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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출처 : https://youtu.be/U-xBAFQq_iI
김선영, 달을 빚는 남자
백자 빚던 남자
영원으로 길 떠나서
한 백년 후 흙으로 부서졌네
죽어서도
생전에 빚던
둥근 달을 꿈꾸고 있었네
환한 꿈 위에 풀꽃이 피고
벌레가 울고
어느 날
한 소년이 닿아 왔네
분홍 흙이 된
백자 빚던 남자의 가슴을
곱게 반죽한 뒤
달을 하나
토해 놓았네
소년은 끌리듯
귀에 대고 들었네
곱게 내쉬는 달의 숨소리를
백자 살에서
아득하게 뛰는
한 남자의
심장 뛰는 소리를
이향아, 바람만 불어도
나는 아무래도 메말랐나 보다
바람만 불어도 버스럭거린다
버스럭거리다가 혼자 찢어지고
찢어지다가 혼자 사무치는
나는 그래도 축축한 편인가 보다
바람만 불어도 눈앞 보얗게 젖어
울음 참아 꽈리처럼 목젖이 부어
버스럭거리든지
가라앉든지
나는 아무래도 변덕스러운가 보다
바람만 불어도 이렇게 무너지는
바람만 불어도 가슴이 미어지는
날마다 무슨 바람이든 불지 않는 날이 없고
나는 무슨 핑계로든 후회 없는 날이 없다
김철진, 푸른 파도로 내 너에게 왔다
탱자 노란 향기로 가을이 익도록
네가 그리워 몸살 앓다가
더는 못 견뎌서 너에게로 왔다
외로울 때면 바다를 찾아
먼 수평선으로 날린 네 그리움 따라
하얗게 하얗게 너를 부르며
푸른 파도로 내 너에게 왔다
어둠이 지워주던 너와 나의 거리
그래도 너는 밤 바닷가에서
소리 없이 환한 웃음만 흘렸다
너는 늘 바다 그리워만 하는 백치
나는 끝내 뭍 사랑할 줄 모르는 천치
광안대교 불빛만 출렁이고 있었다
김연대, 단상(斷想)
저 산봉우리 뿌리째 뽑아
푸른 잉크 찍어 한 백 리 그어 봤으면
굽이쳐 돌아가는 강물 이마에 감고
휘몰이로 한 천 리 돌려 봤으면
바다 복판 털썩 주저앉은 섬
그런 방점 하나
쿡 찍어 봤으면
그런 시 한 줄 써 봤으면
그렇게 한 번 죽어 봤으면
정병근, 몸살
너라는 벼락을 맞았다
등골이 찌르르했다 제대로 내통했다
삭신이 쑤셨다 내통의 댓가다
은밀한 만큼 통증은 진하고 달았다
나를 지불하는 중이었다
너를 접한 몸이 나를 끙끙 앓았다
약을 먹고 아편 같은 몇 밤을 보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너는 흔적 없었다
쪽지 한 장 남기지 않았다
혹독하게 앓고 난 뒤였다
몸의 문들이 다 열려 있었다
들통난 나의 행방이 묘연했다
꺼슬한 수염만이 유일한 단서였다
너와 내통한 사흘 동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