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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넝쿨장미에 대한 의문
게시물ID : lovestory_885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
조회수 : 30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10/11 18:33:02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cBPIq3TInUc





1.jpg

김채운해바라기

 

 

 

이승의 맨 끝 계단을 건너는가

황홀한 멀미

포효하는 팔월 태양의 아가리 속으로

산 제물 되어

활활 목숨 사르러 가는

사내







2.jpg

권혁웅봄밤

 

 

 

전봇대에 윗옷 걸어두고 발치에 양말 벗어두고

천변 벤치에 누워 코를 고는 취객

현세와 통하는 스위치를 화끈하게 내려버린

저 캄캄한 혹은 편안함

그는 자신을 마셔버린 거다

무슨 맛이었을까

아니 그는 자신을 저기에 토해놓은 거다

이번엔 무슨 맛이었을까

먹고 마시고 토하는 동안 그는 그냥 긴 관()이다

그가 전 생애를 걸고

이쪽저쪽으로 몰려다니는 동안

침대와 옷걸이를 들고 집이 그를 마중 나왔다

지갑은 누군가 가져간 지 오래

현세로 돌아갈 패스포트를 잃어버렸으므로

그는 편안한 수평이 되어 있다

다시 직립 인간이 되지는 않겠다는 듯이

부장 앞에서 목이 굽은 인간으로

다시 진화하지 않겠다는 듯이

봄밤이 거느린 슬하

어리둥절한 꽃잎 하나가 그를 덮는다

이불처럼

부의봉투처럼







3.jpg

감태준넝쿨장미에 대한 의문

 

 

 

아파트 담장을 넘나들던 넝쿨장미

자줏빛 싱싱한 꽃들이 졌을 때

아직 푸른 가시와 잎을 단 넝쿨은 뭐였을까

 

관리사무소 인부가 와서

꽃 떨어진 것들은 멋대가리 없다고

넝쿨을 싹둑싹둑 잘라 부대에 담아갔네

 

어디서 아프다아프다 하는 소리에

담장을 돌아보았으나

더 멋대가리 없이 잘린 넝쿨

소꿉놀이하는 아이들밖에 보이지 않았네

 

꽃은 왜 먼저 지는지

왜 꽃 떨어진 것들은 멋대가리 없는 것인지

일러줄 사람은 나밖에 보이지 않았네







4.jpg

김선호꿈꾸는 광고지

 

 

 

열개의 다리마다 핸드폰 번호를 매달고

출항을 꿈꾸고 있다

사각 몸에 신용대출에 대한 글을 친절히 적었다

머리는 세우고 다리만 흔들며 바다 속을

오르내리던 오징어들

몸이 바싹 말라있다

열개의 다리를

세상 안으로 들여 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심해 속 정박해 있는 폐선 사이에서

은빛 지느러미를 팔딱이며 거친 숨 내쉬던 물고기가

오징어를 뚫어지게 읽다가

다리 한 짝을 찢어간다

다리 일부를 떼어 줄때마다

수액이 빠져나가 하얗게 말라간다

가벼워 질대로 가벼워진 몸

돛에 기대어 펄럭이고 있다







5.jpg

김경호공원에서

 

 

 

가을날 오후

팝콘 같은 햇살은

이마 위에 흩어지고

그리운 사람들은

애인의 무릎을 베고

벤치에서 눈을 감는다

체육공원 활엽수 가지마다

붉게 고여 오르는 가을빛

하늘이 깊어갈수록

그리운 이들은 낮꿈에 젖어드는데

공터마다 녹슨 트럭들은

시멘트벽돌을 쉬지 않고 토해내고

그들이 꿈꾸는 세상 밖으로

트럭들의 바퀴 자국은 자꾸

무거워진다

먼지구름 속에서

연을 날리던

어린 아이도 돌아간

체육공원의 오후

긴 가로수 그림자가

결리는 어깨를 짚어오는

오늘도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며

늙어가는 애인들은 무릎을 베고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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