 놀란 유격장 파새가 급히 접반사를 불렀다. 이덕형의 눈빛이 싸늘하게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보게 최 초관. 저런 버러지 하나 죽인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네. 보내시게.”
“대감께선 관여치 마십시오. 이후 이 일로 저를 치죄하려면 하십시오. 이놈은 제가 반드시 저세상으로 보낼 겁니다!”
산이는 파새를 계속 노려보며 성황당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 질렀다. 손에든 칼에 그의 힘이 더욱 실리고 있었다.
“안돼…. 헉…. 산…. 이…. 더는…. 사람을 죽이지…. 마라…. 대장으로서…. 아니…. 스승으로서….”
여대장은 그의 발목을 더욱더 세게 움켜잡으며 말했다.
“대장님. 말씀하시면 안 돼요. 어떡해…. 피가…. 계속 나와….”
울이는 자신을 감싸고 있던 헝겊을 풀어 깊게 파인 여여문의 옆구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부지런한 손놀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은 점점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갔다.
“부탁하마…. 한 번만…. 딱 한 번만…. 내 말을…. 들어…. 다오….”
“하지만…. 스승님. 저놈은….”
“그래. 여대장 말이 맞다. 그만 칼을 넣어라. 최 초관”
스승의 간곡한 부탁에 선뜻 결단을 못 내리는 산이에게 이덕형이 재차 그의 마음을 돌리려 애를 썼다.
“스릉”
제자가 왜검을 거두어 검집에 넣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엉거주춤하게 앉아 있는 파 유격에 건넸다.
“자. 어서 일어나시오. 그리고 눈앞에서 사라지시오. 지금 당장!”
산이의 추상과 같은 호령에 깜짝 놀란 파새는 그의 손을 붙잡고 일어났다. 순간 두 사람의 어깨가 맞았으며 서로 껴안은 자세가 되었다. 그리고 산이는 그를 한 바퀴 빙그르르 돌린 다음 파 유격에서 손을 뗐다.
“두…. 두고 보자…. 내 양 경리한테 오늘의 수모를 다 알릴 것이다! 퉤”
한바탕 악담을 퍼붓고선 유격장 파새는 자리를 떠났다. 산이와 접반사 이덕형이 그의 곁으로 황급히 다가왔다.
“이보시오. 여대장. 정신을 차리시오. 어서.”
“허허…. 접반사 대감…. 오셨구려…. 늦었소이다….”
여여문은 이덕형을 보고선 희미하게 웃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명군이 서둘러 진지를 비우고 떠나는 바람에 왜적에게 넘어가면 안 되는 중요문서가 남아 있었다오. 내 그걸 파기하느라 시간을 허비했더니만…. 이런 황망한 일이….”
접반사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말끝을 흐렸다. 여여문에게 무릎을 내준 울이가 흐느끼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흑흑…. 대장님. 흑흑….”
“울지…. 말아라…. 고운…. 얼굴이…. 다 망가진다….”
여대장은 피 묻은 한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감싸주었다. 그리고 다시 이덕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탁이…. 있소…. 대감…. 이 아들을…. 자유롭게…. 해주오….”
전날 중추부 첨지사 김충선에게서 그의 전후 사정을 들은 접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마시구려. 내가 책임을 지겠소이다. 여대장”
“스승님….”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산이가 나직이 여여문을 불렀다. 그의 눈가에도 눈물이 소리 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여대장은 그런 그의 손을 잡아 울이의 손에 포개 주었다.
“이제…. 그만들…. 투닥거리고…. 함께…. 사는 거다….”
“대장님…. 저는….”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한 울이가 뒷말을 잇지 못하고 본인의 입을 스스로 틀어막았다. 여여문은 고개를 돌려 이덕형에게 말했다.
“그만…. 가시오…. 적도가…. 몰려 올 것이오…. 울이를…. 데리고…. 어서 가시오….”
“알겠소이다. 여대장. 내 귀공의 공덕을 잊지 않으리다.”
접반사가 고개를 숙여 그에게 예를 표한 후에 통사와 함께 성황당을 나섰다. 여여문의 곁에서 안 떨어지려는 울이 또한 산이가 겉옷을 벗어 그녀에게 걸쳐주고는 우격다짐 끝에 밖으로 내 보냈다. 작은 방에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이 남았다.
“네…. 이놈…. 그걸 썼더냐?”
“무슨…. 말씀이십니까? 스승님.”
별안간 자신에게 화를 내는 여대장에게 놀란 산이가 말을 얼버무렸다.
“내가…. 모를 줄…. 아느냐…. 머리 뒤…. 풍부혈 옆에…. 순간…. 장침을 썼지?”
“그걸…. 어떻게….”
방금 대치상황에서 산이는 파새를 일으켜 세우는 척하며 품속에 가지고 있던 암살용 장침을 꺼내 그의 머릿밑 귀혈 주위에 꽂았다. 며칠 안에 아무도 모르게 돌연사할 수 있는 급소였다. 하지만 스승인 여여문만이 그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자신만이 알고 있는 암수였기 때문이었다.
“두 번 다시….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고…. 약조하거라…. 젊은 너에게…. 업보가…. 쿨럭쿨럭”
여대장은 말을 잇다가 기침을 하며 피를 토했다. 제자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흑흑…. 스승님…. 맹세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수급 세 개를…. 첨지 부사 김충선 영감에게 가져다주어라…. 내가 주는 것이라고 하면…. 알 것이다….”
여여문은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던 왜군의 머리 꾸러미를 힘없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산이는 그가 수급에 집착하는 것이 의아해졌다.
“스승님. 도대체 저 수급이 멉니까? 평소에 군공은 거들떠보지도 않으시더니….”
“녀석…. 다시…. 말이…. 많아졌구나…. 무릇 사나이는 죽어서도….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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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8년 1월 3일 저녁 학성산 조·명연합군 수뇌부 진지
“그게 참이오? 형님”
“그렇소이다.”
조총 포술대를 이끌고 있는 항왜장 김충선의 막사 안에 묘한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군막의 주인인 김충선과 별안간 찾아온 아동포살수대 대장 여여문이 탁자를 두고선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여여문의 용건을 다 들은 김 첨지가 포문을 열었다.
“어찌 이러십니까? 형님. 대장직에서 물러나신다니요.”
“오래전부터 생각해 온 것이오. 이제 육신이 늙어 전장에는 맞지 않으니 자리를 뜨는 것뿐이외다.”
여여문의 사직. 그것이 이날 김충선이 접한 가장 충격적인 말이었다. 임금이 가장 아끼는 항왜중에 하나인 그가 돌연히 사퇴를 선언한 것이다.
“심경에 변화라도 있는 것입니까? 형님이 그만둔다고 해도 순순히 사직을 윤허랄 주상전하가 아니십니다.”
김 첨지는 다시 한 번 그의 의사를 확인하며 선조의 뜻도 같이 피력했다.
“결심에는 변화가 없소이다. 용퇴만이 답일 것이오. 국왕 전하 때문에 내 첨지 영감을 찾은 것 외다. 나를 도와주시오.”
말을 마친 여대장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진심을 그에게 전했다. 김충선은 고개를 내저으며 그의 말에 하대하며 딴죽을 걸었다.
“어찌하여 주군을 배신하는 것이오? 우리 항왜들에 있어 충성을 다할 분은 성상이시오. 그분의 심기를 거스르는 짓거리에는 동참할 수 없소이다.”
여여문은 뜻밖에 강경하게 나오는 그를 보며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그도 이번에는 하대했다.
“휴…. 김충성! 아니 사야가. 네가 평가해 보아라. 민초를 쥐어짜서 무시무시한 전쟁을 일으킨 오사카의 원숭이와 백성을 버리고 한걸음에 요동 코앞까지 도망친 조선 임금 중에 누가 더 암군인가?”
“탕”
여대장의 신랄한 비판에 화가 난 김충선은 탁자를 치며 그의 말을 반박했다.
“닥치시오. 그런 불충한 언사를 입에 담다니…. 그러고도 당신이 나라의 녹을 먹는 신하라 할 수 있소?”
“흥. 처음엔 나도 기대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통제사 이순신과 의병장 김덕령이 반병신이 되고 죽어 나가는 걸 보고선 희망을 접었다. 조선은 말이야. 칼이 아니라 붓으로 사람을 죽이는 곳이더군. 하하.”
여여문은 더욱 날 선 언동과 허탈한 웃음으로 김 첨지의 덫을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항왜장은 그런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졌으며 말했다.
“궤변이오. 금상께선 한직에 떠돌던 그 이순신을 전라 좌수사에 임명하신 분이요. 누구에게나 공과는 있소. 그건 역사가 판단할 일이지 작금의 범인이 감 놔라 배 놔라 할 문제가 아니오. 그건 반역이니까….”
“반역을 꿈꾼 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용퇴할 때가 된 것뿐이다. 내 울산으로 내려오기 전 처자식의 위패가 있는 절에 들렸었다. 그들 앞에서 나는 맹세했다. 내 손에 피를 묻히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이다. 사실 피붙이를 먼저 보낸 못난 놈이니 어디서 비명행사 한다고 해도 후회는 없었다. 다만….”
“다만?”
“너와 내가 넣은 천애 고아인 두 아이. 울이와 산이가 눈에 밟혀는 구나. 누군가는 그 애들에게 복수에 미친 삶이 아닌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일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건 당신과 나의 원죄이니까….”
여대장의 입에서 울이 얘기가 나오자 김충선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를 기다리던 여여문은 더는 그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미련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였다.
“세게”
“무슨 소린가? 뜬금없이 세 개라니?”
침묵을 지키고 있던 김 첨지는 나가려는 여대장을 향해 말을 이었다.
“아무런 무공도 없이 주상전하를 설득할 수 있겠소? 자. 그대가 싫어하는 짓. 동포의 머리를 세 개 배어 오시오. 이를 해온다면 내 당신을 도울 것이오. 물론. 여대장의 사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오. 순전히 울이가 가여워 이러는 것이니….”
김충선의 제안에 그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선 군막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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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스승님….”
산이의 목소리에 잠시 혼절했던 그가 정신을 차렸다. 몸 전체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힘겹게 입술을 떼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산아…. 우리를…. 우리를…. 잘 부탁 한다…. 서로 의지하고…. 살아야…. 그 후링…. 좋아했으면….”
더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어린 제자는 한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스승의 눈을 감겨주었다. 이승에서 사제의 연은 그렇게 끊어졌다.
여여문의 죽음. 훗날 우의정의 자리에 오른 이덕형은 그의 공적을 다음과 같이 선조에게 아뢰었다.
「지난해 11월경 경리가 서생포의 지형을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을 구하려고 하였습니다. 경상 병사 성윤문과 울산사람 박응량, 훈련정 서경원을 보였는데, 경리가 울산과 서생포 등지의 형세를 자세히 캐어 묻고는 지도를 그려 보더니, 드디어 함께 행하여 의성에 이르러 항왜 여여문과 같이 초탐하게 하였습니다. 경주에 이르러 초탐한 것을 알리니 경리가 크게 기뻐하였고, 행군하는 날 선봉으로 삼아 길을 인도하게 하였습니다. 도산의 24일 전투에서는 수급을 많이 얻었습니다. 성 밑으로 들어가 물을 긷는 왜인을 유인하기도 하고 양산·동래·서생포 등지를 네 번씩이나 초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임진란 이후로 종군하지 않은 날이 없었고, 처자식도 모두 적의 손에 죽었으니 가상한 일입니다. 해조로 하여금 헤아려 논상케 함으로써 공로를 위로 격려하는 뜻을 보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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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8년 1월 4일 저녁 도산성 성문 앞
“처참하게 이를 때 없구나….”
말을 타고 왜성으로 향하던 왜장이 주변의 널려 있는 시체를 보며 입성하는 감상을 읊었다. 그는 부산성에서 구원을 온 모리 히데모토였다.
1월 4일. 조·명연합군과 왜군 원병 사이에 물고 물리는 접전이 일어났다. 퇴각하려는 연합군과 왜의 구원군이 곳곳에서 접전을 벌였다. 양측 모두 많은 사상자를 내고선 조·명연합군이 경주로 후퇴하는 것으로 13일간의 해를 넘기는 울산성 전투가 끝났다.
이날에 전투의 기록은 양측이 판이한 기억을 남기고 있다. 조선과 명에서는 추격을 예상하고 퇴로에 복병을 설치, 추격군을 섬멸했다고 주장하고 왜에서는 무질서하게 패주하는 연합군을 격멸했다는 내용으로 참전장수들이 남긴 행장에 수록되어있다.
일반적으로 과장이 심한 동아시아의 행장 기록물의 형태를 고려해본다면 조·명연합군 측의 사료가 좀 더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양측은 이 전투로 인해 공히 모두 1만 5천여 명의 전사자를 내었다. 연합군을 공성에는 실패했지만, 이전의 수세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과감히 왜군을 선제공격하여 적의 항전 의지를 꺾는 데 성공하였다. 이와 반대로 울산의 왜군은 연합군의 기습공격과 지연전으로 인해 울산성이 함락 직전에 몰리고 주장 가토 기요마사가 할복해야 할 위기에 몰렸지만, 연합군에게 치명적이었던 혹한과 시기를 잘 맞춘 구원군 때문에 결국 성을 지켜냈다.
모두 다 승자이고 모두다. 패자인 도산성전투는 그렇게 막이 내렸다. 북풍한설이 부는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전쟁이 남긴 찌꺼기들은 이내 눈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