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8 (호상護喪)
[손자-1]
손자는 참치 캔을 딴다. 할아버지가 입원하신 내내 손자는 무수한 참치 캔을 따야 했다. 병원에 붙어 있느라 냉장고를 비우는 대신 엄마는 참치 캔으로 찬장을 채웠다. 먹성 좋은 손자였다. 하나뿐인 내 손주가 남들 새끼 둘만큼 먹는다고 할아버지는 자랑하듯 말했었다. 엄마는 가리는 것 없이 주는 대로 다 잘 먹어 예쁘다 했다.
사나흘에 한번 집에 들러 엄마는 지금처럼 빈 찬장에 참치 캔을 쌓는다. 물리지 않니. 대답 대신 손자는 대접 가득 고추 참치에 비빈 밥을 입이 터져라 욱여넣는다. 필요한 옷가지를 챙겨 엄마가 떠나면 찬장을 연다. 그러곤 한 무더기의 참치 캔을 꺼내 하나씩 뚜껑을 젖힌다. 뚜껑 아래 살코기는 한때 대양을 누비던 거대한 생명의 일부였을테다. 손자는 변기 위로 참치 캔을 뒤집는다. 고추와 자장과 야채 속을 헤엄치던 알루미늄 참치들이 펄떡펄떡 쏟아져 내린다.
사람이 단지 하나의 무덤을 갖는다면 한 마리 참치의 죽음은 과연 몇 개나 되는 캔에 담길까. 세정제를 녹인 새파란 물살에 휩쓸려 변기 깊숙이 빨려 드는 살코기 조각들을 내려다본다. 다만 돌려보낼 뿐이야. 하물며 참치에게, 손자는 말한다.
주머니 속 떨림에 손자는 전화기를 확인한다. 신경 못써 미안해. 불평 않고 잘 먹어줘 고마워. 손자는 답장을 쓴다. 맛있어. 먹성 좋은 손자였다.
7년 전 할아버지가 처음 쓰러졌을 때 손자는 아무것도 못했다. 입이 돌아간 채 거품을 문 할아버지가 무섭게 느껴졌다. 아무도 없었다. 집에는 할아버지와 손자 둘 뿐이었다. 얼어붙은 손자는 쳐다만 보았다. 흰자를 보이며 발작하는 노인을 두고 멍하니 서 있었다. 당시 손자는 고작 열두 살이었다.
응급차를 부른 건 중국집 배달부였다. 초인종 소리가 아니었다면 손자는 언제 까지고 서 있었을 것이다. 손자는 그 소리를 기다렸을는지 모른다. 넋이 나간 손자가 문을 열며 도와주세요, 했을 때 배달부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손자의 부모에게 전화해 준 것도 배달부였고 숟가락으로 돌아간 할아버지의 입을 제 자리에 돌려놓은 것도 배달부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배달부의 아버지도 중풍을 앓고 계신다 했다.
손자의 부모는 직장에서 곧바로 병원을 향했다. 엄마는 전화로 아래층 아주머니에게 손자의 저녁을 부탁했다. 손자는 입맛이 없었다. 아주머니는 두툼한 갈치를 구워 주었다. 갈치는 손자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었다. 그럼에도 손자는 먹고 싶지 않았다. 중학생이라던 아랫집 아들이 방에서 나와 손자를 힐끗 보았다. 밥 먹으려고? 반색하며 묻는 엄마에게 대꾸도 없이 그 아들은 그릇에 밥을 담고 찬장을 열어 고추 참치 캔을 꺼냈다. 그러고는 밥 위에 쏟아 쓱쓱 비볐다. 붉은 양념에 섞여 드는 밥알을 손자는 보고 있었다. 매콤한 고추 향이 콧속을 파고들었다. 아들이 그릇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자 손자가 물었다.
-저거 먹어도 돼요?
다음날 엄마는 할아버지가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한동안 병원에 있을 거 같다고. 아빠는 지방의 건설현장으로 다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부모 둘 다 일당으로 벌어먹는 일용직이라 한 명이라도 꾸준히 나가 벌어야 한다는 걸 그때의 손자는 알지 못했다.
오만 원을 쥐어주며 엄마는 밥을 시켜먹으라 하고 병원으로 돌아갔다. 손자는 엄마가 준 돈으로 전부 참치 캔을 샀다. 아침 점심 저녁 손자는 참치를 먹었다. 간식도 도시락도 모두 참치였다. 반에서 일 등을 하는 친구가 참치에는 DHA가 많다고 했다. DHA가 뭐냐 물었더니 머리를 좋게 해주는 거란다. 손자는 참치를 먹을 때마다 똑똑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틀 후 집에 들러 찬장을 본 엄마는 무슨 참치가 이리 많냐 물었고 손자는 그게 맛있다고 답했다. 밥 하는 법을 알려달라는 손자를 가만 쳐다보다 엄마는 밥 물 맞추는 법과 압력밥솥 사용법을 일러 주었다. 그날 뜨거운 압력밥솥의 김에 새끼가 다칠까 꼼꼼히 종이에 주의사항을 적으며 엄마가 울었다는 걸 손자는 알았을까? 며칠 후 손자는 아빠로부터 참치 캔 선물세트가 다섯 개나 들은 소포를 받을 수 있었다.
보름이 지나 할아버지는 퇴원했다. 손자는 그동안 단 한 번도 병원을 찾지 않았다. 할아버지를 가장 보고 싶은 건 사실 손자였다. 할아버지와 노는 것이 좋아 학교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오던 손자. 하지만 손자는 할아버지의 상태를 이해하지 못했다. 중풍이 뭔지도 몰랐고 전에 보았던 발작은 결코 할아버지일 수 없었다. 손자 앞에 언제나 정정하던 할아버지였기에 잠시 어딜 다니러 가셨겠거니 했다. 할아버지는 가끔 그렇게 여행을 다니시곤 했으니까. 어김없이 검게 그은 피부와 덥수룩한 수염으로 돌아오시겠지. 그러고는 예전처럼 손자를 앉혀놓고 세상 구석구석 이야기를 들려주겠지.
할아버지가 현관에 들어섰다. 여느 때처럼 손자 이름부터 불렀다. 목소리를 듣고 손자는 벌떡 뛰 나갔다. 보름이나 어딜 갔었어, 손자는 묻고 싶었는데 할아버지가 보이질 않았다. 대신 다리 저는 영감이 하나 있었다. 양 볼이 깊이 패고 눈이 퀭한 반송장이 하나 있었다. 말라비틀어진 무말랭이 같은 노인네가 하나 있었다. 여느 때 같지 않았고 어김없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향해 두 팔 벌렸다. 손자는 달려들지 않았다.
그건 결코 할아버지일 수 없었다.
이후 7년이다. 그 세월을 할아버지는 환자로 살았다. 그 시간이 할아버지에겐 참지 못할 치욕이었을게다. 2년이 지났을 때 할아버지는 걸을 수 없었고 4년이 지나자 똥오줌을 가리지 못했다. 서서히, 할아버지는 죽어갔고 빠르게, 가족은 지쳐갔다. 누구보다 엄마가 힘들었다. 입버릇처럼 일찍 돌아가신 할머니를 원망했다. 한 번은 할아버지를 붙들고 이젠 그만 가실 때도 되잖았냐며 하소연을 했더랬다. 바닥을 짚은 할아버지 팔목의 힘줄이 붉어졌지만, 무력한 상체는 힘없이 무너졌다.
여전히 손자는 병원엘 가지 않는다. 처음엔 어려서 몰랐고 이젠 익숙해서다. 년마다 일 이 차례 할아버지는 발작했고 얼마간 입원했다. 짧게는 이삼일, 길게는 일이 주 정도. 그때마다 엄마는 찬장에 참치 캔을 채웠고 직장에 휴가를 냈다. 할아버지가 네가 힘드니 오지 말라 하셔도 아버지가 간병인을 붙이자 권해도 엄마는 완곡했다. 할아버지의 몸을 결코 남에게 맡기지 않으면서 말은 모질게 뱉었다. 그건 차라리 싸우기 위해 붙어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할아버지를 울 아버지라고 불렀다.
다시 8일 전, 할아버지는 발작했고 일상처럼 입원했다. 전엔 이런 일이 있을 때면 손자는 할아버지를 걱정했지만 이제는 엄마가 더 안쓰럽다. 할아버지의 퇴원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앓는 엄마를 보며 이젠 손자도 생각한다. 그만 가실 때도 되지 않았나. 아마 호상(好喪)이라고 해도 되잖을까?
손자는 책상 등을 켜고 책상 앞에 앉는다. 아마 손자는 좋은 대학엘 갈 것이다. 초등학교 때 일 등을 하던 친구의 말처럼 DHA가 머리를 좋게 해줬나 보다. 찬장을 참치 캔으로 채우기 시작 한 이후 손자의 성적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학원이라고는 단과 수업 몇 개 들어본 것이 전부지만 지금 손자는 전국 모의고사 상위권을 다툰다. 일등을 하던 초등학교 동창은 외고에 지원했다 떨어졌다. 그 친구가 참치를 적게 먹었기 때문이라고 손자는 믿는다.
손자는 역사를 공부하고 싶다.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사에 관심이 많다. 할아버지는 한국사에 관해 모르는 것이 없다. 고대부터 삼국과 조선 시대를 비롯해 격동의 근현대사까지. 할아버지는 손자를 무릎에 앉히고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텔레비전 사극을 볼 때면 할아버지는 조목조목 틀린 점을 짚어낸다. 어느 날은 유적지를 둘러보러 훌쩍 여행을 떠나시기도 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한층 풍부해져 있었다.
손자도 방학 때면 여행길을 따라나섰더랬다. 몽롱한 여행이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들이 그대로 재현되어 눈앞에 펼쳐졌다. 가까이는 숭례문이나 경복궁 등지에 가기도 했고 며칠씩 경주엘 다녀오기도 했다. 희귀한 장소는 아니었다. 누구나 가보는 보편적인 곳. 그런 곳들을 몇 번이나 가고 또 갔다. 갈 때마다 장소는 역사의 실현이었다. 손자에겐 보였다. 손자에겐 들렸다. 광주에 갔을 때 그래서 손자는 숨이 막혔다. 할아버지는 손자의 손을 잡고 말했다. 똑똑히 보아 두어라.
어떤 영화도 드라마도 책도 할아버지와의 여행만큼 생생하지 못했고 할아버지 이야기만큼 가깝게 닿지 않았다. 위대한 할아버지. 손자는 언젠가 할아버지와 전국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다짐했었다.
밤이 깊다. 바람이 차다. 몸이 노곤하다. 눈이 감긴다. 손자는 책상에 앉은 채 저도 모르게 잠들었나 보다. 꿈에서 손자는 마니산에 올랐다. 무더운 여름이었는데 눈이 내리고 있었다. 강하게 내리쬐는 태양에도 눈은 녹지 않았다. 찐득한 땀이 줄줄 흐르는데도 발목까지 쌓인 눈은 푹푹 패였다. 왜 오르고 있는 걸까? 그것보다 마니산이 이렇게 높았던가? 한 계단을 밟으면 다섯 계단이 생겨났다. 이윽고 구름 저편까지 이어진 계단은 아득했다. 도저히 정상에 도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냄새가 났다. 익숙한 냄새였다. 할아버지가 앓던 7년간 집안 곳곳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던 냄새. 엄마는 노인 냄새라 했고 할아버지는 병마의 냄새라 했고 손자는 할아버지 냄새라 했던 그것. 올려다보니 멀리 할아버지가 보였다. 할아버지도 걷고 있었다. 오랫동안 달려만 있던 다리가 비로소 기능했다. 할아버지는 성큼성큼 올랐다. 그것은 오래전 등반 중 발목을 삔 손자에게 기어이 정상을 보여주겠다며 들쳐 업고 계단을 오르던, 고집스러운 노인의 바위 같은 걸음이었다.
손자는 헐떡이며 할아버지를 쫓았다. 그러나 좁혀지지 않는 거리. 할아버지는 너무 쉽게 올랐다. 이윽고 구름 안쪽으로 사라진 할아버지를 손자는 따라갈 수 없었다. 계단은 무너지고 손자는 가라앉았다. 해가 지고 눈이 녹았다. 떨어진 줄 알았는데 어느새 정상이었다. 구름이 높았다. 닿지도 만져지지도 않았다.
전화벨에 손자는 잠을 깬다. 한기가 든다. 핸드폰을 어디 두었는지 모르겠다. 두리번거리는 동안 벨소리는 애타게 손자를 찾는다. 소리를 따라가니 핸드폰은 화장실 변기 뚜껑 위에 있다. 액정에 묻은 참치 기름을 닦아내고 아버지로부터의 발신을 확인한다. 좀체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는 일은 없는데. 딸깍.
- 왜 이렇게 늦게 받아.
- 공부하느라 몰랐어요.
- 지금 택시 타고 병원으로 가봐.
- 왜요? 아버지 올라왔어요?
- 지금 올라가고 있어. 할아버지 돌아가셨단다.
발병 2718일 만의 일이었다.
그간 할아버지는 9번 입원 했고 총 136일을 병원에 계셨다. 손자가 278캔의 참치 캔을 비우고 154캔의 살코기를 변기에 버린 시간이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각 낮잠을 주무시다 운명하셨다, 그 얼굴이 참으로 평온했다, 7년간 가장 편히 잠든 모습이었다, 고 엄마가 그러더라, 고 고모가 그러더라. 아버지는 말한다.
그럼 엄마는? 이 모든 말을 고모에게 하는 동안 너무 울어 탈진했다더라, 그러니 너는 어서 병원으로 가 엄마를 돌보라, 고 아버지는 말한다.
학교는? 오늘 일요일이니 내일 전화할 터이다. 너는 걱정 말고 우선 엄마 곁으로 가라, 고 아버지는 말한다.
근데 아버지, 손자는 부른다. 호상이지? 손자는 묻는다.
- 그래. 호상이다, 호상이야.
[엄마]
눈을 떠 보니 병실 침대였다. 왼팔 오금이 쓰려 보니 주삿바늘이 혈관을 헤집고 들어서 있었다. 거의 다 맞아 쪼그라든 링거 주머니로부터 쥐어짜듯 포도당이 떨어졌다. 두통이 심했고 목이 말랐다. 눈이 뻐근해 껌뻑이려는 데 울어 부은 눈두덩이 무거워 쉬 되지 않았다.
‘외투 좀 다오’
어젯밤, 사흘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아부지의 첫마디였다. 물 좀 다오, 라던지 밥 좀 다오, 가 아닌. 이제 정신이 좀 드세요? 며칠을 그러고 계셨는지 몰라요. 외투 좀 다오. 외투는 뭣 하시려고요? 추우세요? 물음에 아부지는 천장을 바라보며 답했다. 가야 한다. 좀 다오. 그건 발음이 잘 안 되어 뭉그러진 말이었다. 혼자 밥술도 못 뜨시는 양반이 이 밤에 어딜 간다 그러세요. 이불 더 가져다 드릴게요.
당직 서는 간호사에게 말해 이불 몇 채 더 받아다 얹어드릴 요량으로 내가 병실 문을 나섰을 때, 갑자기 아부지 팔이 불쑥 덮은 이불 위로 솟았다. 하늘 향해 쭉 뻗은 손바닥이 악수하듯 오므라들었다. 천장에게 아부지는 무어라 중얼거렸다. 겨우 말을 뱉는 입술 위로 미소가 번졌다. 평화로운 얼굴이었다. 잠시 그 상태로 멈추어 있던 아버지는 곧 팔을 내려 옷 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러고는 고개 돌려 나를 불렀다. 아가.
부르는 목소리가 정갈해 울음이 날 것 같았다. 외투 좀 다오. 뭉그러졌던 말은 어느새 분명했다. 안방 옷장에 감색 마이랑 모자가 있다. 그걸 좀 가져다오.
그 옷을 알고 있었다. 남편과 나의 결혼식 날 처음 입으셨던, 그 후로 준이의 백일과 매번의 입학식과 졸업식마다, 그러고도 어머니의 환갑과 당신 칠순에서도, 특별한 순간마다 아부지 어깨를 감싸주던 옷이었다. 그리고 그건 죽은 경숙 고모의 첫 월급 선물이었다.
7년간 그 옷을 꺼낸 적 없다. 환자가 입어서 되지 않는다며 고이 옷장 깊숙이 묻어두고 잊은 줄 알았다. 그러나 아부지는 그 옷을 잊은 게 아니라 참고 있었나보다. 7년 만에 그 옷을 가져달라 했을 때, 그래서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아부지가 시키는 대로 그러고마 고개를 주억거리는 수밖에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병실 문을 나서려 할 때 등 뒤로 뿌려진 아버지의 단어들은 ‘예감’을 ‘실감’으로 만들었다.
- 고생 많았다, 아가.
6시간 후, 아부지가 돌아가셨다.
순간에 식던 손의 감촉이 아직 생생하다. 외투를 가지고 와 입혀주자 아부지는 겨우 참고 있었다는 듯 아스러졌고 도로 혼수상태로 빠져들었다. 마치 그 옷을 걸치기 위해 죽음의 문턱에서 잠시 짬을 내어 들른 사람 마냥 심박도 숨도 빠르게 느려졌다.
단지 손만은 여전히 따스해서 나는 그걸 꼭 쥐고 품에 묻었는데 숨이 멈추던 순간 온기는 손등 위에 발라진 알코올처럼 순간에 증발해 버렸다. 그 서늘함이 소름 돋아 손을 내던지고는 내던진 내 손에 소름 돋아 다시 아부지 손을 잡았다. 손은 이제 달린 고깃덩이처럼 힘없이 축 늘어져 있을 따름이었다.
서러워져 울음이 났다. 굉장히 울었던 것 같다. 이렇게 탈진해 링거를 꼽아야 했을 정도로. 그만큼 울었던 건, 내가 시아버님을 ‘울 아부지’ 부를 만큼 살가웠기 때문도, 아버지가 나를 ‘딸내미’라 부를 만큼 예뻐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이 모든 게 이제는 정말 끝났다는 사실에 어쩐지 후련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죽음보다 서글픈 건, 2718일 만의 해방감이었다. 울기 전 지어졌던 미소가 나의 본심일지 몰랐다. 그래서 더 울었고, 부러 오열했다. 울다 보니, 울음이 울음을 불러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어느새 나는 아부지의 죽음 때문이 아닌 나 때문에 울고 있었다. 나의 세월이 울음 안으로 새어 들어와 눌러 두었던 감정들을 꾸역꾸역 뱉어내고 있었다. 아부지가 죽어 슬펐고 기뻤다. 아부지를 간호하는 동안 빨리 낳기를 바랐었고 빨리 죽기를 바랐었다.
7년, 참 오래도 끌었구나, 싶었다.
[손자-2]
- 노인은 계속 불행한 일에 부딪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은 지지 않는다고 하면서 끝까지 저항하죠. 결국 불굴의 의지 끝에 커다란 청새치를 낚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 상어 떼에게 고기를 모두 뜯기고 생선은 앙상한 뼈만 남게 되요. 이건 바로 인간의 무상. 허무함을 상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런데도 노인은 사자의 꿈, 곧 힘의 상징을 꿈꾸며 온갖 고난과 절망 속에서도 끈질기게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버티어 나가는 불굴의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결국 이 소설은 인간이 죽음에 패배하지만 용기와 자기 극복을 통해 그것과 용감하게 대결한다는 것, 바로 그 자체에 인간 삶의 의미와 존엄성이 있다는 작가의 실존 철학을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그럼 교수님께서는 힘없는 노인이 보여주는 이토록 강인한 의지의 원동력이 과연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 음... 그런데 말이죠,
- 네?
- 청새치면 그게 참치인가요?,
- 참치요?
- 아닌가?
- 참치는 다랑어죠.
- 그런가? 아닌데... 청새치 흑새치 백새치 돛새치, 새치 종류는 죄다 참치라고 어디서 본 거 같은데...
- 에이, 다랑어라니까요. 교수님 인문학 분야라서 잘 모르시나 본데 저 이과 출신이거든요. 다랑어 맞아요, 참치.
- 아닌데......
손자를 태운 택시는 고요한 새벽 도로 위를 바삐 달린다. 창밖으로 노란 가로등 불빛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난다. 불빛마다 매달린 기억들은 차마 들여다볼 새도 없이 뒤편으로 흘러든다. 조금 창문을 내리자 묵직한 바람에 섞인 불빛조각들이 손자의 얼굴을 때린다. 그러나 무엇도 기억할 수 없다. 무수했을 할아버지와의 추억들이 방금 지나친 가로등처럼 어느새 까맣게 멀어진다. 뭉뚱그려진 바람과 라디오의 소리가 일그러진 얼굴을 들이댄다. 우워워우워. 느릿하게 울리는 동굴 속 하품처럼 소리는 묘한 불안감을 담고 있다.
- 둘 다 맞아요.
백미러 위로 기사의 시선이 손자를 향한다. 무슨 소리야, 눈동자의 물음에 손자는 답한다.
- 참치요, 다랑어도 되고 청새치도 된다고요.
- 아, 이거? 듣고 있었어?
기사는 손가락으로 라디오를 가리킨다. 손가락을 향해 손자는 말한다.
- 참다랑어, 남방참다랑어, 황다랑어, 눈다랑어, 백다랑어, 가다랑어, 날개다랑어, 점 다랑어, 청새치, 흑새치, 백새치, 황새치, 돛새치 전부 참치예요. 1957년에 인도양에서 첫 출어한 선원들이 '진짜 고기'라면서 '참치'라고 부른 데에서 비롯됐거든요. 근데 정확히 말하자면 다랑어가 맞긴 해요. 원래 참치라는 게 동해 연안에서 다랑어를 뜻하는 방언이었어요. 생물학회와 문교부에서도 다랑어라는 어명을 표준명으로 결정했고요. 교과서에도 다랑어라는 어명을 활용하고 있으니까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참치는 다랑어가 맞아요.
기사는 고개를 돌려 잠시 손자를 쳐다본다. 곧 신호에 걸린 택시는 멈춰 선다. 아무도 건너지 않는 건널목 건너 청색 불빛이 깜빡인다. 문득 손자는 건널목을 건너는 할아버지를 본다. 한쪽에만 청색 불이 달린 당신 삶의 마지막 건널목. 할아버지는 단지 길을 건넜을 뿐이다.
- 학생 똑똑하네. 공부 잘하겠어.
- DHA가 많거든요, 참치에는.
신호가 바뀌어 택시는 출발하고 건널목이 멀어진다. 가로등이 멀어지고 가로수가 멀어진다. 숱한 신호들과 교차로가 멀어진다. 가까웠던 것들이 밀려나고 방금까지 디뎠던 길은 뒤통수 너머로 빨려 든다. 들이켜는 공기마저 쉬지 않고 교환된다. 나아가는 이상 붙잡아 둘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청새치와 참치에 대해 밤새도록 떠들어댈 것만 같던 라디오 소리도 어느새 창틈으로 쓸려가고 오래된 노래가 흘러나온다. 모든 것은 흐르기 마련이다.
사물도 사람도 삶도 죽음도 가까워졌다 멀어지고 멀어진 것은 언젠가 가까워질 것이다. 지나버린 가로등도 가로수도 건널목도 교차로도 이곳에서 유턴하여 달리기만 하면 다시 볼 수 있듯 라디오에서 나오는 'love me do’ 역시 그렇게 흘러들어온 것일 테다. 이제 비틀스는 없지만 노래가 흐르는 이상 언제라도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지금 할아버지는 어디쯤 흐르고 있을까? 손자는 자주 할아버지를 따라 흘러간 것들의 자취를 밟았더랬다. 그때마다 손자는 보지 않았던가, 흘러 버린 것들이 아직 그곳에 있음을. 흐름은 결코 사라짐이 아니었음을. 지난 7년은 할아버지를 흘려보내는 시간이었고 마침내 노인은 뒤통수 너머로 멀어졌다. 지금 손자의 눈물은 그런 믿음이 있기에 흐르지 않는 걸까? 울 필요 없기에. 흐르는 이상 존재하기에.
아니, 그저 홀가분한 마음 때문은 아닐는지. 언젠가의 죽음은 오래전부터 감안했던 일이었고 하루씩 오늘을 향한 2718번의 걸음이 지긋지긋했는지 몰랐다. 오랫동안 매달린 일을 끝마친 것처럼 개운한 기분이 먼저 든 것은 아니었을까? 비로소 활짝 창을 열고 병마의 냄새가 밴 실내를 환기할 수 있게 됨이, 행복의 공기를 받아들일 수 있음으로 설레었을는지 모른다.
사라짐이 아니란 믿음은 차라리 손자에게 두려운 일이었다. 그 7년이 아직 거기 있다면, 똥오줌을 치우고 병시중을 들어야 하는 세월이 남아 있다면, 흘러버리는 건 가족의 행복일 터였다. 환자가 있는 집의 행복은 다시 가까워지지 않는다. 흘러버린 할아버지의 자리에는 과연 무엇이 남았을까? 아직 그곳에 할아버지는 있었을까? 나오며 돌아본 할아버지의 자리엔 눅진한 이불만 널브러져 있을 따름이었다.
사람이 사라진 자리였다. 그것이 손자를 안심시켰다.
- 여기, 유턴은 불법이죠?
손자가 묻자 백미러 위 기자의 시선이 다시 손자를 향한다.
- 왜, 돌아가야 돼? 불법이 뭔 상관이야. 그냥 차 돌리면 되는 거지. 요 앞에서 유턴할까?
- 아니요. 하지 마세요. 돌아가지 마요.
뒷좌석에 모로 몸을 눕히며 손자는 눈을 감는다. 백미러의 눈동자가 잠시 손자를 보다가 이내 정면으로 돌아간다. 터널로 접어들자 손자의 눈꺼풀로 강한 빛이 새어 든다. 검은 공간을 부수며 빛은 빠르게 흘러간다. 갈라진 빛의 사이로 이미지들이 어지럽다. 그건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그래서 애초부터 없던 것만 같은 정정한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들쳐 메고 어디론가 걷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항상 어디론가 걷는 분이셨다. 끊임없이 길을 가는 분이었다. 그러나 투병의 세월은 손자의 기억 속 할아버지를 움직일 수 없는 물체, 냄새나고 짐스러운 사람으로 덩어리로 각인시켰다. 사람을 사물로 만들었다.
터널을 벗어나자 이미지들이 까맣게 지워진다. 흘려보냈던 기억들이 가까워졌다 멀어진다. 손자는 손등으로 눈을 덮는다. 눈두덩을 꾹꾹 누르며 흥얼거린다.
Love, love me do.
You know I love you,
I'll always be true,
So please, love me do.
Whoa, love me do.
날 사랑해주세요. 나를요.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 알고 있잖아요.
언제까지나 솔직할 거예요.
그러니 날 사랑해주세요.
날 사랑해주세요.
부를수록 졸리다. 하품이 샌다. 크게 손자는 하아아암어엉엉 한다. 눈물이 흐른다. 하품이 컸던 만큼 많은 눈물이 쏟아진다. 다시 입을 벌린다. 요란한 하품 소리다. 졸려 그렇다. 오래도록 손자는 하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