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적으로 저는 일반인 수준의 지식과 탐구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서두에 밝히는 바입니다.
무엇보다 동양사 중에서도 고대는 참으로 어렵다고 밖에 안보이는 부분이라 다른 분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홍산 문화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은 동북공정과 유사역사학 쪽에 대한 관심에서 특히나 불거지는 부분이 많습니다만 문헌사학계나 고고학계에서는 그다지 우리와의 관련성을 높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전통적으로 이 지역은 산융이나 선비 거란과 같은 이 들의 터전인터라 이 들과 한국사를 연계시키기위해서는 한국인과 관련이 있는 집단이 이 지역에 한때나마 거주하며 활동했음을 입증을 해야합니다.
여기서 일단 문헌 사학계는 결론을 낼수가 없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요, 문헌 기록이 전무하다 시피 하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요하로의 이동이나 한반도 내의 고고학적 사료들과 홍산 문명의 대조를 해봐야 하는데 신석기 단계와 청동기 초기 단계에서 이들 요서와 요동 및 한반도 사이의 문화적 격차는 상당한 터라 양 지역의 문화가 동일한 문명이 영위하였다는 것은 현 단계에서 거의 불가능합니다. 시쳇말로 까놓고 말하자면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주장하는 것은 환단고기를 들고 나오는 거랑 다를게 없으니 말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진지는내컨셉님이 말씀하신 학자의 기본적 소양의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산융이나 선비, 거란의 선조이냐를 보면 그것도 아닙니다. 홍산문명에서 출토된 인골은 고동북유형이라 고대 중국 중원의 한족들인 고화북유형, 고중원유형과 무관하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홍산문명 즉 하가점하층문화의 경우 지극히 정착 농경 문화적인 성격이 강한 반면 이후에 등장하는 산융과 선비, 거란 등의 경우 하가점 상층문화로서 유목적 성격이 강해서 기원전 15세기 이 처럼 문화가 극단적으로 전환되게 된 계기는 여러 논란을 낳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것이 기후 하강에 따른 농경 문화의 쇠퇴입니다.
물론 이주민들이 영향일수도 있겠지요, 하가점하층문화에서 상층으로 교체되는 시점 즈음에 요서 지역 인근의 유적에서 고화북 유형의 집단들이 광범위하게 출토되고 있는데 문제는 하가점상층문화의 성격상 등장하게 되는 동호,선비 거란 등은 고몽고고원유형과 유사하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한반도의 그것과 유사한가 보면 그것도 아닙니다. 요서지역에서 출토된 집단은 고동북 유형 그리고 고화북 유형 끝으로 고몽고고원유형의 순서입니다.
즉 한국인 집단과 연계해볼 가능성이 전무한게 현실입니다. 고동북유형으로 지칭되는 집단중에서 한국인의 선조뻘되는 집단과 연계시켜 볼만한게 있다는 점은 사실이나 요서의 홍산문명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영토 중심의 사관 정리 사업인 동북공정에 대하여 홍산문명이 어떻든 현재로서는 전혀 관련성이 없다고 밖에 볼수 없는 우리가 뭐라 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끝으로 덧붙이자면 빗살무늬 토기는 한국인의 선조가 살았다는 증거는 되지 못합니다, 단적으로 일본, 러시아, 시베리아, 중국 동북부 심지어는 핀란드나 폴란드, 독일, 스웨덴 등지까지 넒은 의미의 빗살무늬 토기가 발굴되고 있으니 말이지요,
무엇보다 홍산문명에서 발굴된 채문 토기와 협사회도는 우리가 빗살무늬 토기라 부르는 즐문토기와는 다르다고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