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 광장 벤치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독한 환경을 견디다 못해, 나는 이제 생각조차 놓아버린 터였다.
단지 나는, 일주일 전 만났던 젊은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는 소리가 난다.
어느새인가 그는 내 곁에 앉아 있었다.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더 심해졌네. 형씨, 이제 한계구나?]
젊은 남자는 고개를 숙여 지면으로 연기를 뿜어낸다.
[정말로 도와줄거야?]
나는 매달리듯 물었다.
[뭐, 할 수 있는 건 해봐야지. 이대로 형씨를 내버려두면 죽을 거라는 건 뻔히 보이니까. 그걸 알면서도 죽게 두면 나도 영 편치가 않아.]
[어떻게 할건데?]
[뭐, 일단 따라와봐.]
그렇게 말하고 젊은 남자는 주차되어 있던 차에 나를 태웠다.
잠시 차를 달려, 어느 빌딩 안에 들어간다.
거기 젊은 남자의 사무소가 있다고 한다.
"○△× 탐정 사무소" 라고 써 있는 사무실 한칸.
여기가 그의 사무소였다.
[탐정?]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젊은 남자는 [본업은 말이지.] 라고 대답했다.
사무소 문을 열자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 지금은 다들 나가고 없어. 아마 사장은 있을테지만.]
[나는 돈은 한푼도 없어.]
[음... 우리 사장, 돈에는 귀신이지만 근본은 좋은 사람이니까 아마 괜찮을거야.]
그렇게 말하고 젊은 남자는 안쪽 "사장실" 이라고 써진 문 앞으로 나아간다.
가볍게 두 번 노크하자, 안에서 [들어와.] 하는 대답이 날아왔다.
문을 열자 거기에는 누가 봐도 커리어 우먼이라고 느낄만한 풍모의 여자가 있었다.
이 여자가 사장이구나.
사장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혀를 찼다.
[또 변변치 않은 놈을 데리고 오다니...]
작은 소리였지만, 확실히 그렇게 말했다.
명백히 나를 환영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사장, 아니, 그, 저, 그러니까, 그게...]
젊은 남자는 횡설수설한다.
사장은 남자를 째려보며 서류를 책상에 내리친다.
[너말야! 우리 회사는 자선사업하는 곳이 아니라고! 이런 돈도 없는 놈을 데려와서 어떻게 벌어먹겠다는거야!]
확실히 남자도 겁에 질릴만한 노성이었다.
[아니, 그치만 사장도 보면 알잖아요! 이 사람 그대로 두면 죽어버린다니까요?]
[이 멍청아! 사람 좋은 것도 정도가 있지!]
고개를 푹 떨구는 젊은 남자.
아무래도 이 녀석은 진심으로 날 돕고 싶어서 데려왔던 모양이다.
고마운 이야기지만, 나는 다른 사람에게 폐까지 끼쳐가며 도움을 구할 생각은 없었다.
발걸음을 돌려, 나는 사무소에서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사장이 나를 불러세운다.
[기다려, 젊은 노숙자놈아. 이 녀석이 말한대로, 이대로라면 넌 곧 죽어. 어쩔 생각이야?]
[아까 전부터 왜 그렇게 내가 죽는다고 말하는거죠? 확신하는 것 같은데? 나는 확실히 무언가에 쫓기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 말마따나 돈은 한푼도 없습니다. 이 젊은 친구한테 폐를 끼칠 생각도 없으니까, 나는 가보겠습니다.]
사장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뿜는다.
[다른 사람한테 폐 끼치지 않겠다니, 좋은 마음가짐이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도와줄 생각은 있어?]
[무슨 소립니까?]
[방법은 있다는거지.]
[서, 설마 사장...]
젊은 남자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조금 전 너는 나한테, 무슨 확신이 있길래 내가 죽을 거라고 말하는거냐 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말야, 아무래도 귀찮은 게 씌어있는거 같아. 너, 목을 매달고 추레한 원피스를 걸친 여자라고 하면 짐작 가는게 있지?]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여자에게 관해서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는데.
[후후, 놀라는구나. 뭐, 나도 일단 본업은 탐정이지만 부업으로 영능력자 일도 하고 있거든. 그건 그렇더라도 재미있는 얼굴로 놀라네. 후후, 좋아해, 그런 표정.]
나는 생각했다.
본업이 탐정이고 부업으로 영능력자라고?
이게 무슨 이상한 소리인가.
여기 그대로 있어도 괜찮은걸까?
하지만 그 미치광이 여자에 관해 알아 맞췄다.
그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미치광이 여자는 정말 귀신인걸까?
단순한 내 착각이 아니라?
[조금 전 말한 좋은 방법이라는건...?]
사장은 쓴웃음을 짓는다.
[아무도 좋은 방법이라고는 말 안했어. 그저 방법이 있다고만 했지.]
[그래서 그 방법이라는 게 뭡니까?]
[나한테 제령을 부탁한다면 최소 200만은 각오해야 해. 너한테는 그 정도 돈 없잖아. 하지만 저기 있는 녀석이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저 녀석은 영능력자로서는 완전 밑바닥이야. 그러니까 저 녀석의 현장 실습 겸해서 제령을 받는다면... 돈은 안 내도 좋아. 반대로 이쪽이 사례금을 내도록 하지. 뭐, 몸이 어떻게 될지 보증은 절대 못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사장은 미소지으며 담배를 비벼 껐다.
옆에서 듣고 있던 젊은 남자는 머리를 움켜쥐고 하늘을 바라보며 [오마이갓...] 하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아니, 사장. 저 어떻게 하면 좋겠슴까?]
젊은 남자의 질문에, 사장은 [뭐?] 하고 기분 나쁜 티를 팍 냈다.
[지금부터 고객하고 상담해! 그 후에 제령방법을 검토하고, 계획서를 내일까지 나한테 제출해. 알았어?]
[네, 네! 아니, 그렇지만, 그게, 저...]
[됐고, 빨리 일이나 시작해. 이 멍청아!]
사장에게 내쫓기듯, 우리는 사무소를 나왔다.
그 후, 카페에 들어갔다.
[좋은 가게죠? 여기도 사장 가게랍니다.]
젊은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익숙하다는 듯 자리에 앉는다.
자리는 개인실처럼 되어 있어, 주변에 이야기가 들릴 염려가 없었다.
커피를 2잔 주문하고, 젊은 남자는 노트북을 꺼냈다.
[그럼 형씨, 지금부터 상담을 시작할게요. 준비는 됐죠?]
[신경이 쓰이는 게 있는데...]
[뭔데요?]
[너 아까 전까지는 반말로 말하더니 갑자기 존댓말로 바뀐 이유가 뭐냐?]
[이제 형씨가 정식으로 내 고객이 됐으니까요. 사실 사장이 처리해줬으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죠, 뭐. 내가 현장실습 겸 형씨의 제령을 하면, 회사에서 인재육성비로 예산이 나올 겁니다. 형씨한테도 사례금으로 2만엔 나올거구요. 어떤 의미에선 금전적으로는 이게 최선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아까 사장 말처럼, 나는 정말 밑바닥 수준이라 까딱 잘못하면 어찌될지 몰라요. 다만 최선을 다할게요. 대충했다가는 나까지 죽을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그는 상냥하게 미소지었다.
[무슨 소린지는 대충 알겠어. 하지만 나는 영혼 같은 건 전혀 아는게 없어. 솔직히 그 여자도 내가 정신이 이상해져서 환상을 본 거라 생각했고. 갑자기 귀신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당황스럽다고.]
[그렇겠네요. 그럼 영혼에 대해 잠깐 설명할게요. 믿던 말던 그건 형씨 자유로 맡기죠.]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조금 애달파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보통 샐러리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영혼이니 뭐니 이상한 것들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우리가 고객한테 영혼에 관해 설명할 때는, 컴퓨터를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컴퓨터?]
[네, 컴퓨터요. 지금 형씨 상태를 컴퓨터에 빗대면 바이러스에 감염된거죠. 형씨가 곧 컴퓨터고, 바이러스는 악령. 즉, 형씨가 말하는 미치광이 여자 말이죠.]
[그거 참 신선한 비유네.]
[악령이 씌었다고 하죠. 들어본 적 있으시죠? 그럼 구체적으로 인간의 어디에 씌이는 건지, 아세요?]
나는 조용히 커피를 한모금 들이킨다.
[뇌입니다. 악령은 인간의 뇌를 해킹하는 것처럼 씌이는 거에요. 그리고 뇌안에 바이러스처럼 뿌리내려 지배하고,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환각을 일으켜 정신과 육체를 파괴시키는 겁니다. 뇌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당연히 다른 사람들은 알아차릴 수가 없죠. 일반적인 영혼이라면,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수호령이 방화벽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걸 넘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드물게 강력한 해킹 능력을 가진 악령도 있거든요. 우리 같은 영능력자들은 악령에 씌인 인간의 뇌에 개입해 제령을 하는 게 일인 겁니다.]
무슨 소리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혹시 나는 얽히면 안 되는 곳에 발을 디디고 만 것일까?
그런 기분 뿐이었다.
[여기까지 뭐 질문 있으신가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노트북에 무언가를 계속 치고 있었다.
[그 악령이라는 건, 왜 나한테 씌인거야? 나와는 아무 인연도 없는 여자일텐데.]
젊은 남자는 계속 노트북 키보드를 두들겨가며 질문에 답한다.
[우연히 씌었다고 하는 게 적절할지도 모르겠네요.]
[우연이라고? 아무 이유 없다는 거야?]
[네. 우연히 침입하기 쉬웠다는 이유 뿐일겁니다. 진짜 목적은 누가 되었든 괜찮으니까 자기 수중에 넣겠다는 거겠죠. 악령은 산 인간을 죽이고, 수중에 넣으면서 세력을 늘려갑니다. 형씨를 본진으로 삼고, 계속 범위를 넓혀가겠다는 속셈인거죠.]
[뭘 위해서?]
[아마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서. 아니면 원한을 채우기 위해서든가요. 양쪽 모두일 수도 있구요. 뭐, 그런거에요. 정작 그런 걸 해봐야 무의미하달까, 오히려 역효과만 일어나지만. 그녀가 아무리 채우려한들, 그건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거든요.]
[완전히 제멋대로야... 테러리스트 같네... 질문이 하나 더 있어. 너는...]
[존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존?]
[동료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부르고 있어요. 본명이 좀 말하기 그래서.]
존인가...
옛날, 집에서 기르던 개랑 같은 이름이다.
[그럼 존. 아까 저는 사장한테 날 떠맡으라는 명령을 듣고 머리를 감싸쥔 채 "오마이갓" 하고 중얼거렸지? 그리고 아까 전에는 대충 했다가는 너도 죽는다고 했고. 그걸 좀 설명해줬으면 하는데.]
[아, 들으셨나요? 음, 뭐라고 할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감당할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어쩔 도리가 없는거야?]
[형씨, 혹시 모르겠어요? 의사랑 경찰관, 간호사까지 남자 세명.]
나는 놀랐다.
이 녀석 그걸 어떻게 아는거지.
[짐작가는 건... 있어.]
[그 자식들은 형씨가 말하는 미치광이 여자가 지금까지 죽여온 놈들이에요. 지금은 완전히 그녀한테 종속되서, 그 여자의 방화벽 역할을 하고 있죠.]
[죽여왔다고?]
[그래요. 지금 형씨처럼 악령이 씌여서, 괴로워하다 죽은겁니다. 개중 의사랑은 연결이 강해요. 아마 첫 피해자일테고, 부모자식 관계였는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홋카이도에서 있었던 사건을 떠올리고 있었다.
[저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건, 그 세명 때문입니다. 사장은 형씨를 본 순간 미치광이 여자의 모습까지 확인했을 거에요. 하지만 저한테는 아직도 여자는 보이지가 않아요. 고작해야 방화벽인 그 세 남자만 보이는 수준까지만 침입할 수 있어요.]
홋카이도에서 봤던 환상.
그 병원 안에서 만난 세 남자가, 모두 그 여자에게 살해당했었다고?
[만약 억지로 그들을 돌파하려다간, 그들에게 발목을 잡혀 먹혀버리겠죠. 그 틈에 여자가 역으로 침입해 형씨처럼 나한테 씌일지도 모르는 일이구요. 그렇게 되면 나도 죽을 운명인겁니다.]
그럼 그 때 의사가 했던 말의 뜻은 뭐지?
나나코?
그 여자의 이름인가?
[방법은 일단 생각해보겠습니다. 나도 이 일을 계속 하려면 어떻게든 형씨 구하는데 목숨을 걸어봐야 할테니까.]
사회적으로 말살?
자신한테는 무리라고?
고독을 공유해?
나는 한번에 알듯말듯한 정보를 잔뜩 들은 탓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형씨, 괜찮아요?]
존의 말에 겨우 정신을 차린다.
머리가 혼란스럽다.
[저기, 존. 만약 이대로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거야?]
키보드를 치던 존의 손가락이 멎는다.
[죽겠죠. 사고사던, 병사던, 자살이던... 나는 예언자가 아니니까 사인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지금까지 세 사람이나 죽였어요. 정말 위험한 여자입니다. 가만히 있는다면 형씨도 살해당하겠죠, 아마.]
나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미칠 것 같았다.
[존... 내가 지금까지 그 여자를 본 건 두번이야. 그 이야기를 해줄게.]
나는 존에게 홋카이도에서 있었던 사건과, 처음 존을 만난 날 밤에 있었던 사건을 이야기했다.
존은 진지한 시선으로 내 이야기를 들었다.
다 이야기하고 난 후 존이 꺼낸 첫마디는 [예상 이상으로 귀찮을 것 같네요.] 였다.
[그렇게 어려워?]
[어렵습니다... 형씨, 그 병원 안에서 "이건 현실이 아니야." 하고 위화감을 느낀 적 있지 않아요?]
[위화감은 없었어. 지금도 그건 현실처럼 느껴지고.]
그 이야기를 듣자, 존의 표정은 더욱 심각하게 굳었다.
[그 정도로 현실적인 병원을 형씨 뇌안에서 구현하다니... 게다가 동시에 세명을 한 자리에 불러내고... 그건 그 여자, 나나코라고 했죠? 그 여자가 형씨의 뇌를 꽤 깊은 부분까지 침식했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세명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거고. 상당히 심각한데요, 이거.]
나는 할말을 잃었다.
갑자기 바닥 없는 늪에 푹 빠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형씨, 솔직하게 제 감상을 말해볼까요.]
[뭔데?]
[지금까지 잘도 살아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