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BGM] 길 위에 있는 동안 행복하다
게시물ID : lovestory_884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39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9/16 08:58:50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hQpdSkOQVm4





1.jpg

천상병유리창

 

 

 

창은 다 유리로 되지만

내 창에서는

나무의 푸른 잎이다

 

생기 활발한 나뭇잎

하늘을 배경으로

무심하게도 무성하게 자랐다

 

때로는 새도 날으고

구름이 가고

햇빛 비치는 이 유리창이여






2.jpg

나희덕벗어놓은 스타킹

 

 

 

지치도록 달려온 갈색 암말이

여기 쓰러져 있다

더 이상 흘러가지 않을 것처럼

()의 얼굴은 촘촘한 그물 같아서

조그만 까끄러기에도 올이 주르르 풀려나가고

무릎과 엉덩이 부분은 이미 늘어져 있다

몸이 끌고 다니다가 벗어 놓은 욕망의

껍데기는 아직 몸의 굴곡을 기억하고 있다

의상을 벗은 광대처럼 맨발이 낯설다

얼른 집어 들고 일어나 물속에 던져놓으면

달려온 하루가 현상되어 나오고

물을 머금은 암말은

갈색빛이 짙어지면서 다시 일어난다

또 다른 의상이 되기 위하여

밤새 갈기는 잠자리 날개처럼 잘 마를 것이다







3.jpg

김재진길 위에 있는 동안 행복하다

 

 

 

둥근 우주같이 파꽃이 피고

살구나무 열매가 머리 위에 매달릴 때

가진 것 하나 없어도 나는

걸을 수 있는 동안 행복하다

구두 아래 길들이 노래하며 밟히고

햇볕에 돌들이 빵처럼 구워질 때

새처럼 앉아있는 후박 꽃 바라보며

코끝을 만지는 향기는 비어 있기에 향기롭다

배드민턴 치듯 가벼워지고 있는 산들의 저 연둣빛

기다릴 사람 없어도 나무는 늘 문밖에 서있다

길들을 사색하는 마음속의 작은 창문

창이 있기에 집들은 다 반짝거릴 수 있다

아무것도 찌르지 못할 가시하나 내보이며

찔래가 어느새 울타리를 넘어가고

울타리 밖은 곧 여름

마음의 경계 울타리 넘듯 넘어가며

걷고 있는 두 다리는

길 위에 있는 동안 행복하다







4.jpg

오세영벚꽃

 

 

 

죽음은 다시 죽을 수 없으므로

영원하다

이 지상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영원을 위해 스스로

독배(毒杯)를 드는 연인들의

마지막 입맞춤같이

벚꽃은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종말을 거부하는 죽음의 의식(儀式)

정사(情死)

미학







5.jpg

이상희봄 감기

 

 

 

봄이 온 줄도 모르고

골방에 누워

독한 사랑 앓았었네

뜨거운 눈꺼풀 속으로

푸른 곰팡이 옷장을 덮고

하이힐 무릎 꺾으며

넘어지는 소리 들렸네

천장까지 쌓인 책들

누운 이마 위로 무너질 땐

나 이미 산 사람 아닌 줄 알았네

입을 열면 꽃과 뱀

마구 쏟아져

세상의 말들 잃었었네

 

지금 자꾸 웃네

봄이 온 줄 알고

거리를 가다가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